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아이들 등교, 등원시키고 오랜 지인을 만났다.
예전 직장 동료 샘이었고, 안지 거의 10년이 되었으니 정말 오랫동안 인연을 이어왔던 선생님이다.
사이버 대학 조교였던 우리들은 서로를 '쌤'이라고 불렀고, 내가 임신 입덧으로 인해 일을 그만둘 때까지 함께 일을 하였다. 지금은 교육 공무원으로 초등학교에서 회계업무를 담당하고 계시는 아주 야무진 분이다.
우리 첫째 어릴 때부터 종종 집으로 놀러 와서 놀아주었던, 아주 우리 아이들을 좋아해 주시는 분.
이번에는 아이들을 볼 수 없어 진심으로 아쉬워하시며 아이들 연필과 빵 등을 챙겨주셨다.
'어떻게 이런 인연을 이어올 수 있었을까?'
나는 그것의 이유를 우리 서로가 서로의 바운더리를 침범하지 않아서가 아닐까 생각했다.
우리는 둘 다 낯을 가리는 편인데 서로를 최대한 존중하고 함부로 대하지 않는다. 나보다 7살 어린 분이지만 난 아직까지 말을 놓지 않았다. 내가 워낙 말을 못 놓는 편이기도 하지만, 처음부터 동료선생님으로 만나서인지 말을 놓기가 어려웠다. 덕분에(?) 우리는 나이 차가 있지만 비교적 동등하게 대화하고 대한다.
서로에게 하고 싶은 말들은 다 하지만, 서로를 존중하고 배려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함께 일했던 그때 참 힘들었지만 그때의 서로를 향한 배려와 이해가 더욱 끈끈한 전우애(?)를 만들어 냈던 것은 아닌가 생각한다.
난 아이들의 필요에 조금 민감하게 반응하는 편이다.
최강 'F'인 덕에 아이들이 이런 마음이겠구나. 살피고 그 마음부터 만져주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그 공감도, 배려도 적절한 바운더리가 있어야 함을 안다. 그것이 결코 너무나 가까운, 동일시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서이다.
그 선이란 어느 선까지 일까.
1. 해야 할 일들은 꼭 해야 함.
-학교 가는 일, 유치원 가는 일. 선생님이 내주신 숙제를 해 가는 것.
(단, 학원은 학교 일과가 힘들고 지쳐 빠지고 싶을 때 한, 두 번 빠질 수 있음.)
2. 아이들의 동영상 시청
-아이들이 보면 안 되는 폭력적이거나 험한 말을 하는 영상은 보지 않음(관리, 감독 모드로). 시청 시간은 너무 길지 않게 보되, 아이들이 기분 좋게 끄고 다른 하고 싶은 일들을 할 수 있는 시간은 기다려 주기.
여러 가지를 제안해 보았는데, 아이들이 이런 느슨한 경계 안에서 자유롭게 선택해 영상을 보고 자기가 알아서 끄고 다른 하고 싶은 일들을 때, 제일 미련 없이 영상을 껐다.
바운더리(경계)라는 건, 서로를 지키는 것이고 더 오래 이어갈 수 있는 힘이라고 생각한다. 무엇을 하든지 인정해 주는 것. 하지만 책임은 스스로 지는 것 말이다.
오늘도 그 '널널한' 선 가운데서 즐겁게, 행복하게 지금 이 순간을 잘 살아내어 보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