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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끄루쓰 Jun 02. 2022

회사원 김z의 하루

퇴근하고, 고민하고, 또 고민하다 잠에 들고



5시부터는 시공간에 형언할 수 없는 변화가 생긴다. 그건 바로 시간의 속도가 느려지는 동시에 빨라지는 것. 5라는 숫자는 항상 깔끔한 숫자인데 이상하게 나에게 5시는 너무 지저분한 느낌. 일을 마무리 지어야 하는 시간임이 분명한데 왜 아직 나에게는 해야 할 일들이 쌓여 있는 것일까. 회사에서 봄이라고 심어놓은 알록달록한 꽃들은 밖에서 나 좀 봐달라고 아우성인데.  얼마 전에는 우리 회사 앞뜰에 벚꽃이 아주 흐드러지게 피었었다는 사실을 벚꽃이 다 지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제는 선명한 핑크색의 꽃이 피었는데, 이제 와서 생각해보니 걔 이름 한 번도 안 물어봤네.

혹시 이 꽃 이름 아시는 분?

회사 정문을 나서면 시곗바늘은 애매하게 6을 기준으로 시옷자처럼 접혀있다. 애매하다 애매해. 운 좋으면 정시에 퇴근하고 그때에는 시곗바늘이 군더더기 없는 수직선을 그린다. 완벽한 수직선은 곧 풍요로운 저녁시간을 의미한다. 정시 퇴근하면 시간이 많아서, 정시퇴근 못하면 현타가 와서 나는 또 혼자만의 고민에 빠진다. 나는 무엇을 위해서 살지. 터벅, 터벅, 터벅 3번 출구 계단을 밟으며 내려간다. 어두운 지하철역, 한줄기 빛도 들지 않는 회사앞역 아래로 스며든다.


태초에 인간을 맨 처음 설계한, 그러니까 '신'이라 불리는 존재가 너무도 원망스러웠다.

신이라는 작자가 우리에게 자유의지라는 것을 부여했다. 그 덕에 나는 이것도 될 수 있고, 저것도 될 수 있다. 현대 사회는 아주 다양한 기제로 그게 좋은 것처럼 잘 포장해놨지만 생각해보면 그건 인간이 평생 지고 가야 할 십자가와 다름없다. 왜냐하면 내가 이것이 될지 저것이 될지 알 수 없기 때문에. 애초에 우리는 왜 답도 안 나오는 질문에서 답을 찾아내려고 평생 머리를 싸매면서 살아가야 하지. 그렇다면 모든 인간의 삶은 고민, 걱정, 후회로 점철되는 삶일 텐데. 필연적으로. 그렇다면 이 세상에는 고통받는 미생밖에 없을 것이고. 또 그렇다면 왜 우리는 논리나 합리 따위의 것을 운운하면서 살아가는 걸까. 아무리 논리적으로 합리적으로 사고해도 그렇다 할 해답이 나오지도 않을 것을.


그러다가, 애초에 이런 종류의 실존적인 고민은 정답을 내리기 위해 하는 게 아니라고 나를 달랬다. 마치 시지프스의 고된 노동처럼. 답의

방향을 찾아가는 게 중요한 거지. 답이 보이진 않지만 답의 어렴풋한 자취 또는 방향에만 집중하면 되는 것이지. 그렇지만 그 자취가 조금만, 지금보다 조금만 더 선명했으면 좋겠다는 개인적인 바람이 있다. 시지프스도 어쨌든 돌 굴리는 방향은 이미 알고 있지 않았을까. 뭐 아님 말고.


열차는 매일같이 이런 공상에 사로잡힌 나를 어떻게든 우리 집으로 끌고 간다. 고마워요, 8호선.


편의점을 지나면서 잠시 저녁 뭐 먹지 하는 고민을  하다가 그냥 지나쳐 집으로 향한다. 걱정, 고민 비스무리한걸로 내 머릿속을 더 고생시켰다간 뇌 속의 회로가 닳아버릴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에.


대문을 열고, 우리집 문을 열면 또 시끌벅적하고 분주한 사람들의 냄새가 난다.

-혜석이 왔니

-어 왔어.

고민의 스위치는 저절로 꺼진다. 일단 오늘은 수고했다. 신발을 벗으면서 하루 종일 날 둘러쌌던 긴장의 기운도 벗어던진다. 집 밖의 모든 것이 녹록지 않아 정말.


내일 출근해야지.

영어공부라든가, 책을 읽는다든가, 뭔가를 좀 더 해볼까 싶은데 또 피곤하기도 하고.

결국 방불 스위치를 누르고 나는 미리 따뜻하게 데워놓은 이불 속으로 차근차근 들어간다.


아직 밖은 시끌벅적하다.

원래 잠은 잘 오지 않는다.

하루가 끝난 건가.

또 이렇게 끝난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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