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마귀는 여전히 눈 속을 꿰뚫어 본다
며칠째 아침마다 빠짐없이 안부를 전해왔다
차갑지도 뜨겁지도 않은 검은 눈빛
다만 오래 전부터 이어져 온 자명한 의례대로
단단히 굳어버린 말들을 풀어헤치듯
한순간 맥박 치고 나갔다
몇 차례 대꾸를 했으나
돌아온 것은 하나의 질문
검다는 게 무엇이냐는 물음
옷을 벗어던지라는 말은 닿지 못했고
그저 무채색 공기만 흩어져
흙탕물 같은 날 적셨다
한때는 그 흙탕물이 약수 같다고 믿었다
철철 넘쳐흐르는 검은 마음
누군가가 받아 마셔줄 거라 굳게 믿었고
그러나 텅 빈 하늘 아래에서
가득 채워야 할 것은 되돌아오는 외침뿐
그 외침 끝까지 토해낼 수 있는 존재는 몇이나 될지 알 수 없었다
발에서 비롯된 그림자는
도시의 차가운 표정과 몸짓 아래서만 살아남았다
흔들리고도 일렁이는 그 형상
겹겹이 쌓인 가면을 찢어내고
또 다른 가면 드러내라 말하고 있었다
가장 낮은 곳에 기생한 그 목소리는
때로 진실보다 더 단단했다
그날 운동회의 결승선은
승리의 장소가 아니라
무너짐조차 끝내 포기하지 않는 자리에 가까웠다
일등이 아니었다
하지만 끝내 달려 들어오는 모습
그것이야말로 그림자가 오래도록
말없이 지켜온 진실이었다
붙들고 있던 것들이
검은 까마귀의 질문 앞에서
얼마나 쉽게 흩날릴 수 있는지
검은 옷과 검은 마음과 검은 하늘을 넘어
여전히 발밑에서 길게 이어지는
그 그림자의 진원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