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담하게 짓누른 담뱃불
사정없이 땅에 끄셔봐도
너덜거리는 끄트머리 서럽게 남아
언제든 다시 불 붙을 수 있다고 했다
마르도록 말라버린 마라토너
더 이상 뛰면 위험하다고
당신은 평생 휠체어 신세 면치 못하리
새 신발로 갈아신고 뛰겠어요
새로운 마음으로
한껏 쏟아내고
덤덤히 들어올린 냉수 한 잔을 들이키면서도
손 덜덜 떨 수밖에 없었고
두 손으로 차가운 유리컵 쥐어봐도
따뜻해지지 않았다
작은 심지가 찻장에 남아 있었지
작은 불을 얼마 남지 않은 초에 붙였을 때
촛농 녹아 떨어졌다
촛농이 녹았다
은은한 온기가 돌기 시작한다
파란 불을 보았다
한 줄기 빛더미에 이끌려
잡으려 해도 잡히지 않지만
까맣게 그을려진 검지
벽에 문지르며
온기가 돌기 시작한 손끝으로
눈에서부터
두 손을 비벼
볼과 얼굴 전체를
다시 두 손 오래 비벼
목을 더듬고
굽은 어깨와
허리를 타고
옹골찬 무릎까지 그을리고 싶다
이제 눈을 뜨십시오
눈을 천천히 뜨십시오
오랜만에 만나는 밝음에
당황 마십시오
천천히 눈을 뜨는 겁니다
이건 비극이 아니다
선하게 빛나던
한지로 둘러싸인 주백색 조명
이렇게 이른 새벽이면
버튼을 누르고
하얀 미사포를
그 위에 가지런히 덮어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