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업무를 보려고 은행에 방문한 게 정말 오랜만이었는데, 내가 없는 그동안 은행에는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은행 직원분들이 유난히 까칠하다.
업무를 보러 기다리는 동안 얼핏 얘기를 들어보니 꽤 많은 진상 고객들이 있었던 듯하다. 나는 한 번의 방문이지만, 은행원 분들에게는 하루에 엄청 많은 사람들이 무언갈 요청(?)하러 올 것이니 말이다.
벌써, 첫마디부터 까칠한 옆 은행 창구 직원분의 가림판 너머로 들려오는 목소리를 들으며 나의 은행 업무에 집중하려고 노력했다.
아이들 통장을 만들 서류들이 생각보다 많았고, 시간이 오래 걸렸다. 이렇게 까다롭게 통장을 만드는 게 맞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사람이 많을 때 왔다면 정말 힘들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행히 내가 갔던 날은 사람이 많이 없어서 기다리는 시간이 적었기에 잘 마무리할 수 있었다.
친절하다는 것은 무엇일까.
말이 부드럽고, 예의 있게 대하는 것일까?
친절 : 대하는 태도가 매우 정겹고 고분고분함(네이버 국어사전 中)
분명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게다가 '친절'하게 말하고 있는 것 같지만 뭔지 모르게 사무적인 느낌을 받게 되는 사람들이 있다. 내가 은행에서 느꼈던 그런 느낌이었을 것이다. 그 마음 가운데 지쳐있는 사람들의 마음 또한 알겠다. 그렇게 내 마음이 해소되지 않은 상태로 다른 사람을 대할 때 말에 뾰족하고 곱지 않은 가시가 박혀 말과 함께 나간다. 나는 그게 어떤 건지 안다. 어린아이를 키우던 과거의 애엄마였던 나는 말이다.
아직 손이 많이 필요한 첫째가 네 살 때 둘째를 낳았다. 밤에 잠을 안 자고 새벽에 깨서 있는 힘껏 울어대던 둘째를 안고 달래느라 잠이 너무나 부족하던 그때. 난 친절하지 않았다. 몸이 힘드니 마음도 무너지는 것인지, 누군가의 별 뜻 없는 한 마디에 화가 나고 섭섭했다. 그래서 상대방에게 까칠하게 반응하고 원망했었던 것 같다.
나는 사람을 만나서 내 감정을 푸는 외향인이 아니라, 나 혼자만의 시간을 통해 나를 돌아보고 충전하는 시간이 필요한 내향인인데, 그 당시 나의 환경은 하루 24시간 혼자 있을 시간이 전혀 없는(자는 그 시간조차 제 때 잘 수 없었고, 아이와 함께였다.) 너무나 큰 스트레스 상황이었다. 간신히 버티며 나만 바라보는 아이들을 지켜야 하기에 최소한의 삶을 유지하고 있는 건 나에게는 커다란 '희생'인데, '너는 그거밖에 못하냐'와 같은 말을 들으면 바로 날이 바짝 선 고양이가 되어 버렸던 것 같다.
눈물이 나고, 섭섭하고, 내 삶이 아무것도 아닌 것 같고 말이다.
그렇게 지나고 보니 알겠다.
지금은 같은 말이어도 조금은 유연해질 수 있는 건, 말이 문제가 아니라 내 마음이 문제였다는 걸 말이다.
'좋은 어른'이 된다는 건, 내 노력으로 되는 것이 아닌 것 같다.
내 자체가 멋지고 좋은 사람이어서도 아닌 것 같다.
그냥 지금 이 순간 내가 어떤 사람이 될지 선택하고 그저 그 순간 최대한 부끄럽지 않게 말하고 행동해야 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은행 창구에서 우리 아이들의 통장을 만들어 주시던 은행원 분은 매우 친절한 분이셨다.
본인 아이들 통장 만들 때 얘기도 해주시면서 우리 아이들에게 더 도움이 되는 부분을 알려주시기도 했다. 처음부터 끝까지 '친절'하게 긴 절차들을 진행하고 마무리해 주셔서 기분 좋게 은행을 나올 수 있었다.
좋은 어른은 진정한 친절을 마음에 장착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무언갈 기대하고 상대방에게 잘해 주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평소의 마음 가짐이 상대방을 대할 때 따듯하게 나오는 향기 같은 거라고 말이다.
나는 좋은 어른일까.
요즘 같이 무서운 세상에서 우리 아이들에게 '좋은 어른'이 되어 주고 싶다.
무언가를 기대해서가 아니라, 그저 이 세상 가운데서 더 좋은 어른들로 살아가라고, 그렇게 이 세상이 조금은 더 살만한 세상이 되도록 나부터 따듯하고 포근한 향기를 가진 사람이 되어 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