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핑크스 신화 동네가 테베(Thebe)였구나.
오늘은 아테네 서북쪽으로 약 80km 떨어진 곳에 위치한 테베(Thebe, Θηβα)라는 도시에 다녀왔다. 인구 약 35,000에 불과한 평범하고 없어 보이는 시골 동네이지만 그리스에 올 때부터 가장 가보고 싶은 장소 중 하나였다. 어쩌면 많은 사람들의 로망 산토리니섬 보다 더.
테베는 그리스 신화 여러 군데에 등장한다. 아버지를 죽이고 엄마랑 결혼했던 오이디푸스(프로이트의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에 나오는 그 오이디푸스)가 테베의 왕이었고, 스핑크스가 오이디푸스에게 '아침엔 네 발로 걷고, 낮에는 두 발로 걷고, 저녁엔 세 발로 걷는 동물이 무엇이냐'고 질문한 곳이 바로 테베성 아래였다. 또한 술과 축제의 신 디오니소스의 엄마 세멜레가 테베 창시자 카드모스의 딸이었고, 헤라클레스가 자랐다는 곳도 테베다. 그리스 신화 읽을 때 아무 생각없이 지나쳤던 그 동네에 왔다니!
고고학박물관에는 ‘우리가 예전에 이렇게 잘나갔던 동네야~’라고 강력히 외치는 듯 신화 속 테베의 아우라가 느껴지는 유물들이 많이 진열되어 있었다. 정문 들어서자마자 스핑크스-오이디푸스 신화에 대한 설명과 스핑크스가 그려진 작은 석관이 있었다. 아마 세상이 다 아는 이 스토리가 바로 우리 동네 이야기라고 알려주고 싶었나 보다. 또 천하장사 헤라클레스가 자란 동네라는 것도 자랑하고 싶었는지 헤라클레스 유물도 바로 옆에 전시되어 있었다. 일개 유명 정치인이나 연예인이 태어난 곳도 관광명소로 홍보하는 곳이 많은데 헤라클레스 정도면 당연히 자랑할 만 하지. 그 외에도 기원전 테베 사람들의 모양을 남긴 그림과 조각상들도 남아 있었다. 그래, 왕년에 금송아지 키운 동네 맞다. 인정.
테베는 신화 뿐만 아니라 실제 역사에서도 큰 임팩트를 준 곳이기도 하다. 스파르타가 펠로폰네소스 전쟁 승리 후 그리스의 맹주 노릇을 하던 B.C 371년, 테베가 레욱트라(Leuctra) 전투에서 스파르타를 이김으로써 아주 잠깐 그리스 대장을 먹은 적이 있었다. 이 때만 생각하면 여전히 감격스러운 가보다. 시내 한 복판에 레욱트라 전쟁을 승리로 이끈 에파미논다스 장군의 동상을 세워놨다. 아쉽게도 곧 마케도니아에게 폭망해서 그 후 별 의미없는 동네가 됐지만.
또 테베는 "신성부대(Sacred Band)"라는 세계 최초의 동성애 부대를 운영했던 점도 유명하다. 사랑하는 동성 연인 150쌍 300명을 하나의 부대로 편성해서 사랑의 힘을 바탕으로 막강 전투력을 과시했다나 어쨌다나. 신성부대는 실제 B.C. 338년 케로네아 전투에서 마케도니아 필립 2세(알렉산더 대왕의 아버지)에게 전멸당할 당시에도 최전방에서 가장 용맹스럽게 싸웠다고 한다. 테베 시내에서 약 15분 정도 달려 신성부대가 장렬히 전사했다는 전투 현장에 가보니 이들을 기리는 무덤과 사자상이 있었다. 1879년 고고학 발굴단이 이 자리에서 신성부대원 254구의 유해가 커다란 직사각형 모양 안에 7열로 나란히 누워있는 걸 발굴했다고 한다. 무덤 자리 위에 있는 사자상은 당시에 있었던 것들이 깨지고 부서져서 후에 새로 만든 것이라고. 역사에 문외한이라도 이런 현장에 오면 일단 감동 한바가지 들이켠다. 내 주변에 케로네아 전투 격전지에 와 본 사람 있으면 나와보시라!
지금은 우리나라 소도시보다도 훨씬 떨어지는 외양이지만 잠시나마 그리스를 호령하고 세계사책에 당당히 한 줄 그 이름을 남긴 테베에 와서 그 당시를 떠올려 보는 것도 그리스 생활의 즐거움 중 하나이다. 그리스에 살아보는 자체가 큰 복일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