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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거절하는 법

by 행복반 홍교사

난 거절을 잘 못하는 편이다. 누군가 부탁을 하거나 윗사람이 이렇게 하라고 말하면 내 생각이 그렇지 않더라도 따르는 편이다. 그렇게 해야 내 마음이 편했다. 착한 아이 콤플렉스가 있어서 그런 것 같다. 그냥 뭔가 분란을 만들지 않는 것이 편했고, 상대방이 혹시 나를 나쁜 사람이라고 생각할까 하는 고민을 하고 싶지 않기 때문인 것도 같다.


나는 계획적인 사람은 아닌데 새로운 상황에 불안도가 높은 사람이라, 어느 정도 일정이 예측 가능하고 익숙해야 편안하다. 오늘은 특별한 이벤트가 없는 날이었기에 오후에 아이들 태권도 다녀오는 것만 챙겨주면 되는 조금은 마음에 여유가 있는 날이었다. 요며칠 여기저기 할일들이 있어서 밖으로 돌아다녀서 체력이 소모됐는지 어제 소화가 안되고 속이 안 좋아서 화장실을 들락거렸다. 자는 동안에도 속이 편치 않아서 오늘은 여유로운 이 시간이 참 필요하고 소중했다.


그런데, 오후에 아가씨에게 전화가 왔다. ‘어? 무슨 일이지?’하는 마음으로 받았는데, 우리 집이랑 가까운, 동네 사시는 어머님 댁 왔는데 아가씨네 아이들이 우리 아이들을 찾는다는 것이다. 혹시 괜찮으면 우리 집으로 놀러 와도 될지 물어보는 내용이었다. 둘째가 유치원에서 오려면 1시간 정도 더 있어야 했고, 둘째가 오면 첫째와 둘째가 태권도를 가야 했다. 한 1시간 남짓 첫째와 놀 수 있겠지만, 내 마음이 갑작스러워서인지 선뜻 우리 집으로 오라는 말이 안 나오고 망설여졌다.


‘그까짓 거 이 근처라는데 아이들 오면 같이 놀게 하고 좋지. 뭐 그걸 망설여. 아이들 그냥 이렇게 저렇게 놀게 해야 자연스럽게 사회도 배우고 그런 거지.’

한쪽 마음으로는 그런 생각들이 들면서도 그냥 ‘나’란 사람의 마음이 불편한 거다. ‘왜 불편하지?’, ‘내가 너무 예민한가?’ 그런 생각들이 드는데, 예전에 지나영 교수님 영상에서 보았던 말이 생각났다.


‘거절은 디폴트 값’이라는 말이었다. 내가 싫고 아닌 것 같으면, ‘NO’라고 하면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멀어질 사람들은 멀어질 것이고, 그래도 내 옆에 있는 사람들은 옆에 있을 것이라고 말이다.


‘그래, 내 마음이 불편해. 아가씨나 아이들이 싫은 게 아니라, 그냥 갑작스럽게 집에 방문하는 게 나는 불편한 거야.’라고 생각했고, 아가씨에게 이렇게 말했다.


“아가씨~ 1시간 정도 시간이 있는데, 그 후에 아이들도 태권도를 가야 하고요. 아무래도 오늘은 조금 애매해서 다음번에 여유 있을 때 우리 집에 와서 아이들 같이 놀면 좋겠어요.”


'아가씨의 기분이 나빴을까?', '나를 참 예민한 사람으로 생각할까'.

그렇게 전화를 끊고도 한동안 계속 마음이 안 좋았다. 그런데 그렇게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나는 우리 아이들에게 롤모델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 첫째는 나를 닮아서인지 거절을 잘 못한다. 웬만해서는 '다 괜찮다'고 하는 아이인 것이다. 그래서 가끔은 다른 친구들이나 아이들에게 첫째 자신의 의사를 분명하게 표현하지 못하는 건 아닐까 걱정이 되었다(물론 나보다는 나은 아이라는 건 잘 안다!).


전화를 끊고 우리 첫째에게 물어보았다.

“첫째야, 방금 고모에게 전화가 왔는데 친할머니 댁에 왔다가 **이랑 @@(고모네 아이들)가 첫째와 둘째를 찾는다고 우리 집에 와도 되냐고 했는데 너는 어때?”

“음. 글쎄. 지금 나는 카드놀이를 하고 싶은데 **이는 카드놀이를 별로 안 좋아할 것 같아. 같이 놀고 싶기도 하고.”

“아, 그렇구나. 근데 같이 놀 시간이 많지 않은데다가, 둘째 오면 너희 태권도도 가야 해서 엄마가 우리 집으로 초대하기에는 조금 불편한 마음이 있더라구. 그래서 다음번에 여유 있을 때 우리 집에 **랑 @@와서 같이 놀면 어떠냐고 얘기했거든. 다음번에 같이 놀고 오늘은 엄마랑 카드놀이 하고 태권도 가도 될까?”

“알았어!”


아이에게 엄마가 마음 내키지 않을 때 불편하지만 ‘거절’했던 것을 얘기 나눴던 건, 우리 첫째가 마음 내키지 않는 상황이 왔을 때, 다른 사람의 마음보다 '나'만큼은 '내 마음'을 먼저 들여다보고 '내 편'을 들어줘야 한다는 것을 말해 주고 싶어서였다.


내가 나를 먼저 생각해 주는 것.

거절을 디폴트 값으로 생각하는 것.


그것이 나를 사랑하는 방법 중 하나이지 않을까 생각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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