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오프닝

남자는 "통풍"이지!

30년 내과전문의가 준 맞춤형 특급 처방

by Toronto Jay

이 무슨 개떡(?) 같은 소리란 말인가?


서울 대림동에서 병원을 운영 중인 내과전문의인 형의 한마디.

"가까운 병원에 가서 의사랑 상의해 봐."


이 말을 듣는 순간 "이 병은 심각한 병이 아니다"라는 확신과 함께.

먼가 남들과 다른 특별 처방을 받지 못한 막냇동생의 "서운함"이 동시에 밀려왔다.


하지만 그 어마어마한 발목의 고통은 그 혈육의 무관심을 충분히 탓할 시간조차 주지 않았다..


진짜 아프다. 참. 아프다. 죽을 듯 아프다.

그저 뻐근한 불편함의 아픔이 아니었다.


조금 잔인하게 표현하자면 이렇다.

발목 표피를 손톱으로 긁어 벗기고 난 후 근육을 맨손으로 헤집고 뼈를 들춘 다음,

도루코 면도날로 신경세포 하나하나 칼로 베어내는 듯한 어떤 것.


더하면 더 했지 덜하지 않은 그런 것.


이틀 전 약간 발목을 삔듯한 불편함에서 시작한 나의 "통풍"은 하루가 지나자,

태어나서 처음 느껴보는 고통으로 내게 다가왔다.


걷는다는 것은 상상조차 불가능. 눕는 것도, 앉는 것도, 드는 것도, 내리는 것도 할 수 없다.

그저 엉엉 울고만 싶었다.

하지만 그렇게 울다 다리가 울리면 더 아플 것 같다는 생각에 울 수 도 없는.


밤을 꼬박 새우고 새벽 햇살이 동네어귀 "당산" 산등성이에 그 맑간 대머리 빛남을 치켜드는 그때.


평소엔 그저 형이다. 형이 있다. 형이었다. 형도 있다.로 위안 삼던 형에게 전화를 했다


그래도 30십 년 내과전문의로 수많은 환자를 봐왔던 친형이었기에,

무언가 특별한 처방과 남들은 모르는 "비법"이 있을 거란 기대가 없었다면 거짓일 게다.


형. 동생이 죽을 듯 발목이 아픈데 어쩌지?


이때 바로 친형이라 불리는 이 존재가 나에게 던진 "개떡"같은 첫마디가 이거였다.


"가까운 병원에 가봐..."


동생이지만 나는 지금 도움을 줄 수도 없고, 어찌할 수 도 없다. 딱 이거였다.

그저 이른 아침 동생의 전화가 귀찮다고 느껴지는 그 쌩하고도 쎄~한 목소리.


어찌 보면 형이 있는 서울 대림동과 청주시 문화동이라는 거리적 공간적 괴리는

이 상황을 충분히 납득시킬 수 있는 그 어떤 이해의 범위 안에 있는 듯하였지만.

서운함은 사라지지 않더란 말이다.


더 이상 내가 할 말을 이어가지 못하자. 눈치를 챘는지

내과 전문의께서는 전문가답게 딱 한마디로 위로한다.


"통풍"같은데?


아... 이제 무엇인가 전문의에 처방과 통증 완화 비법을 동생에게 알려주려나 보다 기대했다.


하지만 나를 무너뜨린 두 번째 전문가의 이야기.


"빨리 가봐"


지하실 창고에 오래 두어 물때 푸른 녹이 거북이 등딱지처럼 자리 잡은

돌아가신 아버지의 노인용 지팡이 두 개를 양손에 들고

깨금발 흉내 내고, 걸음걸이 그 울림에 소리치며,

한 발에 한 줌씩 눈물 찔끔 떨구면서,

나는 집 앞 정형외과로 달려? 기어? 튕겨? 가고 있었다.


횡단보도만 건너면 서울 그 30년 "전문의"가 비법처럼 속삭여준 "전문가"가 있는 병원이다.


이때 핏줄이 당긴 듯, 혹은 형이어서 동생을 챙겨야겠다는 생각이 불현듯 떠오른 듯,

아니면 남들은 모르는 의사들만의 특급 비방이 있었는 듯 형에게 전화가 왔다.


하지만 나를 무너뜨린 세 번째 전문가의 이야기.


"맥주, 막걸리, 고기, 내장, 순대, 생선, 먹지 마!" 알겠지?


이 전화를 한 통 받기 위해 신호를 두 번이나 놓쳤던 나는 이제 화딱지가 나기 시작했다.


형이 의사라 내가 받은 특혜는커녕, 위로도 비방도 특별처방도 없이

이른 아침 밤새워 고통 속에 몸부림친 동생에게 이게 할 소리란 말인가?

지칠 대로 지치고 고통 속에 몸부림치느라 하루 종일 아무것도 먹지 못한 동생인데.

분명 "원망스럽다" 이상의 그 무엇이 느껴졌다.


집 앞 정형외과에서 진통제를 넣은 이름 모를 수액을 맞고 나서야 정신을 차린 나는

몸속 염증수치를 낮춰준다는 통풍치료제 "페북소"한 통과

이제는 걸을 만해서 필요 없어진 두 개의 지팡이를 한 손에 들고 병원 문을 나섰다.


초여름 시원한 아침바람에 살만하다.

통증은 사라졌다.

약이 있다.

지팡이도 있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든 생각 한 가지.

"나에겐 핏줄 전문가 형이 필요 없었다."


이쯤 되자 삐딱한 대듦, 엉겨붙음의 반항적 심리상태가 되더란 말이다.


처방받은 약을 내어주며 던지던 약사의 한마디가 떠올랐다.

"꼭 식사하고 드셔야 합니다. 약이 세요!"


빙긋이 입꼬리가 올라간다.

발걸음은 이미 육거리시장 근처 지금은 이름만 남은 "깡시장" 입구 해장국집을 향하고 있었다.

청주에서 가장 유명했고 유명한 이곳.


선지를 기본으로 각종 내장들이 뭉텅이로 들어간 해. 장. 국.


밥 한 공기와 함께 떠오른 그것!

통풍이라 절대 먹지 말라던 막걸리 한 병과 특선지, 특내장이 들어간 특해장국.


기도하듯 이것들을 바라보던 나는 핸드폰 꺼내 사진 하나 찍었다.

그리고 복수하듯 빙긋이 입꼬리 올리며 서울 대림동 "내과 전문의"에게 카톡하나 보냈다.


형! "전문가"만나러 병원에 "빨리" 다녀왔고요!

약 먹을라고 아침 먹고 있어요!

아침 일찍 신경 쓰게 해서 죄송!


나는 이때까지만 해도 형을 무척 사랑했나 보다.

투정 같은 이 한 장의 사진과 카톡을 보고 형이란 이름의 전문의가 호통을 치며

"걱정" 비슷한 것을 해주는 상상을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전문가는 역시 달랐다.

형의 한마디에 자꾸 특내장과 특선지와 생막걸리가 목에 걸려 오더란 말이다.


형의 한마디.


살아있네!!! 동생!!!

남자야. 내 동생 역시 남자야!!!


"남자는 통풍이지!!!"


남자는 통풍이지...

이 한마디를 내과 전문의에게 듣기 위해 나는 지난밤 온몸으로 울었나 보다.


괜찮다 괜찮다 토닥여 본다.

아직도 나에겐 "지팡이 두 개"와 "페북소"가 남아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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