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TS '봄날'과 리버풀 응원가가 만날 때

녹슨 회전목마 위에 쓰인 약속

by Story Pip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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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BTS '봄날' 뮤직비디오를 처음 봤을 때, 녹슨 회전목마 앞에서 정국이 노래하는 장면이 유독 인상 깊었다. 낡은 금속 구조물 위쪽의 희미한 영어 글씨는 그저 아름다운 배경의 일부로만 보였다. 이별과 그리움을 담은 노래에 어울리는 멜랑콜리한 소품 정도로 생각했다. 그 글씨가 무엇인지는 크게 생각하지 못했다. 우리는 늘 그런 식이다. 눈앞에 있는 것들의 깊이를 모른 채 지나친다.


침대에 누워 John Green의 『The Anthropocene Reviewed』를 읽고 있었다. 오후 햇살이 책장 사이로 스며들던 일요일이었다. "You'll Never Walk Alone" 에세이 페이지를 넘기면서, 나는 핸드폰을 집어 들었다. Green이 묘사한 그 노래가 궁금해서였다. 1945년 뮤지컬 『Carousel』에서 태어나 리버풀 FC의 응원가가 된 이야기. 힐스버러 참사 후 슬픔 속에서도 수만 명이 함께 부르며 위로와 연대의 상징이 된 과정. Green의 문장들이 머릿속에서 맴돌고 있을 때, 유튜브 추천 영상에 '봄날' 뮤직비디오가 떠올랐다.


클릭했다.


정국이 회전목마 앞에서 노래하는 장면이 나왔을 때, 시선이 자연스럽게 그 낡은 금속 구조물 위로 향했다. 8년 전에는 단순히 배경으로만 봤던 그곳에, 이제는 선명하게 읽혔다.

"You'll Never Walk Alone"

책을 덮었다. 그리고 다시 뮤직비디오를 처음부터 재생했다.


이별의 아픔을 노래한 한국어 가사 위로, 혼자가 아니라는 영어 약속이 겹쳐져 있었다. 그 노래가 탄생한 회전목마라는 무대 위에서. 뮤지컬 『Carousel』의 무대 장치였던 회전목마가, 수십 년의 시간을 건너 한국 아이돌의 뮤직비디오 세트가 되어 같은 메시지를 전하고 있었던 것이다. 우연일까, 의도였을까? 어쩌면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그 순간 두 개의 시간이, 두 개의 문화가, 두 개의 언어가 하나의 프레임 안에서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Green은 에세이에서 "You'll Never Walk Alone"을 부를 때의 경험을 이렇게 썼다: "수만 명이 함께 부를 때, 그 약속은 현실이 된다." '봄날'을 다시 들으며 생각했다. 이 노래 역시 혼자가 아니라는 약속이다. "보고 싶다"라는 절절한 고백이, "너는 혼자가 아니야"라는 위로가 되는 순간. 회전목마 위의 작은 글씨가 그 연결고리였다.



발견의 기쁨은 묘하다. 알아차리는 순간의 전율과 동시에, 그전까지 놓치고 있었던 시간에 대한 아쉬움이 밀려온다. 8년 동안 그 글씨는 늘 그 자리에 있었는데, 나는 그 의미를 제대로 보지 못했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당신이 이 글을 읽으며 '봄날'의 그 장면을 다시 떠올린다면. 혹은 다음에 그 뮤직비디오를 볼 때 회전목마 위의 글씨에 시선이 머문다면. 그때 이 발견은 더 이상 나만의 것이 아니게 된다. 어쩌면 이것이 우리가 이야기를 나누는 이유일지도 모르겠다. 혼자서는 놓치는 것들을, 함께 보게 되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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