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원전에 이등변삼각형이라니.
그리스엔 크고 작은 섬이 6천여 개나 있다고 한다. 관광객들은 주로 산토리니, 미코노스, 크레타 같은 유명한 섬에 가지만, 거기까지 가긴 어렵고 그래도 그리스 섬은 체험해 보고 싶은 경우 아테네 근교에 있는 섬 투어를 한다. 관광으로 먹고 사는 나라이니만큼 당일치기로 서너 개의 섬을 도는 투어 프로그램을 여러 회사에서 운영한다. 나도 초창기에 당일치기 투어를 했던 적이 있다. 하루에 섬 3개를 돌고, 점심은 배 안에서 주고, 마지막에 그리스 전통복장을 한 직원들과 기념사진을 찍는 것까지 포함해서 1인당 100유로였던 걸로 기억한다(현지생활 몇 달 해보고 나니 엄청난 바가지였다는..ㅠ.ㅠ).
선미에 그리스 국기가 펄럭이는 배를 타고 아테네 피레우스항을 떠나 짙푸른 사로니코스만을 가르며 Aegina란 섬에 갔을 때였다. 부두에 내리니 이미 관광회사에서 준비한 투어 버스가 있었고 그걸 타고 어디론가 30-40분을 갔다. Aphaea 신전이란 곳이었다. 가이드가 이 신전과 관련한 그리스 신화 한 토막을 설명했다(다 못들은 부분은 나중에 다시 찾아봄). 크레타왕 미노스가 제우스의 딸 브리토마티스를 사랑하게 됐는데 그녀는 제우스를 피해 도망가다가 바다에 빠졌는데 나중에 그녀를 구해준 어부 또한 그녀를 사랑했다고 한다. 그래서 그녀는 애기나섬 근처에서 배에서 뛰어내려 숲속으로 도망쳤다고 한다. 그 후에 섬 사람들이 그녀를 애기나섬의 수호신으로 삼았고 신전을 건축했다고 한다.
여기까지는 뭐 그렇구나..했는데 다음 설명에서 깜놀했다. 가이드는 이 아페아 신전-아테네 파르테논 신전-수니온 포세이돈 신전의 위치를 지도로 보면 정확히 이등변삼각형을 이룬다고 했다. 그러면서 미리 준비한 지도를 보여줬다. 와! 신기하다. 진짜네. 이게 말이 되나? 고대 그리스에 뛰어난 수학자들이 많았더라도 이때는 이등변삼각형 개념조차 없을 때 아닌가? 나중에 찾아보니 유클리드가 기하학을 집대성한 시점도 위 신전들이 건축된 후였다. 저녁에 집에 와서 구글맵 거리측정 기능을 통해 3개 신전 간 직선거리를 재봤다. 앗, 정확히 44km-44km-29km가 나온다!! 아니 대충 비슷한 것도 아니고 어떻게 이렇게 정확하게 거리를 쟀을까. 셋 다 BC 5세기에 지어졌으니 약 2500년 전인데 산과 바다와 강을 가로지르는 직선거리를 그 당시에 어떻게..
급 궁금해서 인터넷을 검색해 보니 이런 이등변삼각형이 두 개나 더 있다. 델피 아폴론 신전-애기나섬 아페아 신전-아테네 파르테논 신전 간 직선거리는 각각 122km-122km-29km이고, 델피 아폴론 신전-아테네 파르테논 신전-올림피아 제우스 신전 간 거리는 각각 122km-122km-188km이다. 도저히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웠다. 이게 말이 되는 소리야??? 그런데 하나면 우연이라고 하겠는데, 셋이면..
수년이 지난 지금도 믿기 어려운 불가사의다. 고대 그리스, 진짜 대단했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