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가 망하면 진짜 모두가 힘들다.
요즘 4인 가구 기준으로 하루 생활비가 얼마나 들까? 작년 기사에 따르면 4인 가구 최저생계비가 월 195만 1287원이라 한다(조선일보, 2024.7월). 최저생계비가 그렇다니 중산층 가정 생활비는 그보다 훨씬 많이 들 것이다.
2017년 가을 그리스에 갔을 때 아주 황당한 일을 경험했다. 당시만 해도 그리스는 카드보다는 주로 현금으로 결제를 했기 때문에 ATM기에 수시로 갈 수 밖에 없었다. 하루는 현금 찾으러 은행 ATM기에 갔는데 돈이 인출이 안됐다!! 기계 화면에는 'Available Balance'가 0.00 euro라고 뜨고. 앗, 남은 돈이 없다구?? 내 돈을 다 도둑맞았나?? 눈 앞이 노래졌다. 외국에 막 왔는데 돈을 한 푼도 남김없이 도둑맞다니..초기 정착비용이 많이 필요할까봐 한국 계좌에 있는 돈도 긁어서 유로로 바꿔와서 여기 계좌에 다 넣어뒀는데.
잠시 어안이 벙벙했다가 정신차리고 창구 직원을 찾아갔다. 은행 안에 사람들이 어찌나 많던지 불안한 상태로 한참을 기다릴 수 밖에 없었다. 내 차례가 와서 안되는 영어로 사정을 설명했다. 아, 직원이 내게 축복을 내려주셨다. "돈 계좌에 그대로 있어요"라고. 휴..다행이다. 그럼 왜 인출이 안됐는지 물었다. 직원은 내가 한달 인출한도 1,800유로를 이미 다 찾았기 때문에 다음 달이 되어야 다시 찾을 수 있다고 했다(인출한도? 이건 또 뭔 X소리야..). 내가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니 기사를 검색해 보라고 했다.
바로 검색해 봤다. 아, 이런 일이 있었구나. 2015년도에 그리스 경제위기가 심각할 때 그리스 정부가 뱅크런을 우려해서 한 계좌당 하루 60유로까지만 인출할 수 있도록 한도를 정해놨다고 한다. 2015년이면 내가 갔을 때보다 2년 전인데 아직 그 조치가 유효했나 보다. 그저 밥만 먹고 살자면 하루에 60유로(약 8만원)로도 살 수 있겠지만 뭉칫돈이 들어가는 경우가 생기면 답이 없었다.
어쩔 수 없이 애들 간식도 안사주고, 외식도 안하고, 웬만한 곳은 다 걸어다니면서 일주일을 버텼다. 하지만 그 이상은 어려웠다. 정상적으로 문명인의 생활을 영위하기 위해선 특단의 조치가 필요했다. 다행히 외국발행 카드는 인출제한 대상이 아니라고 했다. 한국에 있는 가족에게 사정을 설명하고 일정 금액을 계좌이체로 받고 나서야 내 국민은행 체크카드로 돈을 뽑을 수 있었다. 그렇게 살다가 다음 달 첫날 다시 60유로를 인출할 때 어찌나 감격스럽던지!
외국인인 우리야 이렇게라도 방법이 있었지만 현지인들은 참 힘들었겠다. 아찔한 경험이었다.
p.s.) 현지인들에게 들은 바로는, 그리스 경제상황이 안좋아지고 부실은행들도 신뢰할 수 없게 되자 돈 있는 사람들은 집에 현금 다발을 보관하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그래서인가 잘 사는 동네는 집집마다 담이 매우 높고 맹견들도 많이 키우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