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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oronto Jay Nov 13. 2022

단순한 나라의 복잡한 입국기


                      . 캐나다 토론토 피어슨 국제공항 도착 직전. 토론토 다운타운 상공.



" 이민국 사무실로 조사받으러 가야 합니다"


이민국이라고? 나는 이민이 아니고 딱 1달 아들놈 보러 온 사람입니다.

그래도 가야 합니다. 그리고 조사받으세요.

아니 왜요?라고 한국 식으로 눈을 크게 뜨고 덤비듯이 말했다.

물론 영어였다. "와이!"


그러자 내 눈을 바라보던 그 푸르디푸른 맑은 영혼을 담은 듯한 눈을 가진 잘생긴 입국심사관의 한마디.


"조사를 거절할 경우 입국 거절과 함께 추방조치가 내려질 것이고, 이 사실은 당신의 기록에 남게 되며 향후 재 입국 시 입국 거절의 사유가 될 수 있다"


이 어려운 영어 문장을 한 번에 해석했다는 것에 혼자 감탄하기도 잠시.

그 이유를 아는데 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이십 년 전 입사시험 준비하던 23살의 내가 한 중학교 교실에서 들었던 토익 시험 듣기 평가의 그 문장이었다. 그 영어를 지금 여기 캐나다 토론토 피어슨 국제공항에서 듣게 되다니. 걱정이나 두려움보다는 신기함이 앞섰다.

 

내키가 180센티미터이니 분명 나를 둘러싸고 있었던 흑인 두 명과 백인 한 명의 경찰들의 키는 190센티미터가 넘는 것이 확실했다. 당당하려 했으나 겁에 질린 나의 눈을 그들은 위에서 내려 보고 있었다. 왜 그런 생각이 먼저 들었을까? "아! 크다". 딱 그 생각만이 나의 머릿속을 스쳤다. 그 얘기는 너는 도망갈 수 없으며 이제 "큰일 났다"라는 무언의 압박으로 느껴지기에 충분한 상황을 만들어 주었다. 테러범 호송하듯 앞뒤로 바짝 인의 장막을 친 3명의 공항 경찰관. 그들의 몸에서는 신혼 여행지 엘리베이터 안에서 훅 하고 풍겨왔던. 비록 유쾌하지는 않았으나 이것이 "외국"이다.라는 것을 확실하게 느낄 수 있었던 십 년 전 발리의 한 호텔의 냄새가 아득한 축억처럼 떠올랐다. 그 당시에는 27살의 - 내 눈에는 가장 아름다웠던 -지금의 아내가 있었고, 눈앞에는 푸르디푸른 발리의 바닷가가 이국적인 풍경을 뽐내듯 펼쳐져 있었으며, 가장 넓은 가슴을 가진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을 것 같은 "잘난 남자"와 그 남자에게 기대에 있는 여리디 여린 "꽃사슴"을 닮은 내 아내가 있었다.

잠시일 뿐이었다. 지금의 상황을 깨닫자 머리부터 발끝까지 저릿저릿 무언가 잘못되고 있다는 불안감과 두려움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가뜩이나 운동부족에 힘이 없던 내 양다리의 걸음은 더디기만 했고 그로 인해서 뒤에 붙어 있던 출입국 관리소 경찰관의 가슴과 나의 등이 간간히 부딪히고 있었다. 그때 나는 또 알 수 있었다. 운동을 많이 했다 가슴이 "단단하다". 즉 도망가다 잡히면 "많이 아플 것이다"

 동양에서 온 키만 크지 밀면 앞으로 고꾸라지기 쉬운 연약한 체력을 가진 한 중년 남자가, 사람들의 부럽지 않아 하는, 아니 안쓰러워하는 눈빛들의 토닥임을 받으며, 뒤에서 가슴으로 밀면 앞으로, 왼쪽에서 힘을 주면 오른쪽으로 오른쪽에서 어깨로 들이 대면 왼쪽으로 방향을 잡아가며 그들의 목적지로 끌려가고 있었다.

"캐나다 이민국 조사실" 그렇게 나는 모셔지고, 아니 끌려가고 있었다. 가본 적이 있는가?

나의 캐나다 이민국 조사실의 풍경은 조사받기 전 무언가라도 아무 말이라도 해야만 할 것 같은 충분한 기운을 토해내고 있었다. 삼십 대 중국인 여성은 서류를 찾느라 그 무서운 이민 조사관 앞에서 손을 덜덜 떨며 수많은 짐과 옷가지들 사이에서 없으면 잡혀가거나 추방당할지도 모르는 이 상황을 모면하고자 얼굴이 사색이 된 채 자신보다 더 큰 이민 가방에 얼굴을 묻고 있었으며 -순간 그녀가 거기로 들어갈 수 도 있다고 생각했다-

한 중년의 인도 남자는 두 손을 모은채 기도하듯 두 마디만 읊조리고 있었다. 그의 표현은 영어울렁증이 있는 대한민국 40대 중년 남자도 충분히 알아들을 수 있는 말로. 캐나다에 오기 전 유튜브에서 미리 공부했던 여행영어 완전정복에 나온 표현이었는데. "커피 한잔 주세요"를 말할 때 꼭 플리즈~를 뒤에 붙여야만 공손하다는 것의 "플리즈"였고. 무엇인가 미안한 경우에는 "아임쏘리"를 딱딱하게 말하지 말고 웃으면서 억양을 위아래로 흔들다 그리고 뒤에 가서는 꼭 억양을 낮춰야 진심이 통한다.라는 강의에 나왔던 "아임 쏘리"였다.

그리고 나와 같은 비행기를 타고 온 60대 중후반으로 보이는 할머니는 이건 안된다. 내가 이걸 가지고 오려고 서천으로 목포로 얼마나 고생하며 다녔는데. 이것만은 안된다라며 악다구니를 쓰고 있었다. 내가 보기에 분명 "굴 젓갈"과 "홍어무침" 그리고 청국장 분말 가루이지만 그들에게는 생소한 도저히 먹을 거라고 이해시키기 힘든것들 이었다. 굴 젓갈을 빼앗으려는 자와 홍어무침을 사수하려는 자의 한치의 물러섬 없는 풍경이 태평양 건너 그리고 캐나다 본토를 또다시 가로질러 도착한 대서양 앞바다 토론토 피어슨 국제공항 이민국 조사실에서 펼쳐지고 있었다.


하지만 당당했다.

굴젓갈도 홍어무침이나 청국장 분말도 없으며 아들은 현지 학교를 다니고 있고 마누라는 학생 동반비자로 정식 입국해 있으며 나는 단 한 달 그들을 만나고 다시 돌아갈 비행기 티켓을 가지고 왔기 때문이다.


어깨를 펴고 이놈의 시키들!이라는 표정으로 앉아 있던 나에게 던져진 심사관의 아주 당연한 질문 몇 개에 내가 무너지는 데는 단 십 초가 걸리지 않았다.


당신 아들이 여기서 공부한다는데 이름이 무엇입니까?

이경민요.

영어 스펠링은요?

 이 lee 경..... 민 min요

가운데 스펠링은요?

gyong? gyeong? kyung? keong?

아니 당신 아들이라면서요? 아들 이름을 몰라요?

네 잘 모릅니다..... 정확히.....

그럼 당신 아들의 여권번호는 어떻게 되나요?

네 잘 모릅니다...... 정확히.....

그럼 당신 아들의 생년월일은 어떻게 되나요?

휴 이건 안다. 2004년 11월 6일요.

그런데 말이다. 갑자기 옥토버와 노벰버와 디셈버가 헷갈리기 시작한다.

11월을 옥토버로 얘기해버린 거다.

진짜 당신의 아들이 캐나다에서 학교를 다니고 있는 게 맞나요?

예. 진짜예요.

학교 이름은요? 정확히 대답해주세요.

프리스티지 스쿨인가 프레스티인가 프레머라고 했는데...

스펠링은요?

p로 시작하는데............


여기서 한번 물어보고 싶다. 진짜 내 잘못인가?

대한민국 아빠들 중 몇 명이나 아들 딸 여권에 기입된 아이의 정확한 영어 스펠링을 알고 있는가?

영어공부 마지막 한 게 20년이 넘었고 쓸 일도 없던 중년의 사내가 옥토버와 노벰버와 디셈버가 한 번에 구분되는가?

자신의 여권 번호는커녕 아이의 여권번호를 외우는 사람이 과연 있는가? 엄마 말고 아빠가 말이다.


난 저날 정말 잘못한 것이 하나도 없었다. 하늘에 맹세코.

그저 보통의 대한민국 아빠. 딱 그 정도여서 충분한 줄 알았다.


어떻게 되었냐고?

평소의 행동으로 보아 그리 믿음직스럽지 못했던 남편을 위해 똑똑한 아내가 미리 관련 사항을 카톡에 보내 놨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았고 기록 확인과 이 띨띨한 사람이 정말  당신 남편 맞냐라는 아내와의 통화 이후 그제야 입국 허가가 떨어졌으나. 자존심이었을까? 머라도 하나 잡으려는 이민관들의 집착으로 23킬로 이민가방 2개에 대한 정밀 압수수색이 펼쳐졌다.

일단 모든 짐을 치약 뚜껑까지 열어서 확인을 시켜줬으며 아들이 그리도 먹고 싶어 했던 아이가 한국서 다니던 학교 앞 문방구에서 파는 "숏다리" 30개와 불량식품류 군것질거리를 몽땅 빼앗길 위기가 오자, 먼저 와있던 그 할머니와 합세하여 굴젓과 홍어무침 그리고 숏다리가 얼마나 한국 사람에게 필요한 것들인지 설명해 줘야 했고 그 결과 사수할 수 있었다. 다만. 스팸이라고 우겼던 햄은 "로쳄"이었고 닭고기 성분이 들어있어서 반입이 금지된다라는 규정을 들이밀며 다 뺏아갔으며 나의 보물 한국산 담배는 역시 1포를 제외한 3포 30개를 압수해갔다. 입국만 시켜달라던 처음과의 마음과 달리 무척이나 억울해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늦어진 두 시간.

걱정하던 아내를 위해 나는 이민국 사무실서 나오며 아내에게 카톡을 보냈다.


여보 아녔어도 빨리 나올 수 있었는데.

아휴 앞에 있던 한국 할머니 한분 입국심사에 걸려서 얼마나 오래 걸렸는지 몰라.

그분 때문에 늦어졌네~

굴젓이랑 홍어 때문에 ~ 아이고 말도 마~청국장 가루도 가져왔더라고 글쎄~

이 서양 나라 오면서 굴젓이 웬 말이냐고~ 쯧쯧쯧


하지만 끝내 아내는 입국 후 더 이상 묻지 않았다. 마치 다 알고 있었던 것처럼.


이렇게 나의 이 단순한 나라의 복잡한 입국이 끝나가고 있었다.


2014년 12월의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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