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아침, 낯익은 이름의 메시지가 도착했다.
“선생님, 시간되실 때 전화 좀 주세요.”
보낸 이는 신우 장학사님.
예전 작은 도시에 있는 교육센터에서 함께 일했을 때 센터장이었던 분이었다.
그는 항상 “교사는 아이들보다 먼저 무너지면 안 됩니다”라는 말을 했고, 내가 힘든 시기에 조언을 아끼지 않으며, 멘토처럼 곁에 있어준 사람이었다. 그 덕에 나는 지금의 학교로 옮겨올 수 있었고, 마음속 어딘가엔 늘 신우 장학사님에 대한 신뢰와 고마움이 남아 있었다.
신우는 간단한 인사를 나눈 후 조용히 말을 꺼냈다.
“교육청에서 연락이 왔어요. 캠프 관련해서 도에서 사실관계 조사를 요청했더군요. 교장과 통화를 해봤는데… 모든 게 잘 마무리됐다고만 하네요. 그런데, 뭔가... 좀 이상해요.”
나는 가볍게 웃었지만, 마음 속은 폭풍이 휘몰아 치고 있었다.
“제가 또 무슨 사고를 쳤을까요?” 농담처럼 넘기려 했지만,
몇 달 전 출장지에서 잠깐 마주쳤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때 무심코 말했던,
“언제 한번 시간 내주세요. 솔직히 너무 힘들어서요.”
아마 그 말이 머릿속에 남아 있었던 모양이다.
그래서 연락을 준 거였다.
카페 한쪽 자리, 커피가 식어갈 무렵
나는 그동안의 일들을 천천히, 그러나 빠짐없이 털어놓았다.
교사로서 겪은 자괴감,
교장샘으로부터 당한 거절감,
불법찬조금을 불법찬조금이라 말하지 못한 답답함
내부 고발자가 되어 받는 차가운 시선들을…
신우는 한 마디도 끼어들지 않았다.
단지 고개를 끄덕이고, 눈빛으로 공감해 주었다.
누군가 자기 이야기를 판단 없이, 이입하며 들어준다는 것.
그것만으로 나는 살 것 같았다.
“징계든, 조사든... 이젠 그냥 알아서 하라고 하세요.”
“...”
“전, 진짜로 말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너무 감사해요“
신우는 조용히 말했다.
“용기 내줘서 고마워요. 누구도 쉽게 하지 못하는 일이에요.”
그날 이후, 상황이 어떻게 흘러갈지 나는 모른다.
하지만 하나는 확실했다.
‘이야기를 들어주는 한 사람이 있었다’는 사실이,
그 어떤 위로보다 큰 버팀목이 되었다는 것.
그 순간을 떠올리면, 아직 세상은 완전히 차갑지만은 않다는 걸 믿고 싶어진다.
“이게 현실이야? 드라마 아냐?”
학교로 돌아가는 차 안, 나는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마치 누군가가 오래 묵은 마음을 꺼내 주고, 토닥여 준 것 같았다.
드라마와 같은 일상,
어제까지는 절망, 오늘은 위로와 희망...
이 평범한 교사의 삶이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