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보물창고, 펠로폰네소스 반도
'펠로폰네소스'라는 이 발음도 어려운 지명은 중학교 세계사 시간에 처음 들어본 것 같다. 아마 그리스 패권을 둘러싸고 아테네와 스파르타 간에 벌어졌던 펠로폰네소스 전쟁(B.C. 431~404)에 대해 배울 때였을 것이다. 아주 오래 전 수업시간에 잠시 듣고 흘려 버렸던 펠로폰네소스 반도가 집에서 겨우 1시간 거리에 있다는 걸 알고 급흥분을 주체하지 못했다. 이건 못참지. 그리스에 도착하고 맞이한 첫번째 주말에 당장 다녀왔다. 앞으로 주구장창 갈테니 일단 첫날은 가볍게 가기로 했다. 에피다우로스 극장, 나프플리오, 코린트(신약성경 고린도서의 그 고린도) 이렇게 세 군데만을 목표로.
먼저 에피다우로스 극장에 갔다. 그리스 고대 극장 중 가장 보존이 잘 된 극장이다. 보존이 나름 잘 돼 있다는 아테네 시내 디오니소스 극장과 비교해 봐도 천지차이다. BC 4세기에 지어졌다는데 19세기 후반 발굴될 때까지 6미터가 넘는 흙더미 속에서 고스란히 그 원형을 유지하고 있었다고 한다. 맨 아래 무대와 계단식 부채꼴 모양의 객석 등이 현대 극장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다. 객석에 직접 올라가보니 경사가 꽤 심하긴 하지만, 대신 무대와 객석의 거리가 좁아져서 소리 전달이 잘 되게끔 설계되어 있다. 게다가 객석에서 무대를 바라보는 방향 저 앞으로 펼쳐진 아름다운 풍광이라니. 무려 12,000명이나 수용한다고 한다. Unbelievable! 요새도 여름마다 정기적으로 공연을 한다고 한다(마이크 없이!).
그 다음으로 찾아간 곳은 나프플리오(Nafplio, Ναφπλιο). 포세이돈의 아들 나프플리오스가 건설한 도시라는 신화가 있으며 19세기 초 터키로부터 독립한 이후 최초로 그리스의 수도였던 도시이다. 현지 지인들이 강추하는 도시라 나중에 가족들과 같이 오기 전에 답사 형식으로 가본 셈이다. 전체적으로 도시가 예쁘긴 하다. 바닷가 해안도로나 구 시가지 골목들이 다 아기자기하다. 바다에는 부르지 요새가 떠 있고, 깎아지른 바위산 위에는 도저히 함락을 못시킬 것 같은 요새가 떡 하니 버티고 있다. 팔라미디라는 요새인데 베네치아 왕국 지배 당시 건설됐으며 독립 이후에는 감옥으로도 사용된 바 있다고 한다. 계단이 약 1000개 정도 된다던데 더워서 등반은 포기했다. 다음을 기약하며.
* 2019년 JTBC에서 방영된 <초콜릿>이란 드라마에서 배우 윤계상님이 자전거 타고 가는 길이 너무 익숙해서 깜놀했다. 나프플리오에서 찍었네!!
이날의 마지막 코스는 코린트였다. 어릴 적 읽은 책에 그리스 철학자 디오게네스와 알렉산더 대왕의 일화가 있다. 알렉산더 대왕이 코린트에 와서 디오게네스를 찾아가 "원하는 것을 다 해주겠다.. 말해보라"고 하자, 디오게네스가 "아 비켜. 햇빛 가리지 말고!"라고 했다는. 그 역사적 장소에 두 사람의 동상을 세워놓았다(나름 고증을 거쳐 비슷한 장소를 찾았다나 어쨌다나..). 옛날옛적 책에서 봤던 스토리가 이렇게 동상으로 구현되어 있으니 얼마나 반갑던지! 이 동상에서 약 도보 5분 거리에는 사도 바울이 고린도에 와서 처음으로 세운 교회가 있다. 한국에서 성지순례 여행오시는 분들의 필수코스이다. 현관 왼쪽 옆에는 이 교회 역대 교역자 명단이 석판에 새겨져 있는데..제1대 목사에 사도 바울 이름이 똬!! 간지 작렬이다.
몇 시간 잠시 나들이 하고 온 것 치고는 보고 느끼고 감동받은 게 너무 크다. 펠로폰네소스 반도, 앞으로 수시로 들락거릴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