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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oronto Jay Nov 13. 2022

총 맞을 뻔 했다.

태어나서 경찰에게 총구가 겨눠지는 일이 과연 평범한 사람에게 몇 번이나 일어날 수 있을까?

그날 그랬다.

미안하지만 사람 좋아 보이는 중년의 넉넉해 보이는 한국 순찰차 교통경찰과는 다르게 이곳 토론토 경찰 특히 흑인 경찰의 위압감은 가까이 봤을 때 그 공포감이 배가 된다. 키는 보통 185에 덩치는 ufc 헤비급 체급을 넘어서며 방탄복과 각종 장비를 완비한 채 서있는 그들을 보고 있으면 잘못한 것도 없이 주눅이 든다.


그런 그에게 총을 맞을 뻔했다. 내가. 이 착한 동양 외국인이.


정확히 말하면 총구가 겨누어 지기 직전까지 같다가 맞는 표현이다.

"스탑! 스탑! 스탑!" 그의 외침은 세 번이었다. 그리고는 그의 오른쪽 허리춤에 있는 총지갑으로 손이 올라가는 것까지 보고 나는 다이빙하듯 운전석으로 뛰어 들어가 양손을 창밖으로 내밀어 들고 있었다.


이 모든 것이 나의 한국적인 복잡한 해결 방법 때문이었다.


토론토 401 고속도로를 빠져나온 나는 멀리 있는 파란색 신호등에 좌회전 후 직진하기 위해서 속도를 내고 있었다. 하지만 곧 신호는 노란색으로 바뀌었고 그대로 서려했으나 뒤에 한국에서는 볼 수 없는 뒷동산만 한 트레일러 한대가 무섭게 쫓아오고 있다는 것을 뒤늦게 알아차렸다.  브레이크를 밟자니 저 어마 무시한 화물차에 내가 좋아하는 속 터진 납작 만두가 될 것 같았다. 그렇다고 그대로 통과하기엔 빨간불에 좌회전을 하게 될 것 같아 머믓거릴 수밖에 없었다. 20대의 청년이었으면 판단이 조금 더 빨랐겠지만 40대 중반을 넘어서면서 나는 그렇지 않은데 자꾸만 다른 차들이 나의 판단을 느리게 하는 것처럼 만드는 경우가 유독 많아지는 것 같았다. 설까? 말까? 서야 되나? 말아야 되나? 그 순간 판단을 내림과 동시에 행동에 나서야 했지만 나는 계속 그 생각을 하면서 빨간불로 바뀌는 사거리 한복판으로 차를 몰고 있었다. 그랬다. 아니 그럴 것 같았다. 그분이 계셨다. 서양 경찰에게 처음 단속을 당하는 순간이 온 것이다. 마치 고대 전쟁터의 검투사처럼 근육이 경찰 정복 위로 불끈불끈 솟아오른 흑인 경찰이었다. 캐나다에 입국한 지 한 달이 채 안 되는 시기였다. 약간은 다른 교통신호 체계로 가뜩이나 애를 먹고 있었는데, 결국 이렇게 걸리게 되니 당황함과 함께 "해결"을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이 정신이 나가고 당황하자 40여 년 생활했던 한국인의 본능과 모습이 여지없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일단 길로 세우라는 지시에 고분고분 따르며 차를 세웠다. 자. 여기부터다. 한국사람의 모습과 캐네디언들의 모습이 확연하게 차이가 나기 시작한다. 나는 말해야 했다. 왜 신호를 위반해야 했는지. 집채만 한 화물차에 깔릴 뻔했으며 만약 신호를 지켰다면 너는 더 큰 사고의 목격자가 될 수 있었고 다행히 나의 빠른 판단으로 큰 사고를 미연에 방지할 수 있었노라고 얘기해야 했다. 그런데 뒤에 있던 경찰이 나에게 빠르게 오지를 않는다. 답답하다 자. 어떻게 하겠는가? 그렇다. 내려야 했다. 그리고 설명을 하고. 사정을 해야 한다. 신호위반 벌금이 최소 300불을 넘길 것이니 어떻게 해서라도 신호위반 말고 가벼운 싼 티켓으로 바꿔야 한다. 마음이 급해지니 차 문을 열고 경찰을 향해 내가 뒤돌아 걸어가기 시작했다. 가장 안쓰러운 표정과 비굴한 몸짓으로.

그랬다. 나는 분명 위협적으로 그를 향해 간 것이 아니다. 사정을 얘기하고 빌고빌어서 싼 티켓으로 바꾸고자 나갔을 뿐이다. 운전석에서 나온 나를 보던 그가 한마디 외친다.


"차에 앉아!" "나오지 마!""돌아가 앉아!"


나는 그가 왜 그리 소리치는지 알 수가 없었다. 사람이 정이 있지. 잘못했다고 빌러 나온 사람에게 어찌 저리 막대할 수 있단 말인가. 약간의 서운함과 당황스러움도 잠시 나도 모르게 가까이 온 그에게 손이라도 잡고 사정을 해보려 그의 손목을 잡았다. 나는 분명 어찌하려는 게 아니고 사정사정하고 이렇게 된 이유를 말하려 했을 뿐이다. 한국에서는 다들 그러지 않는가. 얼마나 공손한가. 그냥 자리에 앉아서 다가온 경찰을 빤히 위로 째려보는 행동은 예의에 벗어난다고 생각했다. 그렇지 않은가?


"하지 마!" "저리 가!" "앉아!"


참 너무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하지 마라면 하지 말아야지. 갑자기 그 검은 얼굴도 울그락 붉으락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화났나 보다. 내가 멀 잘못했지? 돌아가 앉으려다가 그래도 사람이 잘못했는데 다시 가서 앉는다는 것이 미안해졌다. 머릿속이 다시 복잡해졌다. 먼가 이 상황을 유리하게 끝낼 방법이 있을 것만 같았다. 운전면허증 아래에다 이십 불짜리 지폐 한 장 숨겨서 줘볼까? 아니면 오십 불? 판단이 서지 않는 순간. 운전면허증이 어디 있지? 기억이 나질 않았다. 지갑을 가지고 나왔는데 당황하니 도통 기억이 나질 않는다. 살짝 운전석 창문으로 바라본 차 안에는 보이질 않았다. 아하! 대시보드. 거기에 넣었던 기억이 난다.

그 당시 내 자세는 이랬다 운전석을 열고 한쪽 무릎을 운전석에 꿇은 상태에서 상체만 조수석 대시보드 쪽으로 숙인 후 오른손으로 대시보드를 열고 있었다.


그때.


세상에서 나를 향해 부르는 가장 큰 목소리가 들렸다.


"스탑""스탑""스탑"


아니 운전면허증 줄라고 찾는데 왜 저러지?


자. 여기까지만 들려줘도 현지 사람들은 나를 참 운이 좋다라고 얘기한다. 등에 분명 총세발은 맞았을 상황이라고. 천운이라고.


나는 너무 놀란 나머지 차 밖으로 나오는 순간 그의 손이 오른쪽 총지갑으로 향하는 것까지 보고는 다시 다이빙을 해서 운전석에 앉아 문을 닫고 양손을 창밖으로 향해 올리고는 "아임 쏘리"를 외치고 있었다.

백미러를 통해 본 그의 오른쪽 총지갑에는 총이 없었다. 꺼내어져 있었던 거다.


경찰 입장에서는 신호위반 차량의 동양인 운전자가 지가 잘못하고는 갑자기 튀어나와 경찰에게 뛰어오더니 팔목을 잡으려 한 거고 갑자기 차 안 대시보드에 있는 총을 꺼내려는 장면으로 보인 거다.

"총 맞아도 하나도 이상하지 않은 장면"이 연출된 거다.


자 그럼 어떻게 했어야 하나.


잘못한 내가. 즉 신호 위반한 나는 그냥 있어야만 했다. 어떤 방식- 사정, 현금, 설명-으로든 내가 그 자리서 해결하려 해서는 안된다는 거다. 거기서는 그냥 앉아서 잘못 인정하고 스티커 끊고 벌금 내면 되는 거고. 그것을 인정 못하겠으면 법원에 불인정 사유서를 내고 약식 재판을 받아야 한다는 건데. 그 모든 경찰과 판사의 일까지 한자리서 해결해 왔던 한국인인 나는 복잡한 두세 명의 일을 혼자 해결하려 밖으로 뛰쳐나갔던 거다.


먼가 복잡하지만 두어 가지 해보면 한 가지는 걸렸었다.

싸우던지, 빌던지, 장황하게 변명하던지 울던지 해서 어떻게 해서든 신호위반보다 더 싼 스티커 발부로 돌리던지 운 좋으면 그냥 없던 일로 만들기 위해 그 자리서 총력전을 펼치지 않는가? 밑져야 본전이니 말이다.

그러니 위반사실이 적발되는 그 순간부터 머리가 복잡해지기 시작하는 거다.

나는 어떤 카드를 써야 할 것인가?

"이 복잡함"에 익숙해 있던 나는 잘못한 "내"가 이 상황을"해결"하기 위해서 운전자일 뿐만 아니라 목격자도 되고 경찰도 되고 판사도 되고자 노력한 것이다. 그 짧은 순간에.


그렇게 운 좋은. 총까지는 맞지 않은 그날 이후 나에게는 경찰과 마주할 일은 아직 까지 없었지만.

내 나름의 교통위반 시 취해야 할 행동규칙이 생겼다.

아주 간단하다.


그냥 자리에 앉아서 경찰을 기다린다. 달라고 하면 운전면허증을 준다. 스티커를 발부받는다.

고생한다고 말하고 집으로 간다.

정 억울하면 나중에 법원에 불인정 신청을 해서 약식 재판을 청구한다.

아주 간단하다.


캐나다에서 신호위반 후 복잡하게 해결하고 싶은가?


조심하시라! 총 맞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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