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린토스(고린도)와 네메아 당일치기 여행
교회 주일학교 때부터 성경에서 수시로 보던 고린도(코린토스)에 이렇게 자주 갈 줄은 몰랐다. 고린도가 집에서 겨우 1시간 거리라니! 다만 평일엔 하교 픽업시각을 고려하다 보니 오래 머무르긴 힘들었다. 고고학유적지 몇 군데 둘러보고 간단히 점심 먹고 오면 딱 시간이 맞았다. 그게 어디냐.
1. 시지프스 산
코린토스 왕 시지프스가 신에게 도전한 죄로 산 위로 바위를 밀어올리라는 형벌을 받았다. 그러나 바위를 정상에 올리면 다시 아래로 굴러 떨어져 버리는 게 문제였다. 즉 계속 바위를 정상에 올리고, 그 바위는 다시 밑으로 굴러 내려오고, 또 다시 위로 올리고..하는 반복적이고 의미없는 일을 해야 하는 벌이었다. 어릴 적 그림으로 된 그리스신화 책에서, 또 대학 시절 행정학 교과서에서 읽었던 내용의 실제 무대가 이거였구나! 신기했다. 바르셀로나 캄프누 경기장에서 Messi를 직접 보면 이런 느낌이었을까.
2. 페이레네샘
시지프스가 신에게 미움받게 된 계기와 관련이 있다. 제우스가 강의 신 아소포스의 딸 애기나를 납치했는데 이를 목격한 시지프스가 아소포스에게 귀뜸해 주는 바람에 아소포스는 딸을 구해낼 수 있었다(이로 인해 시지프스는 산으로 계속 바위를 올리는 벌을 받음). 당시 코린토스에는 식수가 부족했는데 시지프스 덕분에 딸을 구한 아소포스가 감사의 표시로 이 샘을 파줬다고 한다. 안내문에 보면 지금도 물이 나온다는데, 내부는 출입금지라 확인할 수 없었다.
3. 글라우케샘
개념없는 유부남 이아손이 아내 메데이아와 두 아들을 버리고 코린토스왕 크레온의 딸인 글라우케와 결혼했다. 이에 완전 꼭지가 돌아버린 메데이아는 복수의 화신이 됐다. 코린토스를 떠나겠다고 하면서 연적 글라우케에게 독이 발라진 드레스를 보냈고 이를 입자마자 글라우케는 화염에 휩싸였고 딸을 구하려던 아버지 크레온왕도 타버렸다. 글라우케는 몸이 뜨거운 불길에 휩싸여 고통받다가 샘에 몸을 던져 죽었는데 그것이 글라우케샘이다.
*메데이아에 대해서는 시중 서점에 책도 나와 있는데 너무 어려울 거 같아서 패스한다.
4. 아폴론 신전
BC 6세기에 지어진 건물로 그리스 신전 중 두번째로 오래됐다고 한다. 지금은 도리아식(찜질방 양머리 모양) 기둥 7개만 덩그러니 남아 있다. 특이한 점은 파르테논 신전은 여러 개의 돌을 이어붙여서 기둥을 세웠는데 여긴 기둥이 온전히 한 개의 돌로 이루어졌다. 지금은 흔적만 남은 신전 건물 자체보다는 뒤에 펼쳐진 푸른 하늘과 쪽빛바다와의 조화가 일품이었다.
5. 네메아(Nemea)
코린토스에서 차로 30분쯤 가면 네메아라는 동네가 나온다. 헤라클레스 신화와 관련이 있는 곳이다. 자기 자식을 죽인 죄를 씻고자 델피에서 12가지 과업을 신탁받았는데 이 중 하나가 네메아 계곡에 있는 사자 죽이기였다. 어릴 때 그리스 신화 책에서 헤라클레스가 사자랑 싸우는 장면을 본 기억이 나는데 거기가 바로 여기 네메아였다니! 지금은 우리나라 중소도시 보다도 못한 시골마을이지만 그래도 신화 속 무대라구.
슬슬 동네를 걸어다니다 보니 와이너리 간판이 많이 보였다. 이 동네에서 와인이 많이 나오나? 검색해 보니 여기가 대단한 곳이었다. 아기오르기티코(Agiorgitico)라는 그리스 레드와인 토착 품종 산지였다! 어쩐지 와이너리 표지판이 많더라. 서울의 동 한 개 정도 밖에 안되는 면적에 와이너리만 40개 가까이 있다고 한다. 시간 관계상 가장 가까이 있는 와이너리 한 곳에 들어가서 두 병 사왔다. 매장에서는 시음용으로 수십 병을 진열해 놨지만 안타깝게도 운전 때문에 시음은 못했다. 신화에 따르면 네메아 와인은 헤라클레스가 죽인 사자의 피라나 뭐라나. 오늘은 사자 피 한 번 찐하게 마셔보자~
그리스에 거주하는 동안 펠로폰네소스 반도는 보물이었다. 아무 때나 1시간만 운전하면 코린토스가 있고, 2시간을 가면 유럽인들의 대표적 휴양지인 나프플리오에 갈 수 있었고, 3시간을 가면 스파르타가 나왔다. 겉으로만 보면 발전이 더딘 저개발국 시골 동네였지만, 신화와 역사를 생각하면 뉴욕이나 런던보다 훨씬 반짝이는 금은보화 덩어리였다. 아, 다시 한 번 가보고 싶다. 사랑하는 펠로폰네소스.
p.s.) 그리스 사람들 '뻥'은 대단하다. 평범한 산과 샘에 대해 어떻게 저런 기가막힌 스토리를 만들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