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를 결심하다.
그렇게 전반기를 힘겹게 적응하고 사람에 치이며 고군분투하던 그때, 7월 정기 인사 발령이 났다.
앞전 편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6급 무보직 주사님은 팀장이 되어 떠났고, 기존 팀장님도 떠나고 새로운 분으로 바뀌었다. 6개월 만에 팀에서 제일 고참이 되었다.
공직 생활 7개월 차, 모든 것이 버겁게 느껴지던 때에 새로 오신 팀장님과 차석 주사님은 내게 작은 위로 같은 존재였다. 두 분 모두 새로 부임했지만, 힘든 내 모습을 보고 배려를 아끼지 않으셨다.
그들의 배려 덕분에 잠시 숨을 돌릴 수 있었지만, 문제는 조직의 구조와 업무량이었다. 직장에서 개인이 아무리 애를 써도 바뀌지 않는 것이 있었다. 특히 6개월 된 신규가 소속 장관님이 직접 방문할 정도로 규모가 큰 사업들을 처리하면서 부서 전체가 더 큰 책임감과 압박을 받았다.
내게 돌아온 것은 늘어나는 업무였다. 시장님 보고 자료부터 내년도 시책 계획까지. 신규였던 내가 주도적으로 처리해야 할 업무는 점점 쌓여갔다. 새로운 팀장님과 차석이 도와주려 했지만, 결국 내가 맡아야 하는 일은 줄어들지 않았다. 이 모든 과정에서 나는 점차 확신했다. ‘이제는 내가 이 길을 내려놓아야 할 때구나.’
면직을 결심하고 있던 어느 날, 부서 회식이 열렸다. 그 해 우리 부서가 맡은 사업이 좋은 성과를 내었고, 이를 축하하기 위한 자리였다. 오랜만에 업무에서 벗어나 팀원들과 웃으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회식 자리의 분위기는 화기애애했고, 나는 잠시나마 스트레스를 잊을 수 있었다.
그러나, 회식이 끝날 무렵, 부서장이 나를 따로 불러냈다. 처음엔 좋은 얘기를 하려는 줄 알았다. 하지만 그의 말은 내 예상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갔다.
"너 지금 하는 일이 힘들고 어려워? 그런 거 신경 쓰지 마. 민원 같은 거 다 무시해. 걔네 신경 쓸 필요 없어. 사회 초년생은 어딜 가든 다 밑바닥부터 시작하는 거야. 내가 너한테 너무 편하게 대해줬나 보다."
나는 그의 말을 가만히 듣고 있었다. 그러나 다음 말이 이어지자 마음속에서 뭔가가 무너지는 느낌이었다.
"여기는 사회야. 돈 받았으면 그 돈보다 더 많이 해야지. 다 똑같이 힘들고 어려운 거야. 다른 사람들이 너 비위 맞추게 하지 마."
그 순간,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반박할 수도 있었지만, 그렇게 하면 내가 그와 똑같아질 것 같았다. 침묵을 택한 이유는 단순했다. 그의 말에 동의해서가 아니라, 그 자리에서의 모든 말이 무의미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돌아오는 길, 마음은 복잡했다. 나는 누구에게 힘들다고 하소연한 적이 없었다. 누구의 비위를 맞추라고 요구한 적도 없었다.
억울했다. 잠이 오지 않을 정도로 화가 났다. ‘일도 제대로 안 하고, 책임도 지지 않는 사람들이 많은데, 왜 이런 말을 내가 들어야 하지?’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내가 정말 무언가를 잘못한 것일까?
그날 밤, 나는 결국 결심했다. 더 이상 이 조직에서 나의 가치를 증명할 이유가 없었다. 회식 바로 다음 날, 나는 면직 의사를 밝혔다.
아버지는 나를 말리셨다. "힘들어도 버텨야 한다. 공무원이라는 자리가 얼마나 안정적인지 너도 알지 않느냐." 말씀은 현실적이었다. 부모로서 안정된 길을 걷기를 바라는 마음이 느껴졌다.
반면, 어머니는 조용히 내 결정을 지지하셨다. "그 돈 받고 다니면서 너 자신을 잃어가는 것보다, 젊을 때 많은 경험을 쌓고 다양한 사람을 만나보는 게 훨씬 나을 거야."
아버지의 현실적 조언도, 어머니의 따뜻한 응원도 모두 옳다고 생각했다. 누구의 말이 더 맞았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나는 단지 내 선택이 무엇인지 고민해야 했다.
그 상황에서 부모님의 의견이 엇갈렸던 것을 떠올리면, 한 가지를 깨닫게 된다. 세상에는 정답이 없다는 것이다. 어떤 길이든 선택은 나의 몫이며, 그 선택이 내 삶의 답이 된다.
참고 살아가든, 또 다른 길을 찾아 떠나든, 결국 중요한 것은 내가 어떤 방향으로 가는지를 스스로 결정하는 것이다. 그리고 나는 그렇게 사직서를 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