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바라보느냐
발달이 조금 느린 아이인 건강이는 대부분 자유놀이를 할 때 아이들의 놀이 주변을 서성거리거나 말없이 끼어 들어서 아이들이 불편해 했다. 그래서 옆에 있다가 내가 대신 건강이의 말을 다른 친구들에게 분명하게 옮겨주곤 했다.
예를 들면, 다른 아이들이 레고를 하고 있는데 건강이가 쑤욱 끼어들어 레고를 빼가는 경우인데, 다른 아이들이 "하지마!"하고 말하면, 건강이는 가져간 레고를 자신의 손으로 꽉 움켜쥐고 안 주려고 한다. 그 때, 다른 친구들에게 "아, 미안해. 가지고 놀던 거구나. 건강이도 그 레고 모양이 필요했나봐. 다시 돌려줄게. 건강이는 선생님과 같은 모양을 레고통에서 다시 찾아볼게." 하고 얘기해준 후, 건강이에게 "친구가 쓰던 레고니까 돌려주고, 선생님과 같은 모양을 다시 찾아보자. 선생님 잘 찾아~!"라고 말하며 레고가 든 손을 펴주었다. 그러면, 꽉 쥔 손을 펴고 레고통으로 가는 건강이다. 물론 떼를 쓰기도 하고, 싫다고 도리도리 하기도 하지만, 대부분 건강이는 말을 알아듣고, 하지 말아야 할 일은 하지 않는다.
그리고, 무언가 선생님의 지시를 따르지 않을 때조차 건강이는 말로 표현을 안할 뿐이지 다 생각이 있었다. 지금 당장은 담임 선생님 앞으로 모이는 게 먼저라는 걸 알지만, 자기가 놀잇감을 정리하는 게 더 시급한 일이라고 느낄 뿐이다. 그런 우선순위에 대한 부분이 아직 미숙한 것이지, 시간을 조금 주면 규칙을 따라 행동하고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오늘은 자유놀이 시간에 건강이가 친구들과 어울려 놀았다. 대부분 친구들과 좀 떨어져서 나와 놀이를 했던 건강이였는데 말이다. 오늘 자유놀이 시간에는 역할 놀이 영역으로 가서 시장놀이에 관심을 보이길래, 나도 과일을 사겠다면서 손님 역할을 자연스럽게 맡아 하게 되었다. 둘이 한참 이걸 사겠다, 팔지 않겠다 실랑이를 하면서 놀이하는데, 한 친구가 "나도 같이 놀잘!"한다. '오~ 친구가 놀자고 하네?' 나도 내심 기분이 좋아서 건강이를 보았더니, 건강이가 그 친구를 한번 힐끗 쳐다 보더니, "그래"한다. 셋이서 시장놀이를 또 열심히 하는데, 의사놀이 가운을 걸치는 건강이. 갑자기 내 아픈 곳을 치료해 주겠다기에, 마구 엄살을 부리며 "주사는 안 맞을래요~!"했다. 어찌나 권위적인 선생님인지, 안된다면서 주사도 꾹 놓고 약도 다 먹으라면서 처방을 해주신다. 그 모습을 보던 또 다른 친구가 와서 자기도 환자라고 진료를 봐주란다.
건강이가 흰 가운을 걸치고 그 친구의 이곳저곳을 살펴보더니 주사도 놓고 약도 정성껏 맛있는 도시락(?)으로 싸주면서 보낸다. 얼마나 진지하게 임하는지 그 모습을 보면서 내가 다 웃음이 났다. 그리고는 갑자기 강아지로 변신해서 여기 저기 돌아다니길래, "강아지 손!"도 하고, 잘했다며 쓰다듬어 주기도 하고, 먹이도 주고 재미나게 놀았더니, 또 다른 친구들이 "나도 같이 놀자!"한다. 이런 저런 놀이로 변환할 줄도 알고, 친구들이 왔을 때 능숙하고 분명하게 말로 표현은 못하지만, 같이 어울려 놀 줄도 아는 건강이의 모습이 참 뿌듯하고 좋아보였다. 그렇게 내가 없어도 친구들과 잘 놀 수 있도록 건강이가 부드러운 말과 행동으로 자신의 의사를 표현할 수 있다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하였다.
아이들은 그 아이를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같은 행동이 문제행동이 될 수도, 매력적인 행동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어른의 선입견으로 아이를 문제라고 바라본다면, 그 아이는 그 틀 안에서 자신의 강점을 더 잘 발현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래서 아이보다 어른이 중요하다. 어른의 생각이 고정적이고 편협하지 않으면 좋겠다.
나는 정말 고정적이고 편협한 사고 방식을 가진 사람이다.
내가 그렇기 때문에 세상을 좀 더 다양한 시선으로 보지 못했던 것들에 대한 아쉬움이 크다. 그래서 아이들을 바라볼 때에는 조금 더 그러지 않아야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뭔가 생각이 있을 거야. 그럴 만한 이유가 있을 거야.'라는 생각을 가지고 아이들을 바라본다. 기다린다. 그리고 깨닫는다.
'아이들에게는 무궁무진한 생각과 나름의 계획이 있다'고 말이다.
오늘도 아이들에게 배운다.
나도 한가지 정답을 찾으려고 달려가지 않아야겠다. 세상에는 무수히 많은 길이 있고, 딱 하나의 정답이 있는 것이 아니며, 가장 나다운 모습으로 살아가다보면 그 길의 끝까지 즐겁게 완주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