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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oronto Jay Dec 09. 2022

"하버드대학교"에 가겠습니다.

"행복은 성적순입니다" 아버지!


지방 대학 출신으로 대학교 3학년이 되어서야

직업에 대한 것도 아닌 취직 고민을 시작했었던 이 "아비"라는 사람을 둔 아이의 어릴 적 말버릇이었다.

그것은 마치 아버지를 보고 있노라니 인생의 행복은 분명 "성적"순입니다!.

이렇게 "나" 들으라고 외치는 것에 틀림이 없었다.


그래서 딱히 할 말도 없었지만.

아이를 교육시켜야 하는 "나"의 입장에서는 어떻게 해서라도  "아비" 노릇.

아니 흉내라도 내야 했기에. 너는 이렇게 이렇게 살아라라고 말해줘야 한다.라고 생각은 들었지만

그게 만만하지 않았다.


 학교교육 부분에서는 아이의 성적이 비교할 수 없이 그 당시 나보다 훨씬 좋았고,

학교에서의 교우 생활은 한번 싫어지면 철천지 원수가 되어버리는 삐딱한 성격 탓에

친구 하나 제대로 없는 "아비"보다 훨씬 좋아, 매일 십 수 명의 친구들에 둘러싸여 있으니

양심상 "지도" 할 처지도 안되었으며

술 담배 모두 즐기는 "나"로서는

신체발부 수지부모라 읊조리는 이 녀석의 보수적이고 고리타분한 성격에

 잘못을 일갈할 수 도 없는 처지였다.

 

한국서 초등학교 4학년 이후 8년,

이 머나먼 캐나다로 떠나온 아들놈이 드디어 대학 준비에 본격적으로 뛰어들던 작년 말.

딱 한마디로 다시 이 아비의 가슴을 치고 들어왔다.


행. 복. 은. 성. 적. 순. 입. 니. 다.


그래 고맙다 아들아

 그런데 왜 갑자기 그런 말을 하니?

훅하고 들어온 아직 여드름 자국 한창인 새파란 아들놈의 한마디에 가슴이 시렸다.


 먼 말을 하려나.

또 이 잘나지 못한 아비 탓을 하려는 겐가. 단단히 준비를 해야 했다.


행복해지고 싶습니다.

그래서 아버지!


"하버드를 가야겠습니다."


이 무슨 해괴한 소리란 말인가.

그 말로만 듣던, 세계 최고의 대학을 간다고?

이먼 캐나다까지 데리고 와서 공부시켰더니

이제는 미국. 그것도 전 세계 천재들만 간다는 하버드를 간다고?

이때 내가 던진 질문은 딱 하나였다.


아들아 어떻게 가려고?


어떻게는 제가 알아서 할 거고요.

"행복해 지려면"가야겠습니다!"


내가 머라대답했겠는가.

그래 가봐라. 이 말 한마디였다.


그 말 안에는

1. 어떻게 가야 하는 건데.

2. 돈은 얼마나 드는 건데

3. 미국에서 어찌 살라고?

 4. 네가? 진짜?

 이런 궁금증과 함께.

혹여 갈 수 있다고 하더라도

1. 학비가 엄청난데 2.  주거와 생활비는? 3. 전세계 천재들사이에서 어찌 버텨낼래?

 이 부분의 부정적인 부분들이 모두 들어있었다.

하지만 아비 된 자로서 아들이 "하버드"를 간다는데

 "저"나 "나"나 이런 자존심 상할지도 모르는 질문을 대놓고 할 수는 없었다.  


아버지. 하버드 장학금은 성적으로 주는 것이 아니니 걱정 마세요.


내 걱정과 부족함을 꿰뚫고 있었다.

그럼 머로 주니?

네 아버지 소득순으로 줍니다.

그러니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신청해 볼게요.


여기서 소득순이라 하는 것은 못 살수록 준다는 것이다.

 결국 버는 돈이 적을수록 장학생 선발에 유리하다는 거다. 창피하지만 가능성이 보였다.

 적은 소득이 이렇게 든든한 적이 없었다.


성적은 되겠니?

이때 어려운 영어로 숫자와 함께 쓰인 몇 장의 성적표를 보여준다.

고교 내내 IB과정을 수고스럽게 이수한 아들의 성적은 45점 만점에 44점

학부 평균점수 98점

SAT 1600점 만점에 영어 760점 수학 800점 토털 1560점이었다.

점수로만 본다면 아주 아주 뛰어난 성적은 아니더라도

소위 하버드 합격생 평균보다 살짝 위라는 것이었다.


한평생 꼰대 아저씨로 한국에서 자라고 직장생활을 해온 나로서는

성적이 된다라는 말에 희망을 갖기 시작했다.

소득이 적어 장학금도 받을 수 있다는 말

"한 번쯤" 도전해볼 만하다 라는 생각을 품게 하였다.


"대학은 성적 순서대로 가는 곳"이라는 가장 쉬운 논리가 자리 잡힌 나로서는

갑자기 아들이 자랑스럽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내 아들이 하버드를 간다? 허허허...


하지만 몰랐다. 그게 다가 아니었음을.

성적이 "다"가 아니었음을. 그게 진짜 중요한 것이 아니었음을.


왜 그리 우리나라 고위 공직자들 아들딸들이 말도 안 되는 고급 논문을 중고등학교 시절에 썼다고 거짓말까지 해가며 제출해야 했는지. 엄청난 말도 안 되는 고 스펙을 만들고 있는지. 그때는 몰랐다.


그리고 이 똑똑한 아들도 몰랐던 단 한 가지.

성적은 "내" 행복의 예상 척도는 될 수 있지만

"우리"를 위한 행복을 만드는 최우선 고려 대상이 아니라는 것이다.


하버드는 그것을 보고 있었다.


성적 좋은 것은 당연한 거고.


결과는 어떻게 됐냐고?


떨어졌다. 똑 떨어졌다.


아이가 스스로에 대한 성적을 만드는 것에는 성공했을는지는 몰라도 아이가 자기가 살아가야 할 공동체에 대한 자신의 역할에 대한 고민이 없었다는 거다. 그리고 그것은 사실이었다.

공부만 잘하는 이기적인 사람은 "필. 요. 없. 다".라는 것이

가장 중요한 입학 사정 요건인 것을 그때는 몰랐다.


결국 아이는 성적을 우선시하는 캐나다 대학중 가장 오래된 전통 있는 대학의 경영대학에 장학금을 받고 입학했고 그 한 번의 떨어짐은 아들에게 잊을 수 없는 인생의 교훈이 된듯하였다. ""말고 "우리"라는 개념이 동양사상이라고 믿었던 아이. 서양 "개인주의"보편적 진리라고 알고있던 아이에게, 사실은 "공동체"에 헌신할 수 있는 "개인"이  가장 중요한 요소라는 다소 의아한 현실을 맞닥뜨리게 하였고,

이것은 어렵지만  아주 중요한 깨달음을 주는 듯하였다.


자. 여기서 보자.

하버드를 보내고 싶은가? 아니면 하버드를 가고 싶은가?

실패에 기초한 팁을 드리자면 의외로 간단하다.


1. 공부 잘하는 건 기본이다.

(어느 정도 상위권이라면 한 묶음으로 본다.)

2. 나만이 아닌 "우리"를 잘 살 수 있게 하는 "나"임을 증명하라.

(나만 잘난 거 필요 없다)

3. 공부 이외에 운동 음악 학생회 활동 등 뚜렷하고 뛰어나고 일관된 과외활동의 업적을 만들어라.

(최소 자신의 지역 대표 이상 정도는 돼야 한다.)

4. 누군가의 도움이 아닌 내가 만들어낸 결과인가 등이다.

(부모가 돈 주고 만드는 것 거기서도 다 안다)


이렇게 보면 공자왈 맹자왈 우리 조상님들의 고리타분한 인문고전의

"사람"또는"인간"의 도리에 대한 내용과 비슷하지 않은가?


많이 느끼고 배운 다음 아이와 며칠 전 이야기를 나누다 한번 물어보았다.

아들. 아직도 "행복은 성적순이라고 생각하니?"

이제는 제대로 된 소위 정신 차린 성숙한 아이의 대답을 기대했다.

하지만 그건 나만의 착각이었다.


이놈 하는 얘기를 들어보자.

'

"아버지 소자 금년까지는 행복하지 못하였사오나. 내년부터는 다시 행복할 예정입니다."


응???


방법을 알았습니다. 방법을!!!

하버드 입학사정을 통과하는"기술적 방법"을  완전 정복했습니다.

 


그래서 편입 준비 중입니다. 하버드로.


내년부터는 진짜 행복할게요!


한마디 밖에는 할 수 없었다.


그래 아들아 너를 위해 돈은 적게 벌고 있으마. 내년부터는 행복해라!!!


말은 이렇게 했지만 돌아서며 혼자 읊조렸다.


"내년에도 못 가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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