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동료와의 커뮤니케이션, 리더십, 갈등 관리

2부 4화.

by 눕더기

가족/동료와의 커뮤니케이션, 리더십, 갈등 관리


― “위기 상황에서 ‘좋은 사람’이 아니라, ‘쓸모 있는 사람’이 되는 법”





재난 영화에서 늘 나오는 인물이 있다.
몸도 멀쩡하고, 머리도 나쁘지 않고, 체력도 괜찮은데
상황만 틀어지면 꼭 판을 망쳐놓는 사람.


평소에는 분위기 메이커고, 말도 잘 통하고,
동료들 사이에서 인기도 많은데,
막상 위기 상황이 오면

괜히 괜찮은 척하거나,
현실을 부정하거나,
지금 해야 할 말은 안 하고
하지 말아야 할 말만 골라서 한다.


생존주의에서 가족/동료와의 커뮤니케이션, 리더십, 갈등 관리는
“좋은 사람”이 되는 기술이 아니다.

한마디로 요약하면 이렇다.


위기 속에서 주변 사람들의 불안을 줄이고,
방향을 잃지 않게 도와주는 사람.
그리고 그 과정에서 판을 깨지 않는 사람.


이번 화에서 다루는 건
멋있는 리더십 이론이 아니다.
집, 회사, 친구 모임, 단체 여행, 팀 프로젝트처럼
우리가 매일 발 딛고 있는 현실 속에서,
위기가 왔을 때 ‘누가 판을 수습하고 누가 판을 깨는지’에 대한 이야기다.


1. 평소의 말버릇이, 위기에서 그대로 나온다


위기 상황이 되면
갑자기 모두가 다른 사람이 되는 게 아니다.
평소의 말버릇, 관계, 서열, 역할이
그대로 과장되어 튀어나온다.


늘 남 탓하던 사람 → 위기에서 제일 먼저 남 비난


늘 결정을 미루던 사람 → 위기에서 “아무나 정해” 모드


늘 장난으로 말 돌리던 사람 → 위기에서 현실 도피 농담만 던짐


늘 조용히 받아주던 사람 → 위기에서 묵묵히 다 떠안다가 무너짐


그래서 생존주의자의 준비는
EDC, 가방, 장비를 넘어
“평소 말하는 습관과 태도”까지 포함된다.


내가 어느 쪽 타입에 더 가까운지,
한 번은 냉정하게 봐야 한다.


나는 문제 생기면, 자주 “아 몰라”라고 말하고 넘기진 않는지


결정해야 할 때, “나중에 얘기하자”로 밀어두는 편은 아닌지



갈등이 생기면, “그냥 조용히 참는 사람” 쪽인지,
아니면 “단번에 폭발하는 사람” 쪽인지



위기 상황에서의 커뮤니케이션은
새로 배우는 기술이 아니라,
내가 원래 하던 말하기 방식이 더 진하게 드러나는 순간이다.


2. 위기 상황에서 필요한 말의 종류는 딱 세 가지다


상황이 복잡해질수록,
말의 종류는 단순해져야 한다.

지금 상황을 공유하는 말


앞으로 무엇을 할지 정하는 말


서로를 안정시키는 말


이 셋을 섞어서 써야 한다.


2-1. 상황 공유: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위기에서 가장 위험한 건
실제 상황보다,
각자가 다르게 상상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 정도면 곧 괜찮아지겠지”


“이거 큰일 난 거 같은데, 나만 불안한가?”


“아직은 심각한 건 아닐 거야”


이럴 때 필요한 건
불필요한 공포 조장이 아니라,
최대한 정확한 “지금 여기”를 공유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지금 정전 상태고, 엘리베이터는 멈췄어.”


“지하층은 물이 조금 들어온 것 같고, 1층은 아직 괜찮다.”


“휴대폰 데이터는 되는데 통화 품질이 좀 안 좋아.”


“뉴스 보니까, 2시간 정도는 더 상황 봐야 한대.”


이런 단순한 정보 공유만으로도
사람들의 불안은 상당히 내려간다.


“모른다”라는 공백이,
사람 정신을 가장 빠르게 망가뜨리기 때문이다.


2-2. 방향 결정: “그러면 우리는 지금 무엇을 할 것인가”


상황을 공유했다면, 그 다음은 방향이다.
이때 중요한 건 두 가지다.

선택지를 너무 많이 늘리지 않을 것


“누가, 무엇을, 언제까지”를 최대한 구체적으로 말할 것


예를 들면:


“일단 10분만 더 상황 보다가, 계단으로 내려갈지 결정하자.”


“지금은 밖으로 나가진 말고, 창문에서 밖 상황만 확인하자.”


“나는 뉴스 계속 체크할게. 너는 부모님이랑 연락 가능하면 시도해줘.”


“우선 물을 확인하고, 다음은 약, 그 다음이 현금이야. 순서대로 챙기자.”


결정이 틀릴 수도 있다.
하지만 아무 결정도 하지 않는 것보다는 낫다.


생존주의자 입장에서 리더십이란,
“항상 정답만 고르는 능력”이 아니라,


틀릴 수도 있다는 걸 알면서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두가 움직일 수 있는 임시의 방향을 제시하는 능력이다.


그리고 나중에 상황이 바뀌면,
“아까 말한 건 수정하자”라고 말할 수 있는 유연함도 포함된다.


2-3. 감정 안정: “괜찮다고 말하는 것의 진짜 의미”


위기 상황에서 가장 많이 오용되는 말이 있다.

“야, 괜찮아.”

이 말이 진짜 안심이 되려면,
전제가 필요하다.

말하는 사람이 상황을 잘 알고 있거나


이전에도 비슷한 상황을 잘 넘긴 적이 있거나


혹은, 듣는 사람이 평소 그 사람을 신뢰하거나


그러지 않다면,
“괜찮아”라는 말은
현실을 부정하라는 강요로 들리기도 한다.


그래서 더 나은 방식은 이런 것이다.


“솔직히 좀 불안하긴 한데, 지금 당장 위험한 건 아닌 것 같아.
우리 우선 이거부터 같이 해보자.”


“나도 무섭긴 한데, 일단 할 수 있는 건 해보자.”


“겁나는 건 당연한 거야. 대신 겁나는 상태로 할 일을 하자.”


좋은 리더십은
겁나는 마음이 없다고 하는 게 아니다.


겁나는 마음이 있는 상태 그대로,
다음 행동을 잇는 다리를 놓아주는 것에 가깝다.


3. 가족과의 커뮤니케이션 – 가장 가깝지만, 제일 어렵다


가족과의 커뮤니케이션은
생존 관점에서 가장 중요하면서도
가장 난이도가 높다.


이유는 간단하다.

서로 너무 많이 알고 있고


서로 너무 오래 알고 지냈으며


서로 너무 많은 감정의 역사(섭섭함, 기대, 실망)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위기 상황에서
평소의 갈등 패턴이 그대로 튀어나온다.

“내가 그래서 평소에 대비하라고 했잖아.”


“또 시작이다, 맨날 최악만 생각해.”


“너는 항상 과장해서 얘기해.”


“그러니까 평소에 말 좀 들으라니깐.”


생존주의자의 시선에서 보면,
이 모든 말은
위기를 악화시키는 대사일 뿐이다.


3-1. 평상시 합의를 미리 만들어두는 것


위기 때 싸우지 않으려면,
“지금 이런 상황이 오면 이렇게 하자”라는
최소한의 합의를 평소에 만들어둬야 한다.


아주 간단하게는 이런 정도다.


“지진 알림 오면, 대화 중이든 뭐든 우선 1분간 TV나 공지를 본다.”


“정전 되면, 각자 휴대폰 라이트 켜지 말고, 거실 서랍에 있는 랜턴 먼저 킨다.”



“화재 경보 울리면, 무조건 계단 방향으로 한 번은 움직인다.
‘이거 오작동 아니야?’ 논쟁은 나가서 하자.”



이런 약속은
100개 1000개씩 만들 필요가 일절 없다.
진짜 중요한 상황 몇 개만 미리 잘 합의해놓아도
갈등은 확 줄어든다.


3-2. 가족 간 역할 나누기


위기 때 가장 도움이 되는 대화는
“누가, 뭘, 담당하는지”를 정리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부모: 뉴스·정보 모니터링, 대외 연락


자녀 1: 비상 가방 위치 확인, 물·식량 점검


자녀 2: 조부모/친척에게 상황 전달, 전화 안 되면 문자


이렇게 “역할”이 분담되어 있으면
위기 때 서로에게 화살이 덜 간다.


“아까 뉴스 안 봤어?” 대신
→ “뉴스 담당이니까, 혹시 추가 정보 나온 거 있어?”




“왜 아직도 가방 안 챙겼어?” 대신
→ “가방 담당이 너니까, 리스트 한 번만 같이 점검해보자.”



역할은
서로를 공격하는 근거가 아니라,
서로를 의지하는 기준이 되어야 한다.


4. 동료와의 커뮤니케이션 – 회사, 팀, 함께 일하는 사람들


사무실, 공장, 현장, 매장 같은 일터는
재난이 터졌을 때
“집 다음으로 오래 있게 되는 공간”이다.


여기서 리더십의 기준은
조금 다르다.

가족은 감정의 연결이 우선이라면,
동료는 역할과 책임의 연결이 우선이다.


4-1. 누구 말이 ‘공식’인지 명확해야 한다


위기 때 최악인 상황은
서로 말이 다르고,
누구 말이 맞는지 모르는 상태다.

“팀장 말로는 그냥 대기하래.”


“근데 부장님은 바로 대피하자던데?”


“총무는 아직 회사 지침 안 나왔다는데?”


그래서 평상시에 회사 차원에서든,
팀 단위에서든
이렇게 정해두는 게 좋다.

“재난 관련 최종 결정은 누구 말을 따른다.”


“그 사람이 없을 경우, 누가 2순위인지.”


“연락망이 끊기면, 각자 어떻게 행동하기로 할지.”


이건 생존주의자가 회사 전체를 바꾸겠다는 야망이 아니라,
적어도 내가 속한 팀에서만큼은 이야기해볼 수 있는 주제다.


4-2. 동료에게 필요한 말은 “이 정도”다


동료와의 위기 커뮤니케이션은
감정적인 위로보다는
단순하고, 사실 중심적이고,
업무와 연결된 말이 더 효과적이다.


예를 들면:

“지금은 이 층에서만 정전이 난 것 같아요. 우선 계단 쪽으로 이동하죠.”


“서버는 일단 꺼진 상태 같고, 이건 나중 문제니까 지금은 사람부터 나가요.”


“각자 노트북만 들고, 나머지는 두고 나가는 걸로 하죠.”


이 정도의 문장이면 충분하다.
소리를 지르거나,
그럴듯한 연설을 할 필요가 없다.


오히려 과도하게 “리더처럼 굴려는 태도”는
반감을 사기 쉽다.


좋은 리더십은
“나서고 싶어서 나서는 것”이 아니라,


비어 있는 자리,
모두가 피하고 싶은 자리를
어쩔 수 없이 한 번 정도 맡아주는 태도에 가깝다.


5. 갈등 관리 – 위기는 인간의 가장 못난 얼굴을 끌어낸다


솔직하게 말하면,
위기 상황에서 갈등은 피할 수 없다.

“왜 그때 그 결정 내렸냐”


“왜 우리부터 챙기지 않았냐”


“왜 그때 나한테 말 안 했냐”


생존주의자의 관점에서 갈등 관리의 목표는
“모두를 화목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
최소한 생존과 안전에 필요한 행동을
갈등 때문에 멈추지 않게 만드는 것이다.


5-1. 지금 당장 싸울 문제냐, 나중에 싸울 문제냐


위기 때 갈등이 생기면
먼저 이 기준을 적용해 볼 수 있다.


“이 문제는 지금 싸워야 하는 문제인가,
아니면 나중에 다시 꺼내도 되는 문제인가?”


예를 들면:

“왜 평소에 준비 안 했어?” → 나중에 싸워도 되는 문제


“지금 누구부터 나갈지 순서를 어떻게 정할까?” → 지금 말해야 하는 문제


이 기준 하나만 있어도
많은 쓸데없는 싸움을 줄일 수 있다.


지금 싸워도 되는 건
시간을 늦추지 않는 문제들뿐이다.


5-2. “맞고 틀림”보다 “지금 당장 필요함”이 기준


갈등이 발생했을 때,
누가 옳은지는 중요한데,
위기 상황에서는
“누가 현실적으로 더 도움이 되는 의견을 내고 있는가”가 더 중요하다.


“그렇게 하면 책임은 누가 질 건데?”
vs
“지금 책임 소재보다, 당장 이쪽 계단이 더 안전해 보이니까 이쪽으로 가자.”




“네가 원래 항상 과장해서 문제야.”
vs
“알겠어. 그래도 지금 경보가 울렸으니 일단 한 번 내려가 보자.”



생존주의자는
“누가 틀렸는지 밝히는 사람”이 아니라
“당장 행동할 수 있는 쪽으로 말을 전환하는 사람” 쪽에 서야 한다.


6. 맺음말 – 위기 속에서 필요한 건, 영웅이 아니라 ‘작은 어른들’이다


재난, 위기, 전쟁, 붕괴 같은 단어들이
뉴스를 넘나드는 시대에
우리는 자꾸 상상한다.


언젠가 큰일이 터졌을 때
어딘가에서 대단한 리더나
영웅 같은 사람이 나타나
우리를 이끌어줄 거라고.


하지만 현실은 대개 이렇다.


생각보다 다들 바쁘고,


다들 무섭고,


다들 자기 코가 석 자다.


그때 필요한 건
대단한 영웅이 아니라,
각자의 자리에서 조금씩 어른처럼 행동하는 사람들이다.


상황을 한 번 더 냉정하게 보고


감정이 폭발할 때 잠시 말을 삼키고


“누가 잘못했냐”보다 “지금 뭘 할 수 있냐”를 먼저 떠올리고


서로를 비난하기보다 역할을 나누자고 제안하는 사람


생존주의자로 산다는 건
세상이 무너지는 장면을 상상하며
혼자만 살아남겠다는 마음이 아니라,


위기 속에서
내 가족, 내 동료, 내 주변 사람들과 함께
최대한 덜 망가지고 버티겠다는 다짐에 가깝다.



그 다짐의 첫 번째 도구가
칼도, 라이터도, 가방도 아닌
말 한마디”라는 걸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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