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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인철 Jan 28. 2021

삶은 꿈입니다

 '인생은 너무나 짧으니 꿈을 꾸자, 영혼이여'  

                                   

                              -Pedro Calderón de la Barca-




“야! 강인철! 축구 하자!”

주차장 외벽에 공을 차며 나를 불러대던 친구들의 목소리가 4층 베란다 창문으로 기어코 기어들어온다.

“엄마…”

왼쪽 턱에 바이올린을 괸 채 간절한 눈빛으로 설거지를 하는 엄마를 바라본다.

“안돼!” 엄마는 고개조차 돌리지 않는다. 야속하다.

눈물이 줄줄 흘러 바이올린을 적신다.

“야! 강인철! 나오라고!”

“엄마…”

“안돼!”

물소리, 그릇 부딪히는 소리, 울음소리, 친구들의 고함소리 그리고 깽깽 대는 바이올린 소리가 하나 되어 울린다.


세 살 무렵 나는 바이올린을 시작했다.

나에게 도대체 왜 바이올린을 가르쳤냐 물어보면 내가 하고 싶다고 졸랐단다.

거짓말일 가능성이 99.9%다. 세 살짜리가 간절한 눈빛으로 바이올린을 배우고 싶다고 말했을 리 없다. 하지만 엄마는 줄곧 내가 원했다는 말만 되풀이한다. (엄마는 선택적으로 나의 간절함을 들어주었다.)


고등학교 1학년 봄, 축구공에 왼쪽 검지 손가락을 맞아 흉한 모양으로 꺾여 부러진 후 나는 본격적으로 바이올린을 그만두었다.

부러진 손가락과 관계없이 나는 바이올린 연주에 재능이 없다. 나는 시작부터 알고 있었다. 그리고 엄마도 눈치챘을 것이다.


퇴근하여 집에 돌아온 아빠를 붙잡고 물었다.

“아빠. 내가 아빠 구두 닦아 놓을 테니까 용돈 주시면 안 돼요?”

“그래? 그럼 한 번 닦아봐” 아빠는 내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그 날 저녁 마룻걸레로 아빠의 구두를 빡빡 닦아 놓았다. 다음 날 아침 아빠는 내 방에 들어와 나를 흔들어 깨우고는 지갑에서 만 원짜리 한 장을 꺼내 주셨다.

“아껴 써라”

바로 그날 하굣길 문방구에서 오천 원짜리 조립식 비비탄 콜트 권총을 샀다. 흥분상태로 눈이 시뻘게져 집에 돌아온 나에게 엄마는 심문했다.

“이게 뭐야?”

“이거? 콜트 총인데?”

“총? 니가 총을 무슨 돈으로 샀는데?”

“아빠가 용돈 주셨는데…”

“아빠가?”

“네…”

“얼마나”

“만원이요…”

“만? 원?”

“네”

“이건 얼마 주고 샀는데”

“오천 원이요”

“오? 천? 원?”

“네…”

“당장 가서 바꿔달라 그래”

“엄마…”

“얼른 안가?”

“엄마…”

어쩐지 이상하다 싶었다. 일이 그렇게 잘 풀릴 수가 없지. 상처 받은 영혼의 눈물과 콧물은 뜨거웠다. 조립식 권총 상자를 품에 앉은 채 문방구 앞에 앉아 고개를 떨구고 울었다.

그날 저녁 나는 권총을 뺏겼고 노동의 대가로 받은 임금도 뺏겼고 영혼의 기쁨도 빼앗겨버렸다.


지금으로부터 멀리.     멀리...        멀어진 이야기다.


2019년 12월 31일 오후 세시, 내 동생은 엄마가 됐다.

우리는 대기실에 앉아 산모와 아기가 무사하기를 바라고 기도했다.

분말실 자동문 뒤로 어렴풋이 아기 울음소리가 들렸고 간호사가 나와 아기아빠를 불렀다. 매제는 벌떡 일어나 분말실로 사라졌다. 몇 분후 분만실 문이 다시 열렸고 새끼 원숭이 같은 조카와 매제가 함께 울고 있었다.

아빠 엄마는 할아버지 할머니가 되었다.


요즘 우리 집 단톡 방은 조카 사진과 조카 똥 사진과 조카 동영상으로 핸드폰 저장공간을 늘려가고 있다. 동생과 매제가 회사에 있는 동안 엄마와 아빠가 조카를 돌보며 수시로 상황을 보고한다. 이가 나고, 걷고, 윙크를 하고,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는 조카의 사진과 영상을 보는 나의 얼굴엔 미소가 가득 번진다. 그리고 이내 마음이 울렁거린다.

조카가 웃고 울고 걷고 있는 영상 뒤편에는 엄마의 웃음소리와 아빠의 웃음소리가 함께한다.

영상 속 조카의 가능성은 시간이 흘러 현실이 될 것이다. 또한 엄마 아빠의 가능성도 시간 속에서 현실이 될 것이다. 마음이 한 번 더 울렁인다.

언젠가 나는 조카의 영상 속 엄마와 아빠의 목소리에 귀를 갖다 대고 그들을 마음 깊이 그리워할 것이다.


설거지를 하고 있던 젊은 엄마가, 내 방에 들어와 용돈을 건네주던 젊은 아빠가 되게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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