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학교는 올해 2월, 9명의 6학년이 졸업하고, 1명의 입학생이 입학하여 전교생 총 13명의 학생들과 함께 새학년을 시작하게 되었다. 복식학급이 2개반이나 되었고, 나도 시골학교에서 파견 포함 거의 10년째 근무했지만, 복식학급은 처음이라 좀 당황스러웠다. 하지만 이것은 자연스러운 일. 인구소멸도시 시골에서 출생아가 급격히 감소한지 10년이 넘었으니, 아무리 시골학교에서 애쓰고 노력해도(방과후 전액무료, 제주도 수학여행 전액무료, 매달 체험학습 전액무료 등 많은 혜택에도)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괜히 도시에서 전학 온 아이를 쌍수 들고 반겼다가 오히려 더 힘든 일들도(교사뿐 아니라 학생들에게도) 겪어봤고, 이제 마을에 초등학교 졸업 자격을 못 갖춘 할머니, 할아버지도 찾기 힘드니 그냥 숙명적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아무튼 나는 올해 1,3학년 복식학급을 맡게 되었었다. 2월 새학기 준비기간에 출근해서 인사발표 및 업무 분장 발표를 하고, 이제 새 학년 교육과정을 준비하고 있었다. 처음 맡는 복식학급에 대한 긴장도 있었지만, 나의 선택도 있었기에 나름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다. 방학 동안 3학년 아이들과 1학년 한 명의 예정된 입학생을 생각하며 수업 시간, 쉬는 시간 등 시뮬레이션도 해 보고, 또 여러 필요한 자료도 수집하고 있었던 터였다. 복식학급인 만큼 두 개의 교육과정을 짜야하기 때문에 교욱과정 연수와 회의를 마치고 교실에 앉아 두 개의 기초시간표를 막 다 짜고 시수를 계산하려고 할 찰나였다.
교무 선생님이 갑자기 노크를 하더니, 잠깐만 기다려 보라고 하시며 전학생이 올 수도 있다고 하셨다. 큰 학교에서야(혹은 온전한 6학급에서야) 한 두명 전학온다고 크게 달라질 것이 없겠지만, 우리에게는 큰 변동이 뒤따르게 되어 있었다.
0명이었던 2학년에 한 명, 2명이었던 3학년에 한 명. 없었던 학급이 하나 증설되면서 복식학급 조정에, 신규교사 발령까지, 업무 분장 조정도 해야하고, 교사들 상황에 따라 복식을 어떻게 묶을 것인지까지 다시 조립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게다가 전학 온다는 전화만 받았을 뿐, 진짜로 와야 오는 것이니 섣불리 뭔가를 실행할 수가 없으니 하던 모든 일을 멈추고, 오롯이 기다리기만을 하루. 온갖 변수를 다 계산하며 주판을 두드리다 애꿎은 청소만 열심히 했었더랬다.
그렇게 나는 1학년과 2학년의 복식학급 담임이 되었다. 마침 2학년에 새로 전학 온 아이도 여자 아이라, 두 명의 여자 아이와 함께 하는 복식학급이니 크게 정신 없지는 않겠다는 기대? 위안?을 하며 새학기를 맞이했다.
전학 온 2학년 언니는 눈도 예쁘고, 얼굴도 동그란 귀여운 언니였는데, 아무래도 낯선 곳에서 전학 첫 날을 맞이하니 긴장되었는지 눈물을 글썽거리기도 했다. 그림책도 읽어주고, ox퀴즈 등 <첫만남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서로 알아가고 친해지며 긴장도 풀렸다. 둘이 서로 의지하며 놀이터에서도 놀고 쉬는 시간마다 “랜덤 플레이댄스”를 추며 즐겁게 지내는 모습을 보니 선생으로서 참 뿌듯했다.
그 고마운 언니는 1학년 동생이 무섭다며 혼자 화장실을 못 갈 때도 늘 따라가주고, 잘 모르는 게 있으면 친절하게 설명도 해 주었다. 정말 이 언니가 없었다면 어땠을까.
그러던 어느날, 과학 상상화 그리기 대회를 하는 날이었다. 2학년 언니는 상상화 그리기에 대한 열정을 며칠 전부터 한껏 드러내며 집에서 연습도 해 왔던 터라, 그림을 슥슥 그리기 시작했다. 애살 많은 1학년 동생도 나름 애써 그리는데, 언니가 그리는 행성들처럼 본인도 그리고 싶은데 도무지 큰 동그라미가 안 그려진 게 문제였다. 1학년 동생은 점점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대문자 T에, 귀도 살짝 어두운 선생도 알아차릴 정도로 씩씩거리다가 흥흥거리기를 반복했다. 선생은 스스로 해결할 시간적 여유를 주며(나름 경력통해 쌓은 인내심과 노하우) 기다렸지만, 점점 교실의 분위기는 험악해졌다. 선생은 차분하게 설명해주고, 달래기도 하고, 살짝 힌트도 주었지만 그녀의 짜증 게이지는 점점 높아지고 있었다. 선생의 감정도 점점 격해지고(ko), 차마 1학년 어린 아이에게 감정이 실린 훈계를 할 수가 없었다. 어쩔 수 없이 선생은 쉬는 시간을 1분 앞 둔 시간에 그 자리를 떠나 교무실로 도망을 쳤다.
교무실에서 한숨 돌리고 마음의 위안을 얻은 후, 교실로 돌아와보니 교실은 평화가 임했고, 1학년 동생의 도화지에는 언니의 손길이 느껴지는 큰 행성이 두 개 그려져 있었다.
언니에게 고맙다.
너무나도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