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만 쓸 수 있는 이름, 페타치즈.
어제 치즈 한 봉지 사러 동네 마트에 다녀왔다. 늘 편하게 사는 서울우유 치즈를 하나 집으려는데 그 옆에 오래된 그리스 친구가 눈에 보였다. 바로 '페타치즈'. 이게 얼마 만이냐! 어찌나 반갑던지. 본의 아니게 그동안 격조했다.
그리스에 있을 때 종종 가족들과 동네 식당에 가서 그리스식 메뉴로 저녁을 먹곤 했다. 매번 주문하는 게 비슷했다. 수블라끼와 양고기를 메인으로 하고 애피타이저로 그릭 샐러드와 사가나끼(페타치즈를 튀긴 요리로 보통 레몬이나 라임과 같이 나옴)를 주문하는 식이었다.
그릭샐러드와 사가나끼에 공통적으로 들어가는 것이 페타치즈이다. 페타치즈는 올리브오일과 더불어 그리스 음식의 건강성을 상징하는 양대산맥 중 하나로, 우리나라의 김치처럼 그리스인들의 식탁에 빠지면 안되는 음식이다. 여기저기 다 넣어 먹지만 주로 그릭샐러드에 넣어 먹는다. 양젖 또는 양젖과 염소젖을 혼합하여 만들었으며 그리스와 다른 발칸지역 국가에서 주로 생산된다. 그리스 지역이 산세가 험해 소를 키우기에 적합하지 않아 대신 양과 염소를 키우게 돼서 여기 사람들이 양젖이나 염소젖으로 만든 페타치즈를 많이 먹게 되었다고 한다. 이날이었나, 집에 와서 책을 보다가 우연히 페타치즈 관련해서 그리스-덴마크 간에 있었던 분쟁에 대해 알게 되었다. 간단히 소개하면,
페타치즈가 맛이 있고 장사가 되니 그리스 외에 다른 나라에서도 눈독을 들이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그래서 덴마크에서도 비슷하게 만들어 '페타치즈'라는 이름을 붙여 판매하고 있었는데 여기에 그리스 농림부가 딴지(?)를 걸었다. '페타(Feta, Φέτα)란 이름은 우리 그리스만의 것이야~' 라고. 일명 "페타치즈 분쟁" 이다. 이후 유럽사법법원(European Court of Justice)이 내린 판결에 따라 2007년 이후로는 그리스에서 생산된 제품에만 '페타'라는 명칭을 쓸 수 있게 되었다. 내용인즉슨,
덴마크는 그간 페타라는 이름으로 치즈를 만들어 대량 수출해 왔는데 이는 소젖을 인위적으로 희게 탈색시킨 것으로(원래 소젖으로 만든 치즈는 노란색 계통이라 함) 그리스 오리지날 페타라는 달랐다고 한다. 이에 1992년 그리스-덴마크간에 분쟁이 생겼고 최종 판결이 2002년에 나온 것이다. 분쟁의 핵심은 페타라는 명칭이 일반치즈에 사용할 수 있는 통칭(Generic Connotation) 인지 아니면 그리스산 치즈에만 사용할 수 있는 특칭(Specific Characteristics)인지 였다.
유럽사법법원은 그리스의 독특한 자연환경에서 자라는 양과 염소가 페타치즈 특유의 맛을 내게 한다는 종전 EU 집행위원회의 결정을 지지하면서, 오로지 그리스에서 생산되는 페타치즈만이(게다가 최소 70%이상이 양젖이어야 하고 염소젖은 30%를 초과해선 안됨) "페타"라는 명칭을 쓸 수 있으며 다른 나라 제품은 5년 유예기간 후 즉 2007년부터는 이름을 바꾸라고 판결했다. 그리스 농림부 무역분쟁사의 쾌거라 할 수 있었다.
역시 내 밥그릇 건드리면 죽도록 맞서 싸우는 게 맞다. 그리스 잘했다!
P.S.) 당시 유럽사법법원이 발표한 보도자료 중 일부를 발췌해서 소개한다.
In the Commission’s view, the name ‘feta’ has not become the common name for an agricultural product or a foodstuff and, therefore, has not become generic. The geographical area defined by the Greek legislation covers only the territory of mainland Greece and the department of Lesbos. Extensive grazing and transhumance, central to the method of keeping the ewes and goats used to provide the raw material for making Feta cheese, are the result of an ancestral tradition allowing adaptation to climate changes and their impact on the available vegetation.
This has led to the development of small native breeds of sheep and goats which are extremely tough and resilient, fitted for survival in an environment that offers little food in quantitative terms but, in terms of quality, is endowed with an extremely diversified flora, thus giving the finished product its own specific aroma and flavour. The interplay between the natural factors and the specific human factors, in particular the traditional production method, which requires straining without pressure, has thus given Feta cheese its remarkable international reputa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