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우연한 정전이었던, 그 날의 생각을 바탕으로 상상해보다.
도시는 늘 밝다.
편의점 간판, 카페 간판, 버스 정류장의 광고판, 아파트 베란다 불빛, 신호등, 지하철역, 엘리베이터 숫자창.
우리는 그 빛을 너무 당연하게 여기고 산다.
그래서일까. 가끔 뉴스를 타고, 다른 나라의 “대규모 정전 사태”라는 단어를 들으면,
잠깐 놀라고, 잠깐 안타까워하다가, 금방 잊어버린다.
머릿속 어딘가에서는 이렇게 생각하는지도 모른다.
“그래도 한국은… 설마 그렇게까지 되겠어?”
하지만 생존주의자는 여기서 한 번 더 생각을 멈추지 않는다.
“만약 서울 전체가, 혹은 내가 사는 동네 일대가,
오늘 밤 갑자기 정전된다면, 나는 어떻게 움직일 수 있을까?”
이건 영화를 위한 상상이 아니다.
서버가 멈추고, 신호등이 꺼지고, 엘리베이터가 멈추고, 카드 결제가 안 되고,
편의점 문은 열려 있는데 POS가 죽어 아무것도 팔 수 없는 밤.
그 밤 속에서 우리는 얼마나 스스로를 지킬 준비가 되어 있을까.
정전은 단순히 “불이 꺼지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전기는 곧 결제 시스템이기도 하다.
편의점의 계산대, 마트의 포스기, 지하철 개찰구, 주차장 정산기, 카페 키오스크.
우리가 “현대적 삶”이라고 부르는 거의 모든 것들은
전기를 통해 돌아간다.
정전이 되면 어떻게 될까.
엘리베이터는 멈추고, 카드 결제는 중단되고,
ATM은 작동을 멈추고, 은행 창구는 사실상 기능을 잃는다.
가게 유리는 그대로인데, 안에서 직원은 난감한 얼굴로 말한다.
“죄송한데… 전산이 다 내려가서요. 지금은 카드도, 현금영수증도, 아무것도 안 됩니다.”
그때, 당신의 지갑에 현금이 없다면?
당장은 배고프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내가 지금 돈이 있는데도, 아무것도 살 수 없다’는 감각은
생각보다 빨리 사람을 불안하게 만든다.
생존주의자는 이 지점을 안다.
그래서 “현금은 효율이 떨어지는 자산”이라는 말을 들으면서도
지갑이나 집 어딘가에는 항상 일정량의 현금을 숨겨둔다.
그건 재테크를 위한 돈이 아니라,
“체면을 버리고라도 사 먹을 수 있는 마지막 끈”이기 때문이다.
정전이 되면, 도시는 생각보다 빠르게 어두워진다.
아파트 복도등, 비상등, 도로 가로등, 골목길의 간판.
이 모든 것이 동시에 꺼진 상태에서,
당신은 집까지 걸어갈 수 있을까?
스마트폰 라이트가 있으니 괜찮다고 말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건, 지금 내 배터리가 충분히 남아 있고,
이후 통신 두절 상황에서도 배터리를 다른 데 쓸 필요가 없다는 전제에서만 가능하다.
실제로 한 번, 아주 현실적으로 상상해 보자.
– 퇴근길, 지하철역에서 내려 집으로 가던 중 갑작스러운 대정전.
– 역 안은 순식간에 암흑, 안내방송은 나오지만 사람들은 이미 동요하기 시작한다.
– 겨우 비상등을 따라 밖으로 나왔더니, 동네 전체가 깜깜하다.
– 신호등이 꺼져 차들은 경적을 울리고, 사람들은 스마트폰 플래시를 켜고 우르르 움직인다.
그 틈에서, 당신의 스마트폰 배터리는 붉은색으로 내려가고 있을지도 모른다.
조명, 통신, 길 찾기, 가족 연락 — 모든 것을 하나의 기기에 맡긴 채.
생존주의자는 여기서 아주 단순한 도구를 꺼낸다.
가벼운 키체인 라이트 하나.
손가락 두 개만큼 작은 AAA 랜턴 하나.
이건 거창한 장비가 아니다.
그저, “스마트폰을 조명으로 쓰지 않을 수 있게 해주는 작은 여유”일 뿐이다.
하지만 그 작은 여유가,
어두운 계단을 내려갈 때 발목을 지켜줄 수도 있고,
막힌 골목을 돌아 나갈 때 길을 확인하게 해줄 수도 있다.
빛은 선택이 아니라, 조건이다.
“빛이 있으면 좋지”가 아니라,
“빛이 없으면 제대로 움직일 수 없다”에 가까운 문제다.
정전이 길어지면, 전기보다 더 빨리 체감하는 것이 하나 있다.
바로 물이다.
아파트 고층에 사는 사람이라면 특히 그렇다.
상수도 펌프가 멈추면,
수도꼭지는 그대로 달린 채 마른 입을 다문다.
수압이 남아 있던 1~2시간 동안은 그래도 물이 조금씩 흘러나올 것이다.
그때, 누군가는 양동이와 페트병을 꺼내 욕실과 싱크대를 가득 채워 놓고,
누군가는 “설마 곧 들어오겠지”라고 생각하며 그냥 소파에 앉아 TV(도 사실 안 나오지만)를 켠다.
몇 시간이 흐르고, 밤이 깊어진다.
화장실을 가야 할 때가 온다.
손을 씻으려 수도를 틀었는데, 물 한 방울 나오지 않는다.
입이 바싹 타오기 시작할 때쯤, 사람은 그제야 깨닫는다.
“아, 이게 좀 오래 가는 정전인가 보다.”
생존주의자의 집에는
항상 한두 개쯤의 물통이 있다.
캠핑용 물통일 수도 있고,
그냥 대형 생수통일 수도 있다.
꼭 비싼 장비일 필요는 없다.
중요한 건, “한 번에 10리터 정도의 물을 모아 둘 수 있는 용기”가 있는가다.
그게 있으면, 정전 초기의 짧은 시간 동안
“물”이라는 자원을 잡아 둘 수 있다.
그게 없다면,
당신은 아파트 단지 내 비상 급수 차량 줄에 서 있다가,
적은 물을 두고 옥신각신하는 사람들 사이에 끼여 있게 될지도 모른다.
전기가 나가면,
와이파이도, 기지국도, 결국 오래 버티지 못한다.
잠깐은 4G, 5G가 남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전기가 장시간 끊기면, 기지국도 결국 비상 전원을 다 써버린다.
그때부터는 뉴스도, 카톡도, 지도도, 위치 공유도 없다.
예전이라면 사람들은 라디오를 켰을 것이다.
요즘은 라디오를 꺼낼 사람보다,
“라디오를 어디 가서 사야 하지?”부터 떠올리는 사람이 더 많다.
생존주의자는 여기서도 아주 작은 차이를 둔다.
– 만 원 남짓한 FM 라디오 하나를 집 어디선가 꺼낼 수 있는 사람
– 아무 정보 없이, “불 꺼진 도시”에서 소문과 추측만 들으며 버텨야 하는 사람
둘은 시간이 지날수록, 다른 종류의 공포를 견디게 된다.
앞선 사람은 불편하지만 ‘상황을 알고 있는 상태’에서 기다린다.
후자의 사람은 ‘아무것도 모른 채’ 불안을 키워 간다.
불안의 축적이야말로,
도시형 재난에서 가장 무서운 적일지도 모른다.
지금까지 이야기한 것들을 다시 훑어보면,
사실 거창한 장비는 하나도 없다.
현금 조금,
소형 라이트 하나,
라이터 한 개,
물 몇 리터를 담아둘 용기,
작은 라디오 하나.
이건 군용 전술 가방도 아니고,
수백만 원짜리 프리퍼 장비도 아니다.
그저 “정전된 도시에서, 나는 최소한 이 정도는 갖고 있고 싶다”는 마음의 형태다.
생존주의자는 결국,
특별한 영웅이 아니라
“남들보다 조금 일찍,
한 번 더 상상해본 사람”에 가깝다.
위기는 언젠가, 언젠가는 온다.
꼭 전국 규모의 대정전이 아니더라도,
당신이 사는 동네,
당신이 다니는 회사,
당신의 아파트 단지 하나쯤은
언젠가 몇 시간, 혹은 몇 날 멈춰 설 수도 있다.
그때, 당신이 어둠 속에서 아무 준비 없이 서 있는 사람인지,
주머니에서 조용히 작은 라이트 하나,
지갑에서 빳빳한 몇 장의 현금을 꺼내 드는 사람인지.
그 차이는 “운”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
이 글을 읽고 난 뒤에도 그냥 넘길지, 아니면 작게라도 준비를 시작할지에서 갈린다.
생존은 원래 거창한 게 아니다.
늘 그렇듯, 살아남는 건 대개 조금 더 생각해본 사람의 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