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은 내가 스스로 만들어가는 것이다."
내 나이 스물일곱, 나는 만 1년이 다가오는 시점에 공무원을 퇴사했다.
1년 동안 참 많고 많은 일들이 있었다. 이 세상 힘든 일이 쌔고 쌨다지만, 이 글을 보는 누군가는 나의 이야기를 통해서 용기를 얻길 바란다.
대학을 졸업하고, 공무원 사회에 첫발을 내디뎠다. 사회라는 단어가 주는 설렘과 두려움, 그 둘을 품은 채 시작된 나의 첫 직장은 흔히 말하는 ‘안정적인 삶의 상징’이었다. 어릴 적부터 성실함을 미덕으로 삼아온 나는 좋은 대학에 들어갔고, 졸업하자마자 3~4개월 준비 후에 공무원을 합격했다. 나는 가치관이 확고했고, 인기나 유행을 떠나서 내가 하고 싶은 일, 추구하는 가치관을 쫓아가는 성격이었다. 그래서 공무원을 쫓아갔던 것 같다.
사실 정말 짧게 공부하고 들어갔기 때문에 합격 통보를 받은 날, 이게 진짜 되는구나 하는 기분이었다. 부모님은 자랑스러워하셨고, 친구들도 축하를 아끼지 않았다. ‘이제 안정적인 삶이 시작되겠구나.’라는 생각은 자연스러웠다. 나는 그동안의 노력이 헛되지 않았음을 확인했고, 조금은 안도하며 첫 출근을 준비했다.
모든 사회 초년생들이 겪을 설렘과 두려움. 그것은 나에게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1월, 첫 발령을 받은 날의 기억은 아직도 생생하다. 잘 정돈된 책상, 친절한 팀원들, 어색한 신입의 미소.
나 빼고 모든 것이 어른스럽게 보였다. 공직 생활을 시작하며 느낀 설렘과 초심은 내가 가진 목표와 가치를 떠올리게 했다.
하지만 설렘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공직 생활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달랐다. 첫 몇 달 동안은 정신없이 업무를 배우고,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면서 시간이 지나갔다. 하지만 그 익숙함이 얼마나 쉽게 무너질 수 있는지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우리 팀은 격무 부서로 쉽게 말하면 기피하고자 하는 업무가 많은 팀이다. 원래는 기존 팀장님 제외 3명이서 일을 했는데, 5월이 되던 즈음, 옆자리 사수가 육아휴직에 들어갔다. 즉, 실무자가 2명으로 줄어들었다. (공무원 6급 팀장은 일 안 하고 결재만 합니다.. 열심히 하는 분도 계시지만! 실질적인 업무는 안 해요.)
그렇게 5월 말부터 3명이서 일을 했다. 문제는 팀장님, 나, 무보직 6급.
무보직 6급이라 함은 곧 팀장을 달 사람이란 것이고 공직생활에서 이 사람은 그냥 이제부터 일을 안 하겠다는 것이다. 사실상 팀장 2명을 데리고 혼자서 일을 하니까 업무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이 시기에 나는 나 스스로 어떻게 스트레스를 대처해야 하는지에 대해 고민했었다. 그리고는 깨달았다. 스트레스 완급조절을 하면서 직장 생활하는 것도 능력이구나. 무보직 6급은 일 안 하고 심지어 본인 자리 업무를 나를 주고 갔다. 도망을 가버렸다. 그렇게 나는 7월 하반기부터 육아휴직 들어간 기존의 나의 업무 + 사수 분 업무 절반 + 7급 자리에서 던져진 업무를 맡았다. 그것도 무려 새로운 팀장님과 새로운 차석과 함께 말이다.
즉, 6개월 된 9급 신규가 이 팀에서 제일 팀 업무 경력으로는 선임이 되었고, 모든 업무를 내가 주도해서 알려주어야 했다. 그러다 보니 많은 공직자 분들이 그렇겠지만, 혼자 사업을 10개 넘게 맡게 되었다. 10개 넘는 사업을 맡는 건 크게 어려운 것은 아니다. 사실 사업 공고 띄우고, 대상자 선정하고, 검토 보고하고 교부하고 사업 완료받고, 등등 일련의 절차는 다 정해져 있다. 하지만 공무원의 꽃은 민원이다.
나는 계획을 중요시하는 사람이었다. 미리미리 준비하고, 계획하는 성격(J 성향) 탓인지 즉흥적으로 대응하는 민원 응대는 유난히 어려웠다.
유난히 격무 부서답게 극성 민원인들이 많았다. 한 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여보세요? 네, OO시 OOO입니다."
"길 가다가 맨홀에 소가 빠졌어요. 꺼내주세요!"
순간 내가 잘못 들은 줄 알았다. 2024년 대한민국에서 맨홀에 소가 빠지다니, 믿기 어려웠다. 하지만 상대방의 목소리는 진지했다. 이 일은 그저 시작일 뿐이었다. 또 다른 날, 이런 전화가 걸려왔다.
"여보세요? 네, OO시 OOO입니다."
"거기 OO정육점이죠?"
"아니요, 여기는 지자체입니다."
"아, 그래요? 근데 그 정육점 번호 좀 알려줘요. 거기 제일 잘 나가는 데잖아요."
나는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민원이라는 이름으로 제기된 황당한 요청들이 나의 하루를 흔들곤 했다.
더 심각한 문제는 신상 털기였다. 악성 민원인들은 우리 팀원 이름과 업무 연락처를 유튜브 라이브 방송에 노출시켰다. 옆 부서 팀원은 SNS 계정을 삭제해야 할 정도로 심각한 피해를 겪었다. 국민신문고를 통해 매주 들어오는 민원은 대부분 근거가 부족하거나 악의적으로 꾸며낸 것들이었다. 그들을 응대하며 점점 지쳐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