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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an Jan 07. 2025

공무원의 인수인계

면직 후에도 연락 오는 후임자

1월 2일, 오전에만 부재중 전화 두 통이 찍혀 있었다. 이후에도 하루에 한 통씩 이어지는 부재중 전화. 

그러다 낯선 이름으로 온 카톡 알림이 떴다. 

‘주사님, 저 후임자 XX입니다. 업무 때문에 연락드렸어요...' 

이럴 줄 알고 나오기 전에 인수인계서를 15페이지 이상 만들고 나왔는데, 벌써 귀찮아졌다.


내가 신입으로 발령받았을 때, 전임자로부터 인수인계서를 받긴 했지만, 그건 말 그대로 형식적인 문서에 불과했다. 전임자는 남은 업무를 제대로 마무리하지 않은 채 나 몰라라 떠났고, 나는 그야말로 ‘짬 맞은’ 상태로 업무를 시작해야 했다.

일주일 동안 일을 배우기는커녕 마감 기한에 맞춰 업무를 끝내기에도 벅찼다. 그야말로 멘붕의 연속이었다.

같은 팀 사수나 다른 팀 주사님께 도움을 요청했지만 돌아온 대답은 차가웠다.
“모르니까 물어보지 마세요.”

7급들에게 물었을 때도 비슷했다. 퉁명스러운 대답 속에서 느껴진 건, 아마도 모른다는 게 부끄러워서 그랬을 거라는 생각이다. 그리고 그 모습이 나의 미래가 될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지금 돌이켜보면 이해는 간다. 공무원 조직은 구조적으로 인수인계가 제대로 이루어질 수 없는 환경이다. 6개월마다 정기인사가 이루어지고, 잘릴 걱정이 없는 철밥통이라는 안정성 때문에 업무의 연속성에 대한 책임감이 희박하다.

하지만 당시 느꼈던 감정은 명확했다.
"이 조직의 인수인계는 정말 지저분하다."


나의 자리에서 일했던 전임자들은 모두 인사이동 시즌에 극도로 예민한 상태로 떠났다. 

울기도 많이 울었고, 극성 민원과 위생 관련 업무에 지쳐있었다고 들었다.

세상엔 당연한 게 없다. 물론 제대로 일 마무리하고 퇴사하는 게 원리원칙이지만 그걸 지키지 않는 사람들도 많다. 특히 공무원은 더 심하다.

깔끔하게 퇴사하는 걸 당연하게 여기지 말고 '감사하게 여기자'라는 마음을 항상 새기는 건 좋다. 당연한 걸 당연하지 않아 하는 사람들이 워낙 많으니.

하지만 최소한 공통적으로 하는 지출이나 사업 정산은 알려줄 수 있지 않은가.. 그것 또한 7급이라 귀찮다고 퉁명스럽게 대답하는 사람이 태반이다. 아마 이번 후임자에게도 그럴 것이다.

웬만하면 연락 안 하고 싶었으나... 어쩔 수 없이 연락을 했다. 

내가 후임자에게 받은 연락은 충분히 그로써는 할 수 있을 만한 고민이었고, 

내가 아무리 인수인계서를 완벽히 적어줬다 해도 모든 상황에 대한 대처법을 썼을 리가 만무하다. (특히나 법에 근거하여 모든 걸 책임져야 하는 공무원 특성상 많이 어렵다. 세상은 법으로만 정의되지 않기에 해결되지 않는 민원이 참 많다.)

하지만 직접 퇴사자가 되어보니...

당연한 걸 물어도 하 귀찮아..라는 마음이 드는 게 어쩔 수가 없고..

첫 직장이고 첫 퇴사이다보니 어디까지 마음이 쓰이는 게 맞는지 아직은 잘 감이 잡히지 않는다.

그럼에도 그 사람이라고 그러고 싶었겠는가. 그러니, 후임자에게 그래도 친절해야 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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