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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oronto Jay Nov 15. 2022

섹시한 금발의 그녀가 말을 걸었다.

정말 아름다운 날이네요? 그렇지 않아요?


그녀였다.

정말 그녀가 그것도 먼저 말을 건넸다.


캐나다에 도착한 지 한 달 즈음 지났을 때였다.


조금 전 토론토 원더랜드 놀이 공원에 아이들을 내려주고 한두 시간 이 아름다운 나라의 단풍과 햇살을 즐기리라 생각하며 담배 하나 입에 물고 유유자적하고 있던 그 순간.

놀이공원 주차장 커다란 단풍나무 아래 바로 옆 벤치에 앉아 있던 그녀가 먼저 그 환한 웃음을 눈부신 흰 치아와 함께 내보이며 "나"에게 "말"을 걸고 있었다.


내가 그녀가 말을 건네자마자 0.1초 만에 세상 반가운 웃음으로 반길 수 있었던 이유는

일부러 보지 않으려고 그렇게 노력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날의 햇살보다 더 희었던 피부색과 함께  어깨까지 내려오는 금발 머릿결은 한국에서 보았던 머릿결이 끝내주게 좋아진다고 광고하던 "엘라스틴 샴푸"의 모델보다 더 빛나고 있었다

.

거기에 잘록한 그녀의 허리는 탱크톱과 짧은 청 반바지 사이에서 소심한 내가 감히 쳐다볼 엄두를 내지 못할 정도로 섹시한 자태를 자랑하고 있었다.


솔직해 지자.

맞다 혼잣말로 나도 모르게 중얼거리고 있었다. "아따. 겁나게 예쁘네"


그랬던 그녀가 나에게 "말"을 건넨 것이다. 그것도 "먼저"


많아야 30살이 됐을까? 가늠이 좀처럼 되지는 않았지만 나보다 훨씬 어린. 예쁜. 하물며 섹시하기까지 한 백인 여성의 환한 웃음에 두어 가지 생각들이 복잡하지만 빠르게 내려앉았다.


일단 아이들이었다.

나에게 두 시간이 있다. 저 넓은 놀이공원 놀이기구를 타고 오려면 빨라도 두 시간이다.

나에겐 두 시간이 있다.


두 번째. 연락처를 달라고 하면 무엇을 줘야 한다는 말인가.

캐나다의 연락처는 416~으로 시작하는 아내의 캐나다 폰뿐이었다.

카톡이 먼지 설명할 수 없는 저 아름다운 여성에게 집사람 전화번호를 줄 수는 없지 않은가?

빠르게 인스타그램 아이디를 떠올려 봤지만

평소에 하지도 않고 있는 인스타 그램의 아이디가 떠오를 리 없었다.


다음은 내 상황이었다.

아직 나를 사랑하고 있다고 굳게 믿고 있는 아내가 있고 한 아이의 아빠이기도 한 내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도덕적 판단이 도대체 서지를 않았다.


한국서 제대로 자리를 잡지 못해 아내가 운영하는 사업체에 빌붙어 운전기사로 일하는 처지에 젊고 아름다운 백인 처자와 바람이 난다는 것은, 마치 예전 고시 뒷바라지를 하던 남자 친구가 사법시험에 붙어 출세하자 그 고생한 어여쁜 처자를 버리고 말았다는 심파극의 내용과 흡사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당시 아이가 받을 충격 또한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무리 이 서양 땅에서 자라는 아이였지만 아빠의 이 배신을 어떻게 이해시켜야 하는지 조금은 당황스러웠다.


복. 잡. 해. 지. 기. 시. 작. 했. 다.


나는 그리 잘하는 영어는 아니었지만 분명 알아들었었다. "정말 아름다운 날이네요"

예전 미스코리아 선발대회에서 참가자들이 심사위원들에게 잘 보이기 위해 습관적으로 했던 그 표현과 비슷하다고 느꼈다


"오늘은 정말 아름다운 밤이네요"


하지만 한 번에 이 아름다운 서양 여성의 대답을 단 한 번에 알아들을 정도로 귀 기울이며 당신과의 소통을 기다렸다는 소위"싸구려"가 되기 싫음에, 조선시대 갓 쓰고 도포 입은 선비의 표정으로 되물었다.

  "쏘리?"

굳이 해석하자면 상대가 남자였다면. "니 머라캤노?"가 될 터이지만


이 상황에서는

" 정말 죄송하지만 이 아름다운 날씨에 취해 당신에게 관심 가지고 있지 못했어요.

  죄송하지만 무어라 이 사람에게 말을 하셨는지 다시 말씀해 주시겠어요?"


이 정도의 의미를 단 두 글자에 담기에 충분했다.

 

"정말 아름 다운 날이라고요" 그녀는 다시 한번 대답했다.


그녀는 거침없었다. 자신의 벤치에서 벌떡 일어나 내 옆자리로 옮겨 앉더니 그날따라 감지 않아서 뻗친 머리를 들키기 싫어 쓰고 나왔던 내 모자를 보더니 또 한마디 던진다. "모자 멋지네요!"


혼자 이 말이 툭 나왔다. "얼라리여?" 가슴속 혼잣말이었다.


이젠 더 적극적으로 나온다.

내가 손에 들고 있던 한국 에쎄 담배를 가리키더니  담배는 맛이 어떠냐고 묻는다.

한국인의 담배 인심은 전 세계 최고이다.


 담배를 나눈다는 것은 초코파이보다 더한 "정"을 나누는 인간적인 사교의 시작 아니던가. "아! 이거?" 최고의 질과 향으로 세계적으로 알아준다. 너만 몰라서 그렇지.


이까짓 거 한갑도 통째로 줘도 괜찮다 라는 표정으로 하나를 건네니. 하나를 더 기념으로 갖고 싶단다.


겨우 하나? 뜯은 지 얼마 안 돼서 가득 넘쳐나는 담배 개수에 자신감을 얻은 나는 다섯 개를 천천히 빼내어

그녀에게 전했다. 그때 나온 그녀의 한마디에 나는 어깨가 으쓱해졌다.


"너 부자야?

으흐흐흐흐. 부자처럼 보였나 보다.

하긴 이나라 담배가 거의 20불이다 보니 이 비싼 담배를 다섯 개나 선뜻 건네는 내가

소위 "있어" 보였나 보다.


자! 이제 본격적으로 이야기를 내가 이끌어야 한다.


조금 전까지 걸려했던 양심의 가책은 가을 햇살에 녹아버린 상태였던 것 같다.


그래 한국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해 보자. 완벽한 영어 문장을 구사해야겠다고 생각한 순간 내가 그리 영어를 잘하지 못하는 중년의 한국 남자라는 분명한 현실이 떠올랐다.


단순하게 하지만 명확하게 해야 한다.


자 침착하고 시작하자. 그리고 동시에 캐나다에 들어오기 전 나름 읽었던

"고급 영어회화 첫걸음"의 첫 페이지부터 떠올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순간.


고급 영어회화 한 문장을 다 완성하기도 전.


그녀는 내가 전해준 한국인의 "정"이 듬뿍 담긴 다섯 개의 에쎄 담배를 들고 "고급진 상류사회 영어회화"를 준비하던 나에게 "오늘도 좋은 하루 보내"라는 아주 쉬운 영어 한마디를 던지고 그 잘록한 허리와 금발을 휘날리며 아름다운 캐나다 가을 낙엽 속으로 멀어져 갔다.


그때 이후 나는 알았다. 이 나라 사람들의 "오늘 날씨 너무 아름답지 않아?"라는 말은 진짜 날씨가 아름답다는 얘기라는 것을. 말 그대로 날. 씨. 가. 좋. 다.라는 거다.


왜 나에게 애써 말을 건넸을까에 힘들여 고민하거나

그 속에 숨어 있을지도 모르는 복잡한 의미를 해석하느라 애쓰지 않아도 된다는 얘기다.


"날씨 좋다"는 진짜 날씨만 좋다는 것으로

"담배 맛있어 보인다"라는 말은 하나 그냥 달라는 얘기로.


그렇게

여자가 남자에게 말을 걸었다는 것에는 아무 복잡한 의미가 "없다!!!"


그리고 먼가 당한것 같은 쎄~한 느낌의 이것!

"담배 때문에 나에게 말을 걸었을 것이다"


이 생각 조차 맞을런지는 몰라도 애써 복잡하게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그것이 사실이라 할지라도...


그  귀한 한국담배 5개비와 함께

멀리 그녀를 보낸 이후 나는 수많은 캐나다 사람들로부터 내가 생각하는 "추파'를 받아야 했다.


특히 담배를 피우는 순간 열 번에 두세 번은 남녀노소 백인과 흑인 가리지 않고 이 동양의 어리숙해 보이는 중년 남자에게 말을 건다. "정"을 나눠 달라고.


그 "정"이 아니더라도 이 나라 사람들은 적응하기 힘들게 눈만 마주치면

모르는 사이에도 고개 까딱과 함께 세상 반가운 미소를 짓는다.


떠들하게 운동가는 젊은 대학생들은 물론이고 엘리베이터 안의 그 풍채 넉넉했던 인도계 아주머니도, 특히 바로 옆집 인상 좋은 90이 다 되어가는 노부부는 하루에도 몇 번씩 애써 눈을 마주치며

복잡하지도 않고  의미 없는 그 단순한 인사를 건넨다.


금발의 그녀가 그러했듯이.


          

   "정말 아름다운 날이네요. 그렇지 않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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