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Toronto Jay
Nov 13. 2022
지방 방송사 아나운서 시절. 가장 행복했던 시간을 기억하라고 한다면.
새벽 5시. 대전 충남을 커버하는 FM 9*.* mhz에서 매일 아침 첫 방송으로 1년 365일 내보냈던
"** 트로트"라는 프로그램을 송출했던 그 시간이 아니었을까?
아무도 없이 혼자. 모든 걸 해내며 행복했던 그 시간.
나는 PD였고 작가와 엔지니어임과 동시에 DJ이기도 했으며 또한 청취자 이기도 했다.
당시 그 시간대는 광고가 붙지 않는 시간대로 회사에서도 거의 모니터가 되지 않았던 소위 말하는 돈 안 되는 "죽은"시간대였으며 서울에서 송출되는 프로그램중 지역 방송사 의무 제작 준수 비율 30%를 맞추기 위해 억지로 끼워 넣어둔 프로그램이었다.
청취자도 잘 모르지만 회사에서도 거의 신경 쓰지 않는 방송 모니터 사각지대였다.
소중했던 시간이었다.
대형 방송사에서는 신경 쓰지 않았던 장윤정이라는 걸출한 트로트 가수의 "어머나"가 이 시간대를 통해 첫 송출되며 그녀가 대한민국 최고의 트로트 가수의 꿈을 열어가는 모습을 뒤에서 지켜볼 수 있었고 팝의 트로트라는 이유로 컨트리음악의 팝송을 시도 때도 없이 소개하며 미국 네슈빌의 작은 지역 방송국이 되기도 했지만 아무도 태클을 걸지 않았다.
비록 한 시간의 짧은 시간이었지만 밤새 운전하던 택시 기사님과, 새벽 청소하시는 청소부 아저씨 농수산시장 경매 나가는 아주머니와 눈과 목소리와 마음을 나누는 시간이었다.
대한민국에서 이렇게 내 마음대로 방송을 해봤던 사람이 있었을까 싶기도 하다.
출근길. 혼자 하는 이 방송을 위해 나는 매일 버릇처럼 하던 것이 있었다. 바로 그날의 방송 오프닝을 만드는 거였다. 어차피 작가도 없는 방송이었으니 한 시간짜리 방송을 하긴 하되 원고 자체가 없었다. 그날그날 하고 싶은 이야기를 머리에 아니 가슴에 담고 다니는 것이 버릇이었다.
시간 날 때마다 방송 오프닝과 브리지 멘트와 클로징을 떠올렸고, 음악의 선곡과 사연을 스스로 만들어 나갔다.
방송 오프닝 때는 항상 눈을 감았었다. 원고는 가슴과 머릿속에 있었으니...
생각해보니 12년 전 일이다.
그동안 12년 동안 나는 단 한 번도 오프닝을 써보지 않았다.
아니 쓸 일이 없었다
잊고 싶어서일까 아니면 그리움이었을까?
모르겠다 그것이 무엇이었는지는.
지금부터 그래서 배경음악도 없고 이어지는 노래도 없는 나만의 오프닝을 조금씩 써보려 한다.
많이 어색하겠지만 꼭 한번 해보고 싶은 작업이기도 하다.
멋있는 시가 아닌 트로트 방송의 오프닝이니 감동적이거나 고급지지 않아도 되지 않겠는가?
버릇처럼. 그리움처럼. 그렇게 그러했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