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식용유 사러 마트에 다녀왔다. 포도씨유나 해바라기유가 저렴해서 요샌 그걸 자주 쓴다. 그런데 선반 맨 윗칸에 올리브오일이 보인다. 그것도 전부 엑스트라 버진(Extra Virgin)이다. 스페인과 이태리 제품인데 가격이 꽤 나가서 선뜻 집기가 쉽지 않다. 아, 나도 왕년에는 올리브오일 펑펑 먹으면서 살았는데.
그리스에 살 때 올리브오일을 진짜 많이 먹었다. 그릭샐러드에 뿌려 먹는 건 기본이고, 계란 후라이 할 때도 후라이판에 빙 둘러 뿌렸고, 식빵도 찍어먹었다. 그리스에 가기 전에는 올리브오일의 존재를 아예 몰랐고 한평생 '해표식용유'만 먹어왔다. 그러다가 그리스에 왔는데 현지 마트엔 익숙한 해표식용유가 없으니 특이한 걸 고른 게 바로 올리브오일이었다.
냄새부터 향긋했다. 잔디를 막 깎고 났을 때의 냄새가 났다. 오우 이거 뭐야! 작은 스푼으로 한 숟갈 따랐다. 식용유를 대놓고 먹어본 적이 없으니 바로 삼키기는 좀 그래서 혀 끝에 살짝 묻혔다. 허브향이 나는 거 같기도 했다. 꿀꺽 삼켰다. 처음엔 향긋한 풀 냄새가 강했는데 목으로 넘어가는 뒷끝엔 약간 쌉싸름한 맛도 났다. 대박이었다. 이런 맛 처음이야! 그야말로 본토에서 제대로 된 걸 먹는 느낌이었다. 그 후 올리브오일은 내 식단과 늘 함께 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단지 맛만 좋은 게 아니었다. 콜레스테롤을 관리해 주고 암세포 사멸을 촉진시켜 주는 등 효능도 꽤 좋다고 한다.
그리스에선 올리브오일을 우리가 김치 먹듯이 먹는다. 당시에 검색했던 바로는 1인당 연간소비량이 세계 최대라고 한다(그리스-스페인-이태리 순). 마트에 가도 꽤 다양한 종류의 올리브오일들이 있었다. 평범한 기름병 모양도 있지만 꼬냑병 같은 멋드러진 모양도 있었다. 역시 수요가 많으니 공급자들이 열심히 뛴다.
어제 마트에서 본 스페인산과 이태리산 올리브오일을 보니 전부 엑스트라 버진이다. 엑스트라 버진이 있다면 그냥 버진도 있겠지. 검색해 보니 둘은 당연히 달랐고 이름이 말해주듯 퀄리티 차이가 있었다.
1) Extra Virgin Olive oil
수확한 올리브 열매를 24시간 이내에 으깨서 즙을 짜낸 압착유로 화학적 공정을 거치지 않아 가장 신선하다. 전체 올리브오일 생산량 중 20% 미만 만이 Extra Virgin 등급을 받는다. 산도가 낮으며 발화점이 낮아 열을 가하면 영양분이 날아가므로 튀김용보다는 샐러드나 식전빵을 먹을 때 주로 사용한다(계란후라이엔 해표식용유가 더 좋겠구나~).
2) Virgin Olive oil
엑스트라 버진과 같은 공정을 거쳐 생산하지만 그보다 약간 못미치는 소위 '아차상' 정도 되겠다. 물론 식용가치가 충분한 고품질 올리브오일이다. 시장 생산량의 약 50~60%를 차지한다고 한다.
그 외에 Pure Olive oil이라는 게 있는데 이건 Extra Virgin에 정제 오일(Refined Olive oil)을 섞은 것이라 한다. Pure라는 명칭만 보면 마치 티 하나 없이 깨끗한 최상품일 거 같지만 실은 그렇지 않다. 주로 튀김용으로 막 쓰는 오일이다.
유럽 남부 3국(그리스, 스페인, 이태리)의 올리브오일이 세계적으로 유명한데 그 중 그리스산이 최고라고 한다. 다양한 올리브 품종 중에 그리스에서 재배되는 올리브의 약 80%를 차지하는 Koroneiki라는 게 있는데 퀄리티가 거의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올리브계의 Messi라고. 또 그리스는 스페인이나 이태리와 달리 올리브오일과 다른 식물성 오일을 섞어서 판매하는 것을 법으로 금지하고 있다고 한다. 그러니 품질이 좋을 수 밖에! 물론 그리스측의 주장이긴 하다(법조문을 확인하진 못했음).
어쨌거나 이 맛난 그리스 올리브오일을 한국에서도 먹으면 좋겠는데 이게 쉽지 않다. 그리스가 소비량은 세계 1위지만 아쉽게도 생산량은 3위이다(스페인-이태리-그리스 순). 그리스 어딜 가도 올리브나무가 널려있지만 지형이 고르지 못해 현대적 농법이 어렵고 또 대부분 영세농이라 대규모 상업적 농업이 어렵다고 한다. 마치 재능은 짱인데 집안이 어려워 제대로 교육을 받지 못해 성장하지 못하고 꺾여버린 아쉬운 인재 같다. 영화 <그리스인 조르바>에 나오는 크레타(Crete)섬이나 축구선수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의 휴양지로 유명한 깔라마따(Kalamata)섬에 실제로 가보니 도처에 널려 있는 올리브나무들이 아주 장관이더만. 우리나라 같으면 어떻게든 생산량을 늘려서 벌써 전 세계 시장을 장악하고 달러화 잔뜩 세고 있겠네.
그래서 어제 뭐 샀냐구요? 난 해표식용유. 싸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