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에서 살아봤습니다-7
(이건 좀 아쉽더라)

사람사는 데 좋은 면만 있으랴.

by AMAP

그리스에 거주한 지 서너 달 지났을 때였나, 기대보다 훨씬 더 맘에 들었다. 도처에 산재한 문화유산이나 산토리니와 미코노스의 그림같은 풍경은 말할 것도 없고, 그 외에도 좋은 점들이 여럿 있었다.


하나, 사람들이 매우 친절했다. 애들 학교 친구들이나 학부모들은 물론 오다가다 길에서 만나는 사람들도 대부분 호의적이고 기본 성품이 순했다. 행정업무 때문에 현지 경찰서에 간 적이 있었는데 마침 자기네 팀 사람들 마실 커피를 주문하고 있었다. 그 때 갑자기 “당신도 주문해요. 뭐 드실라우?”라고 물으며 커피 한 잔 사주기까지 했다. 거의 옛날 우리나라에서 모르는 사람에게 “이거 한 번 잡솨봐~” 하는 수준이었다. 특히 갑자기 간단한 그리스어 몇 마디라도 하면 순간 광대승천하면서 친절도가 급상승했다. 다른 유럽 국가 어디서도 경험하지 못한 인간적 따뜻함이었다.


(좌) 한국전 참전 기념비, (우) '영웅들'이라고 쓰인 표석과 이낙연 총리가 헌화한 꽃

둘, 한국에 대한 유대감과 호감도가 기대 이상이었다. 우선 한국전쟁에 참전했던 인연을 소중히 여기고 있었다. 그리스는 1950-53년 기간 연인원 약 1만명을 파병했다. 당시 그리스 인구가 8백만이 안됐고 이 중 20대 남성이 약 7%(약 56만명)였다고 하니, 50명 중 1명은 참전한 셈이다. 꽤 높은 비율이다. 또한 한국의 경제발전에 대한 동경도 상당했다. 휴대폰 개통하러 갔을 때 매장 직원도 “당신네 나라처럼 빠르고 좋진 않을 겁니다”라고 이야기할 정도였다. 그리스도 나름 유럽인지라 아시안에 대한(특히 동남아) 약간의 인종차별은 있었던 것 같은데 한국인이라고 하면 거의 "쌍따봉"이었다.


(좌) 아테네 쇼핑몰, (우) 오페라 '토스카' 광고

셋, 생활여건도 꽤 좋았다. 우리 가족이 있을 당시 그리스 경제상황이 안좋아서 현지인들은 생활이 어려웠지만 우리나라 주재원 입장에서는 현지 물가가 매우 착했다. 같은 돈으로 구매력이 꽤 괜찮았다. 커피값도 음식값도 한국의 반값이었고, 오페라 공연도 예술의 전당보다 훨씬 쌌다. 쇼핑센터에 가도 우리나라에 있는 브랜드들 전부 있는데 가격은 훨씬 괜찮았다. 덤으로 서울-제주도 여행갈 돈으로 인근 유럽지역 여행이 가능한 건 말할 것도 없었고.


이렇게 살기 좋은 동네에도 매.우.매.우 아쉬운 점은 있었으니..


(좌) 지하철 개찰구, (우) 90분간 지하철과 버스를 이용할 수 있는 티켓(1.4유로)

하나, 사람들의 도덕적 해이가 심각했다. 지하철 탈 때 개찰구를 뛰어넘어 가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는데 역무원들은 전혀 제지하지 않았다. 그냥 ‘돈이 없나 보지 .좋은 게 좋은 거’ 식으로 눈감아 주는 분위기였다. 내가 표를 넣고 들어갈 때는 무임승차자 한두 명이 슬그머니 뒤따라 와서 같이 들어간다. 지하철 탈 때는 내가 항상 수비수를 두 명 이상 달고 다니는 Messi가 된 기분이었다. 어찌나 난감하던지.


둘, 규정을 지키면 손해라는 분위기가 있었다. 아이들 말에 따르면, 학교에서 과제물을 언제까지 제출하라고 하면 안지키는 학생들이 절대다수라고 한다. 기한을 안지켜도 페널티도 없고 오히려 하루 이틀 늦게 내고 점수를 더 잘 받는 경우도 많았다고 들었다. 한국에서 교육받은 우리 부부는 아이들에게 그래도 제 때 내라고 말했지만 그러면 오히려 손해라고 하는 데 할 말이 없었다. 심지어 시험날인데 학생들이 단체로 “선생님, 오늘 시험보지 말아요~~”라고 하면 그 날 시험을 안보기도 했다고. 한국에선 상상도 못할 일이다.


셋, 줄을 잘 안선다. 그리스 생활 초창기 시내 맥도날드에 갔다가 한참 동안 주문도 못하고 서있었다. 사람들이 줄 안서고 밀고 들어오는 바람에. 나중엔 나도 몸싸움하면서 주문대로 전진해갔다. 몸빵실력을 키워야 제 때 햄버거도 먹을 수 있었다. 우리 애들도 초반에는 학교 매점에서 쉬는 시간에 아무 것도 사지 못했다고 했다. 그러다가 자기도 먹고 살자니 새치기에 몸빵을 할 수 밖에 없었다고 하더라.


넷, 사람과 자동차가 경합할 때는 자동차가 우선이었다. 신호등 없는 횡단보도에 있다가 당연히 차가 멈추리라 기대하고 건너다가 요단강 건널 뻔했던 적이 두어 번 있었다. 심지어 신호등이 있는 곳에서도 초록불이 켜져서 건너는데 차들이 내 앞을 ‘주먹 하나 차이로’ 지나간 적도 있었다. 휴..


사람 사는 동네가 항상 좋기만 하겠냐만은..이런 면은 좀 나아지면 좋으련만. 친그리스 인사로서 안타까워서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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