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편리함에 대하여
더운 날의 연속이지만 오늘따라 바람은 너무나 시원한 날이었다. 왠지 이불 빨래를 하고 싶은 날(그런 기분이 드는 날은 1년에 몇 번 안 된다는 함정이 있지만 말이다;)이었다.
어른용, 아이용 덮고 자는 이불부터 옷장 속에 잘 안 쓰는 여름용 이불까지 꺼내서 세탁기에 넣고 돌렸다. 다 돌아간 빨래들은 바로 건조기에 넣고 돌리니 얼마 지나지 않았는데 뽀송뽀송한 이불로 재 탄생하였다.
건조기가 없던 때는 어떻게 살았나 싶게, 너무나 편리한 기계의 도움은(전기세와는 별도로) 아주 많이 생활의 윤택함을 가져다준다.
먼저, 건조기가 없었다면 세탁기를 돌린 후, 빨래를 일일이 다 꺼내서 털어서 빨래 건조대에 널어야 하는데 습도가 높은 여름날은 잘 안 마르기 때문에 시간도 오래 걸리고 게다가 오래 널어두면 쾌쾌한 냄새까지 난다.
건조기를 사용하면 그런 염려 없이 뽀송하게 말려주기 때문에 여름철에는 정말 효자 품목이다. 물론 조금씩 옷의 크기가 줄어든다는 단점도 있기는 하지만 말이다.
첫째를 낳고 나니 신생아 용품 중에서 편리함을 장착하고 나온 용품들이 정말 많았다. 자동으로 분유를 먹는 아기가 먹기 좋은 온도로 맞춰 나오는 정수기와 젖병 소독기, 냄새나는 기저귀만 싹 넣어서 처리되는 기저귀 전용 쓰레기통, 신생아 통잠을 위한 전용 쿠션과 시간 없는 아기 엄마들을 위한 로봇 청소기, 아기 장난감까지 무궁무진한 아이디어 제품들이 있었다.
그런 편리함의 신세계를 두고 굳이 끓는 물에 젖병을 삶고 손목이 부러질지언정, 아이를 안아서 키웠던 아날로그적인 나의 육아는 무슨 깡이었을까.
조금은 편리함에 의존하자 하기엔 돈을 쓰는 게 망설여졌던 것 같고, 그때는 지금보다 훨씬 젊었으니 이 정도는 내가 감당할 수 있다는 근거 없는 자신감이 있었던 것 같다.
어른들은 예전의 방식이 더 좋은 것이라고 말씀하시곤 한다. 하지만 더 편리함 가운데 도움을 받을 수 있다면 그것을 이용하는 것도 난 좋다고 생각한다.
물론 나는 '얼리 어답터'가 아니기에, 유행에도 민감하지 않고 새로운 제품의 사용에도 느린 편이다. 그저 내가 할 수 있을 때까지 해보고 나서야 이제는 없으면 안 되겠다는 '절박함'이 들 때에야 움직이는 편이다.
그래서 영리하기보다는 미련한 편이다.
그런 나였기에 신랑이 먼저 건조기 얘기를 꺼냈다. 그냥 없으면 없는 대로 살지 뭐. 건조기 없는 세상에서도 사람들 빨래하고 다 살았지 뭐. 이러던 나였는데 말이다.
건조기로 첫 빨래를 한 날. 오~ 뽀송한데? 기분 좋은 뽀송함이었다.
그리고는 참 감사했다. 그런 경험을 할 수 있어서 말이다.
편리함을 먼저 느꼈다면 그건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했을지 모르겠다.
미련한 나여서, 다른 사람들보다 그 편리함을 늦게 경험하는 나라서, 오래 불편함을 몸으로 경험해 왔던 나라서 편리함이 나에겐 더 큰 감사가 되었던 것 같다.
앞으로도 우리 아이들의 세상은 더더욱 대단한 것들이 넘쳐나겠지. 그 가운데서 내가 사용했던 게 가장 옳은 것이라고 말하지 않을 것이다. 다만, 감사함을 느끼는 건 편리함과는 조금 별개라고 말할 수는 있을 것 같다. 감사는 어디서든 느낄 수 있는 것이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