샛길. 일상에 무던해진 당신에게

도망칠 수 있는 사람과, 책상 앞에 묶여있는 사람

by 눕더기

우리는 왜 늘 자리에 묶여 있을까


사이렌 소리가 들리고, 건물이 흔들리고, 휴대폰이 동시에 울린다.
“재난 문자”라는 단어가 스쳐 지나간다.
사람들은 창밖을 한 번 힐끔 보고,

그 다음에 거의 본능처럼 하는 행동은 이것이다.


화면을 다시 내려다본다.
메일을 확인한다.
하고 있던 엑셀 창으로, 카톡 창으로, 다시 돌아간다.


“그래도 일은 해야지.”
“잠깐이면 끝나겠지.”
“위에서 아무 말도 안 나왔는데, 괜찮겠지 뭐.”


우리는 알게 모르게 이런 식으로 살아간다.
화재 대피 훈련은 형식적으로만 하고,
비상구 위치는 회사 입사 첫날 이후로 한 번도 떠올리지 않는다.
소화기 위치는 대충 아는 것 같다가도,
막상 머릿속으로 그림을 그려보면 어디에 있었는지 헷갈린다.


생존주의자의 눈으로 보면,
이건 “겁이 없어서”가 아니라
“생각 자체를 안 해봤기 때문”이다.


재난은 꼭 뉴스 속에서만 일어나는 게 아니다


사람들은 이상하게도
“내 삶의 재난”은 항상 뉴스 속에서만 일어날 거라고 믿는다.

지진이 나도, 화재가 나도, 강이 범람해도,
어딘가 먼 도시, 다른 나라,
혹은 뉴스 자막 속 타인의 화면이라고 느끼기 쉽다.


하지만 진짜 재난은 뉴스에 나오기 전에,
아주 조용한 방식으로 시작된다.


회의 도중에 갑자기 꺼지는 불.
엘리베이터 안에서 한 번 툭, 하고 멈추는 감각.
지하에서 올라오는데, 계단에 매캐하게 깔려 있는 연기.
“이상하네?” 하고 고개를 갸웃하는 그 순간 이미
당신은 재난의 안쪽에 들어와 있을지도 모른다.


생존주의자는 여기에서부터 사고를 시작한다.



“내가 지금 앉아 있는 이 자리에서 당장 밖으로 나가야 한다면,
나는 어느 방향으로, 어떤 순서로 움직여야 하지?”


이 질문 하나가


“생존주의”와
“그냥 직장에 앉아 있는 사람”을
극단적으로 갈라놓는다.


도망칠 수 있는 사람은, 미리 상상해둔 사람이다


‘도망친다’는 말은 어딘가 비겁하게 들릴지도 모른다.
하지만 생존의 관점에서 보면,
도망칠 수 있는 사람은
미리 도망칠 경로를 고민해본 사람이다.


예를 들어, 이런 것들이다.


내 자리에서 가장 가까운 비상구는 어디인가


그 비상구가 막혔을 때, 두 번째·세 번째 경로는 어디인가


전기가 끊겨 엘리베이터가 멈춘다면, 나는 어느 계단을 타고 내려가야 하는가


회사 근처에서 가장 넓고 탁 트인 공간(공원, 운동장, 공터)은 어디인가


집으로 바로 가지 못할 경우, 임시로 모일 수 있는 장소(친구 집, 24시간 카페, 회사 근처 모텔)는 어디인가


이건 어려운 계획이 아니다.
단지 퇴근길에, 점심시간에,
한 번만 직접 걸어보면 되는 문제다.
그런데 거의 아무도 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굳이?”라는 생각이 먼저 들기 때문이다.



“굳이 그런 것까지 생각해야 해?”
“설마 그런 일이 생기긴 하겠어?”
“나 하나 대비한다고 세상이 바뀌는 것도 아닌데.”


생존주의자는 여기서도 태도가 다르다.



“세상은 안 바뀌어도,
적어도 ‘내가 살아남을 확률’ 정도는 바뀔 수 있다.”


책상 위에는 서류, 서랍 안에는 아무것도 없다


흥미로운 점은 이거다.
우리는 회사 책상 위에는 온갖 서류, 문서, 업무 도구를 채워 넣으면서
서랍 안에는 생존 도구 하나 넣지 않는다는 것이다.

볼펜은 열 개씩 꽂혀 있고,
USB는 여러 개 굴러다니는데,
정작 손전등, 작은 라이터, 비상식량 하나 없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이런 물건들이 책상 서랍에 하나쯤 들어가 있는 건 그리 이상한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


– 작은 키체인 라이트 하나
– 사이즈 작은 라이터 하나
– 개인 상비약과 대일밴드 몇 개
– 에너지바 하나
– 5천 원권 몇 장
– 접이식 마스크 1~2장


이 정도만 있어도 “사무실 생존력”은
지금보다 훨씬 높아진다.


비상시 계단을 빠져나갈 때
라이트를 켜고 내려갈 수 있고,
발을 삐었을 때 앉아서 약을 먹고 쉴 수 있고,
편의점에서 카드를 못 쓸 때
현금 몇 장으로 물과 과자를 살 수 있다.

이건 누가 봐도 굉장히 사소한 차이다.

그런데 이런 사소한 것들이
위기 상황에서는 사람을 극단적으로 갈라놓는다.


“회사에서 죽지 말자”라는 다짐


조금 과격하게 들릴 수도 있지만,
생존주의자로서 개인적인 다짐을 문장으로 만들자면 이렇다.



“일하다 죽지는 말자.
적어도, 일하다 갇혀서 죽지는 말자.”


일은 중요하다.
생계의 본질이고,
경제적 생존의 기초다.
하지만 우리가 회사에 가는 이유는
회사에서 생을 마감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그래서 생존주의자는

아주 간단한 원칙을 몇 가지 세워 둔다.


회사를 옮기면, 가장 먼저 비상구 구조를 눈에 익힌다.


책상 서랍 한 칸은 “작은 생존 서랍”으로 쓴다.


휴대폰 배터리는 늘 30% 아래로 떨어지지 않도록 신경 쓴다.



재난 문자가 오면, 그냥 넘기지 않고 잠깐 멈춰서 생각해 본다.
“이게 나에게 어떤 의미일까?”



이런 습관들은 어떨 때는 너무 유난스러워 보일지도 모른다.
실제로 주변 사람이 비웃을 수도 있다.


“야, 네가 뭐 영화 주인공이냐?”
“그런다고 세상이 안전해지냐?”


하지만 생존주의자의 관점에서 중요한 건
“세상 전체의 안전”이 아니라,
“내가 어떻게 죽지 않고 빠져나올 것인가”다.


도망칠 수 있는 사람은, 살아남을 수 있는 사람이다


우리는 너무 오랫동안
“끝까지 자리를 지키는 것”을 미덕으로 배웠다.
야근 문화, 책임 문화, 희생 정신 같은 말들로 포장된 많은 것들이
사실은 개인을 한 자리에 묶어두는 기능을 했다.


생존주의적 관점에서 보면,
때로는 “먼저 도망치는 사람”이
가장 현명한 사람이다.


불이 시작될 때,
연기가 스멀스멀 올라올 때,
사람들이 ‘괜찮겠지’라며 그대로 앉아 있을 때,
조용히 가방을 메고 비상구 쪽으로 발걸음을 옮기는 사람.


우리는 그런 사람을
겁이 많다고 부를지도 모르지만,
재난 이후의 보고서에는 이렇게 적힐 것이다.



“조기에 대피한 일부 인원은
큰 피해를 입지 않았다.”


도망치는 능력은 곧,
자기 생존을 스스로 허락하는 능력이다.


결국, 생존주의란 이런 태도일지도 모른다


– 회사 책상에서 한 번쯤 고개를 들어 비상구 표지판을 바라보는 사람
– 지갑에 만 원짜리 한 장이라도 깨지 않고 넣어두려는 사람
– 점심시간에 엘리베이터 말고 계단도 한 번 걸어 내려가 보는 사람
– 재난 문자 알림창을 그냥 넘기지 않고, 잠깐 멈춰 읽어보는 사람


이건 누가 보면 별것 아닌 습관들이다.


하지만 이런 사람만이,
말로 위기가 왔을 때 움직일 준비가 되어 있다.

생존주의는 결국,
“극단적인 상황을 상정하며 사는 괴짜의 취미”가 아니라



“그냥, 내가 내 삶을 마지막까지 책임져 보겠다고 마음먹은 사람의 태도”


일지도 모른다.


책상 앞에 앉아 있는 우리는
겉으로는 모두 비슷해 보인다.

하지만 재난이 왔을 때,
누군가는 도망칠 수 있는 사람이고,
누군가는 그 자리에 고여 있는 사람이다.


나는 어느 쪽에 설 것인가.

그 질문을 진지하게 해보는 순간,
이미 당신은 절반쯤 생존주의자가 되어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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