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고장난 라디오

by 윤하루

가끔, 정말 가끔은 말이 먼저 흘러나온다.
입을 움직인 기억도 없고, 누군가에게 들려주려던 말도 아닌데, 불쑥 튀어나온다.
마치 오래된 라디오가 저 혼자 주파수를 건드리며 윙, 하고 잡음을 내듯이.

그럴 땐 나도 모르게 멈칫하게 된다.
방금 그 말, 누가 들었을까?
혹시 밖에 있던 사람이, 창문 너머로 스쳐 지나간 누군가가 들었을까?
하지만 늘 그렇듯, 아무 반응은 없다.
창문은 닫혀 있었고, 사람은 멀찍이 있었고, 세상은 여전히 조용했다.

그런데도 마음은 조용하지 않다.
계속 그 장면이 떠오른다.
내가 무슨 말을 했는지, 그게 어떻게 들렸을지, 들리지 않았다면 왜 그렇게 찝찝한지.
아마, 내 안의 라디오가 아직 꺼지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이 라디오는 말없이도 작동한다.
누가 켠 것도 아닌데 알아서 켜지고, 아무 이유 없이 주파수를 바꾸며 소리를 낸다.
어디서 본 유튜브 영상, 지나가다 들은 말, 예전에 외운 단어들이 문득 튀어나온다.
나는 깜짝 놀라고, 다시 스스로에게 묻는다.
“왜 그게 나왔지?”

그 말에 누가 반응한 적은 없다.
그건 참 다행스러운 일이다.
누구에게 상처를 준 것도 아니고, 의도가 있었던 것도 아니다.
그런데도, 왜 이렇게 불편한 걸까.

마치 고장 난 라디오를 들고 다니는 느낌이다.
언제 소리가 터질지 몰라 늘 신경이 곤두서고, 괜히 입을 다물고 숨을 죽인다.
하지만 라디오는 그런 나를 비웃듯, 더 예민하게 반응한다.

그래서 요즘은 이렇게 생각한다.
‘이 고장은… 어쩌면 완전히 고쳐지지 않을 수도 있겠다.’
그리고 곧바로, 또 하나의 생각이 따라온다.
‘그래도 괜찮을지도 몰라.’

이젠 억지로 끄려 하지 않는다.
그 대신, 소리를 작게 만들고, 혹시 들릴까 조심하면서, 천천히 숨을 고른다.
그리고 오늘 하루를 또 그렇게 넘긴다.

찝찝한 기분도 결국은 지나간다.
조용한 밤, 다시 고요해진 방 안에서
나는 오늘도 라디오의 다이얼을 조심스럽게 만진다.
잡음은 여전히 희미하게 들리지만, 이제는 그 소리에 놀라지 않는다.

그것도 그냥, 나니까.

keyword
작가의 이전글걱정이 내방을 자주방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