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결혼식 비용이 많이 든다는 기사가 많이 나온다. '일생에 한 번'이기 때문에 좀 무리해서라도 화려하고 고급스럽게 하고 싶은 마음도 이해되고, 또 그 프레임 때문에 과도한 비용을 지출해야 하는 당사자들의 걱정도 충분히 이해된다. 이 문제는 남들이 뭐라고 하는 것도 우습고 각자의 인생관과 형편에 따라 할 일이다.
그리스에 살 때 외국인들이 그리스의 아름다운 풍광을 배경으로 결혼식을 올리는 사례가 많다는 기사를 읽었다. 아테네에서 아크로폴리스 언덕으로 배경으로 식을 올리는 사람도 있고 아름다운 섬에서 멋진 바다를 배경으로 하는 사람들도 많다고 한다. 나도 실제로 산토리니에서 결혼식 사진을 찍는 커플을 본 적이 있다. 아무래도 복잡한 시내보다는 섬이 사진빨이 더 좋을 거 같긴 하다. 덕분에 그리스에는 외국인들 대상으로 결혼식 대행해 주는 업체가 성업 중이라고 한다. 우리나라 여행업체도 결혼식 촬영 서비스를 하는 곳이 있는 거 같다.
2018년 겨울, 케르키라라는 섬에 다녀왔다. 그리스 서쪽 이오니아해에 있는 섬으로 바다 건너에 알바니아가 보일 정도로 그리스-알바니아 국경 가까이에 위치해 있다. 이태리어로는 코르푸(Corfu)섬이라 하는데 국제적으로는 이 이름이 더 알려져 있다.
원래 이 섬에 간 목적은 두 가지였다(이 이야기는 다음에..).
첫째, 합스부르크 왕조 여인들 중에 역대급으로 아름답다고 소문난 엘리자베스가 지냈던 궁전이 있어서.
둘째, 대학 시절 배웠던 소위 '무해통항권(한 나라의 영해에서 다른 나라 선박이 자유로이 다닐 수 있는 권리)'가 이 케르키라 앞바다에서 벌어진 사건과 관련되기 때문에 역사의 현장에 와보고 싶어서.
위 두 가지 목적 외에 다른 볼거리는 뭐가 있는지 호텔 직원에게 물어봤다가 대어를 건졌다. 케르키라섬에서 내외국인들이 결혼식을 가장 많이 올리는 Vlacherna라는 교회가 있는데 주변 경관이 진짜 예쁘다고 꼭 가보라고 했다. 안그래도 궁금하던 차에 속는 셈치고 가봤다가..심봤다!!
이오니아해 바다 위에 작은 교회가 떠있는 것 같았다. 육지에서 교회까지는 사람 너댓 명이 지나갈 수 있을 정도의 좁은 길로 연결되어 있었다. 바다를 가로지르는 듯한 길을 따라 교회로 갔다. 앞마당이 넓지는 않지만 그래도 수십 명 정도가 모여 결혼식(또는 피로연)을 치를 정도는 됐다. 교회 뒤로 돌아가 보니 파도가 부드럽게 바닷가 바위를 어루만지고 있었다. 교회 왼편으로는 또다른 작은 섬이 보였고 그 뒤로 큰 산맥이 교차하면서 바다와 산과 하늘의 조화를 이루어냈다. 주변 모든 것들이 고요하고 평화로웠다. 이런 뷰를 보면서 결혼식을 올리면 생이 여러 개가 있어도 영원히 기억될 것만 같았다. 전 세계 신랑신부들을 유혹할 만했다. 이거 뭐 신혼여행 따로 갈 필요가 없겠다. 여기서 식 올리고 인근 호텔에 묵으며 섬을 즐기면 그보다 나은 허니문이 있을까 싶었다.
* 평지에서 같은 높이로 볼 때도 멋있었는데 나중에 주차장 뒤 산에 올라 위에서 내려다 보니 더더욱 환상적이었다!
나중에 찾아보니 여기 말고도 또 하나의 명소가 있다고 한다. Ypapanti 교회라는 곳이다. 사진을 보니 여기는 교회까지 들어가는 길이 넓어 보인다. 풍선 매달고 신혼여행가는 차 한 대는 충분히 드나들겠다. 여기는 아까 Vlacherna 교회보다 앞마당/뒷마당이 훨씬 넓어서 하객들도 많이 초대할 수 있고 여유롭게 피로연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물론 여기도 파노라마 뷰가 압권이다. 그리스는 아름다운 섬이 많아 어딜 가도 웨딩화보 촬영지로는 세계 최고가 아닐까 생각한다. Vlacherna 교회와 Ypapanti 교회 모두 여기서 결혼식을 하려면 그리스 정교회식으로 해야 하는 조건이 있다고 한다. 평생 남을 사진을 위해 하루짜리 개종도 뭐 나쁘지 않은 선택일 거 같다. 또 성수기에는 수요가 많아서 미리미리 예약해야 한다고.
여행을 다니다 보면 예정에 없던, 생각지도 못한 행운을 만나는 재미가 있다. 돈 있는 사람들은 아예 신혼여행을 이런 곳으로 와서 웨딩 사진만 찍어도 평생의 추억이겠다. 부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