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생존주의자의 생존일기

-0편. 어느 소쩍새가 우는 고요한 밤의 가운데에서-

by 눕더기


혹시 당신은 생존주의를 알고 계신가요?



생존주의라는 단어를 꺼내면 사람들은 잠시 멈칫한다.

살아남는다는 것, 그것이 우리 삶의 핵심일 텐데도, 한국 사회에서 이 단어는 여전히 낯설고 어색하다.


특히 대한민국이라는, 전 세계에서 유래없는 치안률을 자랑하는 안정된 울타리 안에서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 ‘생존’이라는 개념은 너무 극단적이거나, 혹은 비현실적으로만 들린다.


그래서 나는 가끔 나 자신을 소개할 때, 조심스럽게 말한다.
“저는 생존주의자입니다.”

그러면 돌아오는 반응은 크게 둘이다.
하나는 농담 섞인 비아냥. 군인이냐, 혹은 아직도 소년 시절의 보이스카우트 놀이에서 벗어나지 못했냐는 식의 웃음.

또 하나는 요즘 들어 조금씩 늘어나는, 조심스러운 공감. 전쟁 뉴스가 일상이 되어버린 세계에서, 기후 위기가 현실이 되어버린 시대에서, 그 말이 완전히 허무맹랑하게만 들리지는 않는다는 반응이다.


그렇다면 왜 나는, 스스로를 ‘생존주의자’라고 정의하는 걸까.




생존이라는 단어를 깊이 들여다보면, 단순히 죽음을 피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삶을 유지하기 위한 태도이자,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기 위한 하나의 방식이다.

‘살아남는다는 것’은 생물학적 호흡의 지속을 넘어선다.

내가 말하는 생존은, 오히려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에 더 가까운 질문일지 모른다.


사실 다수가 충분히 의아함을 느끼는 것도 사실이다. 일부의 교통사고, 질병, 극단적인 선택 같은 특수한 상황이 아니라면, 사실 2020년대의 대한민국에서 물리적 죽음을 맞닥뜨리는 것은 사실 그리 흔치 않다. 대한민국이라는 국가 시스템이 최소한의 안전망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나의 생존은 다른 결을 가진다.

그래서, 나는 그것을 크게 세 가지로 나눈다.


첫째, 경제적 생존이다.



우리가 자본주의 사회 속에서 독립된 인간으로 살아가려면, 경제적 기반은 필수적이다.
월세를 감당하고, 끼니를 해결하며, 사회적 관계 속에서 존엄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일정 수준 이상의 자원이 필요하다.


그러나 그 자원의 기준은 너무나 다양하다.
누군가는 반지하 월세방에서조차 살아가는 데 충분하다고 말하고,
또 다른 누군가는 서울의 수십억짜리 아파트를 기준선으로 삼는다.



결국 ‘얼마나 있어야 충분한가?’라는 질문은 결국 상대적이고, 끝없이 흔들리는 기준일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한국에서 1인 가구가 생존을 유지하기 위한 최소 비용은 통계청에 따르면 약 120만~150만 원 선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는 단순히 ‘버티는’ 수준이지, ‘제대로 살아가는’ 기준은 될 수 없다. 주거 비용만 놓고 보더라도, 수도권과 지방의 격차, 전세와 월세의 구조적 차이는 생존의 조건을 크게 바꾸어놓는다.



그래서 나는 경제적 생존을 단순히 돈의 많고 적음으로 정의하지 않는다.
그보다는 ‘내가 이 사회 안에서 스스로를 지탱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가깝다.



둘째, 물리적 생존이다.


여기에는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재난이나 위기 상황 속에서의 대응이 포함된다.
화재, 홍수, 지진, 전쟁, 전염병.
이 모든 것은 한순간에 우리의 일상을 무너뜨릴 수 있다.


실제로, 우리나라의 경우 2022년부터 재난안전법 개정으로 모든 국민은 기본적인 재난 대비 교육을 받을 권리와 의무가 있고, 행정안전부는 가정에서 최소 3일 동안 버틸 수 있는 비상식량과 물, 손전등, 휴대용 라디오 등을 준비할 것을 권고한다.


나는 이것을 ‘두 번째 생존’이라 부른다.

문명이 무너지지 않는 한, 자주 맞닥뜨리진 않겠지만, 막상 닥쳤을 때 준비가 되어 있느냐의 차이가 삶과 죽음을 가른다.


셋째, 정신적 생존이다.


이것은 어쩌면 가장 간과되지만, 동시에 가장 본질적인 영역일 것이다.
우리가 정신적으로 붕괴되면, 아무리 경제적·물리적 조건이 갖추어져 있어도 결국 무너지고 만다.
불안, 고립, 우울은 물리적인 굶주림만큼이나 사람을 서서히 소멸시킨다.


최근 심리학 연구에 따르면, 외로움은 하루 담배 15개비를 피우는 것만큼 건강에 악영향을 준다고 한다. 생존은 결국 혼자가 아닌, 함께 살아남는 문제다.


그래서 나는 생존을 단순히 기술과 장비의 문제가 아니라, 마음과 관계의 문제로 본다.
삶을 이어가기 위해서는 결국 내면을 지탱할 수 있는 힘이 필요하다.

이 세 가지 축 ― 경제적, 물리적, 정신적 생존 ― 은 서로 얽히고 섞여 있다.

단순히 어느 하나만 갖추어서는 충분하지 않다.



그리고 이것이 내가 생존주의자로서 살아가려는 이유다.


생존은 단지 죽음을 피하는 기술이 아니다.


그것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이 시대의 조건 속에서 어떤 방식으로 나 자신을 지켜낼 것인지에 대한 끊임없는 질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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