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에서 살아봤습니다-8 (이 맛에 여행 오지)

더 예쁜 곳을 아직 못봤다.

by AMAP

90년대에 대학생들 사이에 유럽 배낭여행 붐이 일었다. 너도 나도 배낭 하나 메고 유럽으로 떠났다. 이 때만 해도 배낭여행객들의 주요 목적지는 런던, 파리, 로마 등이었다. 타워브릿지, 에펠탑, 콜로세움 직접 한 번 봐줘야지. 초창기에는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에 대한 선호가 워낙 강해서 베를린이나 암스테르담 같은 유명 도시들도 시간이 남으면 가보고 아니면 말고 식의 후순위였다. 그리스는 아테네도 아예 순위에 없던 시절이었으니 산토리니는 이름조차 아무도 들어보지도 못한 ‘듣보잡’ 그 자체였다.


포카리스웨트 광고(사진출처 : 구글)

그럼 산토리니는 언제부터 한국인들 사이에 이렇게 유명해졌을까. 2001년이었나, 당시 최고의 미녀 배우 손예진님이 출연했던 포카리스웨트 광고 이후라고 생각한다. 하얀 벽과 푸른 지붕이 있는 건물들 사이로 나있는 예쁜 골목을 국내 최고의 여배우가 하얀 셔츠에 푸른치마, 하얀 운동화를 신고 뛰어가는 모습은 청초함과 싱그러움 그 자체였다. 이 광고의 인기는 가히 폭발적이었고, 이후 산토리니는 시청자들에게 언젠가 꼭 가고 싶은 로망의 여행지가 되었다. 사실 손예진님이 뛰어갔던 곳은 산토리니가 아니라 미코노스였고 산토리니에선 아주 일부분만 촬영했던 걸로 나중에 밝혀졌지만, 한국인들에게 ‘천상의 그곳’은 이미 산토리니였다. 산토리니 인증샷은 그리스에 다녀온 걸 증명(?)하는 필수절차가 되어 버렸다. 당연히 우리 가족도 그리스에 오자마자 산토리니 일정부터 잡았다. 나는 세가지를 꼭 해보고 싶었다. 이아(Oia) 마을 풍경 보기, 보트 타고 섬 주변 돌아보기, 산토리니 와인 맛보기.


숙소 입구(도착일 밤 vs. 다음날 아침)

항공료가 제일 싼 시간대에 오다보니 거의 마지막 비행기로 도착했다. 자정 가까운 시간에 생판 처음 오는 곳에서 구글지도 하나 믿고 운전을 했다. 구글 반응이 느려 몇 차례 다른 길로 들어갔다가 다시 돌아나오는 경험을 하다가 겨우 호텔을 찾아 들어갔다. 사방이 캄캄해서 그냥 키 받고 방에 들어가 잠자기 바빴는데..아침에 그야말로 깜놀했다. 우와, 이게 산토리니구나!! 여행을 여러 군데 다녀봤지만 이렇게 호텔과 주변 경관이 아름다운 곳은 처음이었다. 이래서 사람들이 산토리니..산토리니 했구나. 더구나 이 숙소는 우리가 TV에서 많이 본 산토리니 풍경이 있는 그 동네도 아니었다. 그럼 대체 거긴 얼마나 예쁜 거야!


(좌) 숙소 앞 골목, (중) 길 가 버스정류장, (우) 숙소 앞 경치

간단히 아침 식사를 하고 그리스에 오면 반드시 인증샷을 남겨야 하는 바로 그 ‘이아 마을’로 떠났다. 20여분 달려가는 해안도로도 어찌나 멋지던지. 전 세계 관광객들을 빨아들이는 블랙홀일 수밖에 없었다. 구글지도가 도착 10분전, 5분전을 가리킬 때마다 마음은 쿵쾅쿵쾅 사정없이 뛰었다.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광경을 곧 만난다니..명성에 비해 무척 협소한 주차장에 꾸역꾸역 차를 밀어넣고 새하얀 벽과 푸른 지붕이 있는 그 교회를 보러 올라갔다. 아침 일찍부터 몰려든 사람들을 따라갔다. 경험상 이런 데선 구글지도보다 사람지도가 우선이더라. 수많은 관광객들이 가는 곳을 따라가면 되더라. 가는 도중에 보이는 '곁다리' 장면들도 어찌 그리 멋지던지. 큰길로 5분쯤 가다가 사람들이 왼쪽 좁은 골목으로 방향을 바꾼다. 거의 다 왔구나!


이아마을 절경(이거 보러 왔다)

드디어 그 장면이 눈앞에 나타났다. 깎아지른 절벽 위에 다닥다닥 붙어 있는 새하얀 벽과 둥근 지붕의 집들, 눈이 부시도록 상쾌한 코발트 블루 지붕, 그 아래 에게해의 바다와 섬들..TV나 관광책자에서 질리도록 봤던 그 장소에 드디어 왔다. 이거야 이거! 여태껏 내가 봤던 풍광 중에 비교할 대상조차 없을 정도로 최고의 아름다움이었다. 우리는 아테네에서 갔지만, 이 장면 하나 보기 위해 한국에서 그리스에 온다고 해도 인정할 만했다. 일단 인증샷부터 남겼다. 여기 사진 없으면 그리스 여행 무효니까. 맘 같아선 한동안 멍때리며 이 장면을 바라보고 싶었는데 사진 찍으려고 뒤에 줄을 서 있는 사람들이 많아 금세 나올 수밖에 없었다. 대신 뒷걸음치며 그 프레임을 눈에 발랐다. 행여 뒤돌아보면 소금기둥이 된다고 협박을 하더라도 상관없었다.


이아마을 돌아다니다 눈에 보이는 경치들

사람의 혼을 빼놓는 절경은 여기 뿐만이 아니었다. 마을 골목골목이 하나같이 예뻤다. 나도 모르게 탄성이 멈추질 않았고 카메라를 손에서 놓을 수 없었다. 인물을 가운데 넣고 사진을 찍기 미안할 정도로 눈에 보이는 모든 경치가 밝고 빛이 났다. 지상낙원 같은 이 동네에서 한 일주일 머물고 싶었다. 저 하얀 집에서 자고 일어나 에게해를 바라보며 모닝커피를 한 잔 마시고 싶었다.


(좌) Atlantis 서점, (우) 산토리니 명물 당나귀

거 참, 동네 중앙에 있는 작은 서점은 왜이리 이쁘다냐. 평소 서점이랑 그렇게 친한 사이는 아니라 향후 읽을 것같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기념으로 한 권 샀다. 이 책 표지만 봐도 산토리니 추억이 떠오를 것 같아서. 서점에서 나오는데 마침 당나귀들이 짐을 지고 골목 사이를 지나간다. 산토리니의 명물이라 하는데 난 좀 불쌍하더라. 저 절벽 아래에서부터 짐을 지고 올라온다니.


어떤 사람들은 해외여행이 낭비이자 사치라고 하는데 나는 동의하지 않는다. 지상 최고의 절경을 직접 와서 보고 느끼고 그 감동을 평생 가슴에 간직하는 것만으로도 비용은 충분히 뽑는다고 확신한다(물론 빚내서 무리하게 다니는 건 낭비맞다). 다녀온 지 여러 해가 지났어도 사진만 봐도 가슴이 벅차고 그날의 감동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산토리니에 아직 가보지 못하신 분들께 꼭 한 번 가보시길 강력히 추천드린다.


p.s.) 보트투어와 와이너리 방문은 다음 포스팅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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