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오프닝

100억 금궤가 우리 집 마당에 묻혀있답니다.

by Toronto Jay

"이 집주인 되세요?

한100억정도 되는 금궤가 마당에 묻혀 있다던데요"


구경 좀 하고 가겠습니다.


유창한 일본말로 통역을 하던 가이드로 보이는 사람이 눈을 반짝이며 한마디 던집니다.


지은 지 45년 된 공시지가 1억 원이 채 되지 않는 충북 소도시 한복판 우리 집 마당에

백억 원 넘는 금궤가 묻혀있답니다.


50년 전 이 집을 아버지가 처음 샀을 때.

일본식 전통가옥이었던 그때.

몇 년 만에 그 일본가옥을 헐고 벽돌집을 짓고 그저 평생 집 걱정 없이 살아가는 것이 행복이라 여기며 살아내기에 바빴던 부모님이셨습니다.

집 사고 50년이 지났지만 대지 60평 건평 35평인 이 흔하디 흔한 시골 주택은 하나도 특별할 것이 없었습니다.


굳이 하나 찾아내자면 원래 이 집은 일제 강점기 시절 일본 순사 대장이었던 일본 경찰청장 관사로 지어졌다는 것이었는데.

광복이 되면서 그 집 식구들이 하루 만에 급히 이 집을 버리고 일본으로 도망갔고.

그 후 도의 자산으로 편입되었다가 일반인에게 매도되면서 우리에게까지 넘어왔다는 건

분명히 입증된 사실이었습니다.


일본 관광객 십여 명이 우리 집 담장 너머로 고개를 빼들고 집 구경 아니 마당 구경하던 그때였습니다.


40년 전 집 건너편 지금은 없어진 당시 국민학교에 일본인 관광객들이 찾아온 적이 있는데

일제 강점기 시절 이 학교에 다녔던 일본인이 자신의 아버지에게 들은 이야기라며 그 당시 일본인 경찰청장이 일본으로 떠나기 전 이 집 마당 깊숙이 지금 돈으로 100억이 넘는 금궤를 묻고 떠났다가 찾으러 오지 않았다란 이야기를 한잔 술과 함께 불콰하게 버스에서 이야기했고. 학교에 도착하자마자 학교 구경은 뒤로한 채 우르르 우리 집으로 몰려와서 마당을 구경하고 간 것이 이 소문의 시작이었습니다.


그날 저녁 아버지의 헛기침소리는 현금 백억 부잣집 대감님의 거드름 소리처럼 들렸고

부엌의 어머니 상차림 달그락 소리는 더 이상 힘든 부엌살림 고생하지 않아도 된다는.

이게 마지막 수고일 거라고 소리치는 행복에 겨운 외침으로 전해왔습니다.


모두가 잠든 어둑한 새벽녘.

인부 몇 명이 삽과 곡괭이를 들고 집으로 찾아왔고 차라리 대낮에 하면 이상 하지나 않았을 그 괴이한 작업을 마치고 돌아간 아침. 그 누구 하나 전날 들었던 헛기침과 부엌의 달그락 소리 내지 못한 채 공연히 파헤친 마당 바라보며 한숨만 쉬고 있었습니다.

어린 나의 눈에는 그저 이 설명할 수 없는 복잡한 상황이 궁금하기만 했으나 그 누구에게도 물을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꼭 그때의 아버지 나이가 되었습니다.


어른이 되고 살림 팍팍해지고 여기저기 돈 나갈 일에 몸과 마음 지치다 보니

나도 모르게 인터넷에서 금속탐지기를 검색하게 됩니다.

곡괭이와 삽을 쿠팡 장바구니에 담아 넣습니다.


그전에 어머니께 솔직히 물어나 볼까 생각해봅니다.

그날 금궤는 어떻게 하셨는지.

너무 많아 그냥 다시 묻어 둔 것은 아니신지.


010-9●●●-7●●●

전화기 속 어머니 목소리 듣고는

추운데 조심히 다니시라고 안부 한마디 남기고 끊습니다.

차마 묻지 못했습니다.


고민 고민하다 내린 결론입니다.


내 아들 위해서 그냥 비밀처럼 마당에 소문과 사실을 함께 묻어 두기로 했습니다.


시간 흘러 아빠에게 고마워하며 그 아들의 아들에게 내 아들도 그리할 거라 믿습니다.


오늘도 우리 집 마당 속에는 아무도 그 진실을 알려주지 않는


아버지와 아들과 손자의 비밀이 묻혀있습니다.


풍문으로 들었소 song by 장기하와 얼굴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