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에 올리는 순서를 잘못 맞춰버린 아쉬움을 담아서
사람은 대부분 자신이 사는 도시를 ‘안전하다’고 믿는다. 물론 뉴스에서 지하철 화재나 대형 정전, 도심 침수 영상을 보면 잠시 불안해지기는 한다. 하지만 그것도 잠깐이다. 화면을 넘기고, 영상을 닫고, 다시 내 일상으로 돌아오면, 그 재난은 언제나 ‘어딘가 다른 곳에서 일어난 일’이 된다. 나와 무관한, 통계 속의 사건.
생존가방 이야기는 이 지점에서 시작된다.
“정말, 나와는 상관없는 일일까?”
이 질문에 솔직하게 답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저 불길한 상상을 서둘러 밀쳐내고, 내일도 지하철이 평소처럼 올 것이라, 내 회사 건물이 오늘처럼 묵묵히 서 있을 것이라, 아무 근거 없이 믿고 싶어 한다. 생존주의자는 바로 이 부분에서 관점을 조금 다르게 갖는다. ‘불길한 상상’을 밀어내지 않고, 끝까지 따라가 본다. 그리고 묻는다.
“만약 오늘, 회사에서 갑자기 정전이 나고, 엘리베이터가 멈추고, 지하철도 운행이 중단된다면, 나는 어떻게 집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그 질문 하나가, 도시형 생존가방, 그리고 차량형 GHB라는 개념을 자연스럽게 불러온다.
생존가방은 거창한 것이 아니다. 군용 배낭에 총기와 탄약을 잔뜩 넣고, 한 달을 버틸 식량을 챙기는 이야기가 아니다. 한국의 도시 현실에서, 우리가 실제로 감당할 수 있는 생존가방은 훨씬 소박하고, 훨씬 현실적이다. 물 한 병, 에너지바 몇 개, 작은 손전등 하나, 라이터와 마스크, 얇은 장갑과 휴대폰 배터리, 그리고 약간의 현금. 딱 그 정도.
하지만 이 ‘딱 그 정도’가, 실제 상황에서는 아주 큰 차이를 만든다.
회사에서 야근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건물 전체가 정전이 되는 상황을 떠올려 보자. 비상등만 어둑하게 켜진 복도는 생각보다 빨리 사람들의 불안으로 가득 차고, 엘리베이터는 멈춰 서고, 사람들은 계단으로 몰려 내려가기 시작한다. 창밖엔 도시 전체가 이상하게 어두워 보인다. 그때 당신 가방 안에 작은 헤드랜턴이 하나 있고, 1리터짜리 물과 에너지바 2개, 그리고 KF94 마스크가 하나 들어 있다고 상상해 보자.
이 장면에서, 당신은 더 이상 ‘희생자’가 아니다.
당신은 그 순간 주변 사람들에게 빛을 나눠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계단을 내려가는 동안 앞을 밝히며 길을 안내할 수 있는 사람이 된다. 계단참에서 누군가 기침을 심하게 하고 숨을 헐떡일 때, 여분의 마스크를 내어줄 수도 있다. 누군가 핸드폰 배터리가 1% 남았다고 울상 지을 때, 보조배터리를 내밀어 줄 수도 있다.
생존가방은 물건의 집합이 아니라, 그 물건을 미리 준비한 사람의 태도가 가장 먼저 드러나는 장치다.
가방의 내용물보다 중요한 건, “혹시 오늘 이런 일이 벌어질 수도 있다”라는 생각을 한 번이라도 진지하게 해보았느냐는 것이다.
차량형 GHB도 마찬가지다.
고속도로가 눈보라로 막히고, 교통방송은 ‘수 시간 대기’를 반복해서 말해주는 그런 밤이 있다. 차는 거의 움직이지 않고, 창밖 온도는 영하로 떨어지고, 주유 게이지는 점점 바닥에 가까워진다. 그런 상황에서 차 안에 아무것도 없다는 것은, 단순한 불편이 아니라 위험이 된다.
반대로, 트렁크에 물 2리터와 간단한 비상식량, 작업용 장갑, 얇은 담요, 작은 침낭, 점프스타터, 핫팩 몇 개가 들어 있다고 상상해 보자. 엔진을 잠시 꺼 두더라도, 담요를 덮고, 핫팩을 쥐고, 물을 조금씩 나눠 마시며, 기다릴 수 있다. 그냥 ‘견딘다’가 아니라, 체온과 체력을 관리하면서, 다음 행동을 차분히 결정할 수 있는 여유를 갖게 된다.
생존주의 관점에서 보면, 도시형 가방과 차량형 GHB에는 하나의 공통된 질문이 있다.
“나는 내 몸 하나를 데리고, 이 도시를 걸어 빠져나올 수 있는가?”
지하철이 멈추고, 버스가 정체되고, 신호등이 꺼진 거리에서,
차가 고철 덩어리가 되어버린 후에도,
결국 마지막에 남는 것은 두 다리와 가방 하나다.
그래서 생존가방의 유효성은, ‘구성표’가 아니라 ‘몸’으로 판단해야 한다.
가방을 실제로 메고, 집에서 회사까지, 혹은 회사에서 집까지 한 번 걸어보는 것이다. 그 길을 실제로 걸어 본 사람과, 머릿속으로만 시뮬레이션 한 사람의 준비는 완전히 다르다. 어느 구간이 어두운지, 어디에 고가도로와 다리가 있는지, 어디가 침수되기 쉬운 저지대인지, 어디까지는 차를 타고 가다가 어디서는 걸어야 할지, 몸으로 기억하게 된다. 이런 경험은 어떤 생존 체크리스트보다 강력하다.
생존주의자라고 해서 늘 긴장하며 사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대부분의 시간에는 남들처럼 평범하게 출근하고,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고, 주말에는 침대 위에서 뒹굴거린다. 다만, 그 평범한 일상의 가장자리 어딘가에 항상 하나의 가방이 놓여 있을 뿐이다. 회사 책상 아래 작은 가방 하나, 차 트렁크 안쪽에 얌전히 자리 잡은 박스 하나. 누가 보자면 그냥 정리 잘 하는 사람처럼 보일 것이다.
중요한 것은 “한 번 정도는 상상해본 사람”과 “한 번도 상상하지 않은 사람” 사이의 간극이다.
재난은 통계적으로는 드물지만, 개인에게는 한 번만 와도 충분히 파괴적이다.
그 한 번을 위해, 물 한 병과 작은 라이트, 마스크와 장갑, 그리고 약간의 식량과 현금을 준비해 두는 것이 과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우리가 살아가는 이 도시는 생각보다 취약하다.
전기는 한 번 끊기면 그 순간부터 단순한 편의가 아니라 생존의 문제가 되고,
교통망이 한 번 멈추면 거리는 금세 갇힌 공간으로 변하며,
사람은 많지만, 그 누구도 당신을 특별히 도와야 할 이유는 없다.
이 불편한 진실을 받아들이는 데서, 생존가방은 출발한다.
그리고 그 가방은 결국, 당신이 혼자가 아니라는 증거가 되어 준다.
어떤 밤, 갑자기 도시가 어두워졌을 때,
당신은 가방을 열어 라이트를 꺼내 들고, 물을 한 모금 마신 뒤,
조금 더 차분한 사람으로 그 자리에 서 있게 될 것이다.
생존주의는 거대한 공포를 키우는 취미가 아니라,
작은 준비를 통해 불안의 크기를 줄이는 태도에 가깝다.
도시형 가방도, 차량형 GHB도, 그저 그 태도가 구체적인 형태를 얻은 결과물일 뿐이다.
결국 질문은 다시 원점으로 돌아온다.
“오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거라고 정말 확신할 수 있는가?”
그렇지 않다면, 가방 하나쯤은 준비해 두는 편이 낫다.
그건 세상이 무너질 것 같아서가 아니라,
세상이 잠깐 삐걱거리는 그 순간에도,
당신이 스스로를 지킬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출발하는 최소한의 예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