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정만은 세계 1위!
유럽은 축구다. 유럽 사람들이 즐기는 여러 스포츠 중에 축구만큼 열정과 팬심이 압도적인 종목은 없다. TV 중계를 통해 유럽 명문팀들의 경기를 봐도 이들의 축구 사랑은 가히 광적이라고까지 할 수 있다.
그리스 축구는 어떤지 궁금했다. 남들이 알아주든 안알아주든 이래봬도 EURO 2004 우승국 아닌가! 그리스 리그 경기 수준이야 스페인이나 잉글랜드보다 못하겠지만 축구문화, 팬심 등에 호기심이 있었다. 잘나가는 리그만큼 열정적일까, 응원 문화는 어떨까, 경기장 분위기나 시설은 어느 정도일까 등.
그리스에 오자마자 1부리그(수페르리가 엘라다) 경기를 검색해 봤다. 마침 당시 리그에서 1, 2위를 다투던 팀들간 경기가 얼마 후에 있었다. 한 팀은 '올림피아코스'라는 팀으로 리그 최고의 명문클럽이었다. 그리스에선 유일하게 유럽대항전(컨퍼런스 리그)에서 우승한 경력이 있었고, 한 때 황인범과 황의조 선수가 뛰었던 팀이다. 또 다른 팀은 AEK라고 올림피아코스를 맹추격하는 신흥 다크호스였다.
경기 장소는 AEK 홈구장이었다. 그리스어를 모르니 인터넷 예약은 못했고 당일에 일단 경기장으로 갔다. 혹시나 매진될까봐 두 시간 정도 일찍 나갔다. 너무 일찍 갔나보다. 아무도 없었다. 매표소도 아직 오픈을 안했다. 킥오프 1시간 전쯤되니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했고 매표소 창구도 열렸다. 컨테이너 박스를 개조한 약간은 조악한 형태였다. 창구 앞에 모여든 수백 명 중 동양인은 내가 유일했다. 사람들이 막 쳐다보고 구경하는 모양새였다. 창구 직원도 내가 가니 바로 가격표를 내놓는다. 말이 안통한다는 걸 예상한 듯하다. 대충 가격이 중간쯤되는 20유로짜리를 샀다. 3만원 가까이 되니괜찮겠지 뭐. 실제 자리도 나쁘지 않았다. 나름 유럽축구인데 3만원에 보는 건 꿀이잖아!
경기장에 들어갈 때만 해도 좋았는데..곧 환장하는 줄 알았다. 왜들 그렇게 관중석에 앉아 담배를 피워대는 것이야..ㅠ.ㅠ 약간 과장하면 3만 관중 모두가 담배를 피우는 줄 알았다. 그것도 경기가 끝날 때까지. 광적인 응원단이 피우는 연기에 담배연기까지 더해져 경기장이 온통 자욱했다. 중간중간에 만취한 아저씨들이 웃통 벗고 생쇼하는 건 덤이라고나 할까. 또 경기 시작 전 화장실에 가려 했는데 화장실이 어느 구석에 숨어 있는지 보이질 않았다. 마침 주변을 보니 아저씨들이 자연스럽게 노상에서 해결을 하고 있었다. 아 이건 아니지..라고 생각했으나 결국 나도 어쩔 수 없었다.
그리스 사람들 축구장에서도 참 정겨웠다. 외국인이 왔다고 처음보는 사람들이 맥주와 담배를 권한다. '한 잔 해~', '한 대 빨아봐~' 정중히 거절했더니 이번에는 도너츠를 줬다. '이거 한 번 잡솨봐~' 게다가 그리스엔 왜 왔는지, 얼마나 살 건지, 그리스 축구에 대해 아는 건 있는지, 심지어 애는 몇 명인지 온갖 질문을 해댔다. 좋게 말하면 호의와 관심이고 달리 보면 엄청난 오지랖이었다. 마치 70-80년대 한국 사람들 보는 느낌이었다.
이렇게 유순하고 정겹던 아저씨들이 경기 내용에 따라 실시간으로 감동과 흥분을 온몸으로 보였다. 마구 환호하면서 옆사람 껴안다가 갑자기 쌍욕을 하면서 소리를 지르고. 나중에 역전을 했을 때는 경기장 전체가 아수라장이었다. 남녀노소 관계없이 포옹하고 함성을 지르고. 졸지에 나도 처음 보는 여러 명과 껴안고 본의 아닌 부비부비를 경험했다. 그리스 축구장 장난 아니구나!
경기가 끝날 무렵 스타디움 밖에서 경찰 사이렌과 공포탄 쏘는 소리가 들렸다. 옆자리 아저씨에 따르면 진 팀 팬들이 소요를 일으켜 경찰이 진압하는 거라고 한다. 자주 있는 일이라고. 대신 외국인 혼자 나가면 혹시라도 해코지 당할 수도 있으니 자기랑 같이 나가자고 했다. 30분쯤 기다리다가 결국 그 아저씨랑 같이 나왔고 그 분이 차로 지하철역까지 데려다 주기까지 했다. 정겹다 정겨워~
잉글랜드 프리미어 리그가 아니면 어떠리, 나름 '유럽축구'를 단돈 20유로에 직관했으면 됐다. 이 팀들도 유럽 챔피언스리그 나가는 팀들이구만. 경기 직관뿐만 아니라 그리스 팬들의 (약간은 과도한) 축구사랑도 현장에서 느낄 수 있었고, 생각지도 않았던 그리스인들의 '정'까지 느낄 수 있었다. 모든 게 그리스다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