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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단일기> 초등교사의 유치함도 직업병일까?

by stark

#1

우리 단지에 주차빌런이 있다.

정말 세세하게 말하고 싶지만 참는다.

학교에서 어느 수업 중이었다.

무슨 예시를 들고 있었다.

“나쁜” 자동차를 칭하는 장면에서 나도 모르게 그만

그 빌런 차 넘버를 세세하게 나열하고 말았다.

그런데 신기하게 마음이

시원했다.


#2

우리 동네에 인사를 하지도 받지도 않는 여자 아이가 있다. 어렸을 적부터 봐 왔던 아이인데, 본인에게 득 될 것 없는 나를 무시하는 느낌으로 외면해 왔었던 아이다. 입 아프게 나의 기분 나쁨을 설명할 수 있지만 참는다.

초등학교 1학년 국어 (나) 5단원은 무려 제목이 “바르게 인사해요”다. 첫번째 차시, 인사의 필요성 및 중요성을 가르치는 시간에 나는 그만 절제하지 못하고 그 인사 하나로 나의 기분을 들었다 놨다 하는 그녀의 사연을 말하고 말았다.

우리반 1학년 아이는 나의 이야기를 듣고 얼굴을 찌푸리며 나의 마음을 공감해 주었다.

신기하게도 힐링이 되었다.


#3

선생은 테니스를 배우게 되었다.

지난 몇 년간 남편이 그렇게 꼬시고 어르고 달래어도

꿋꿋하게 “난 공을 좇아갈 의지가 없어”라며

거절했던 선생인데,

어찌저찌 그만, 덜컥! 시작하게 되었다.


지난 주 코치님이 주말에 감을 잃지 않도록 연습을 해오라고 하셨다. 그런데, 그만 주말이 후루룩 지나가 버렸고, 선생은 밤에 자다가 그 숙제가 생각났다.

그래서 새벽녁부터 아침까지 꿈에서 내내 테니스

기본 동작을 연습했다.

코치님이 “아유, 안 해오면 안 한대로 하면 되는데…”하신다. 나도 내가 왜 그런지 모르겠다.


#4

테니스를 치는데 긴장된다.

손목에 힘을 주라는데

잘 모르겠다.

암튼 공을 보며 친다.

코치님이 “힘! 스트레스 푸셔야죠!”하시길래

나도 모르게

그 주차 빌런의 차 번호를 (마음 속으로) 외쳤다.

“0000!!” 탕!

코치님이

“나이스!”

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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