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부터 머릿속이 복잡하다.
눈을 떴다는 게 문제였던 것 같다.
자다가도 ‘아 저 말 괜히 했나’ 하는 생각에 눈이 번쩍 떠지고,
일어나자마자 오늘 누굴 마주치게 될까부터 계산한다.
뭘 입지. 이 옷은 너무 튀나?
길에서 누가 나를 쳐다보진 않을까?
아무도 관심 없단 걸 알면서도
계속 신경 쓰는 나 자신이 지긋지긋하다.
현관 앞에 서서 한참을 멈춰선다.
문을 열기 전에도,
이 문 뒤에 누가 서 있을지 상상하고 또 상상한다.
이게 무슨 영화도 아니고,
그냥 나가는 것조차 머릿속 시뮬레이션이 몇 바퀴나 돈다.
‘조심해서 나가자’
그 말이 내겐 습관이 아니라 생존이다.
나는 뭐든 쉽게 결정하지 못한다.
작은 일에도 시간 오래 걸린다.
가게 들어갈까 말까.
지금 말을 꺼내도 될까.
답장을 해야 할까, 하지 말까.
머릿속에서는 이미 수십 개의 경우의 수가 떠오른다.
이 말 하면 저 사람이 어떻게 반응할까.
괜히 말 꺼냈다가 분위기 이상해질까 봐 또 물러서고,
그래놓고는
‘왜 나는 꼭 이렇게 입 다물고 후회하지?’
이런 자책이 다시 시작된다.
조심성이라는 게 그냥 성격 문제인 줄 알았다.
근데 아니다. 이건 내 몸에 배어 있는 방어다.
말 한 마디, 눈빛 하나에도 민감하게 반응하는 내가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선택한 방식.
말하자면, 조심하는 척하면서 버티는 거다.
어떤 사람은 그런 나를 보며 답답하다고 말한다.
“그렇게까지 안 해도 돼.”
“그거 너무 예민한 거 아니야?”
“그냥 해버려. 생각하지 말고.”
입으로는 그게 맞는 말이라는 걸 알겠는데,
몸이 말을 안 듣는다.
마음이 안 움직인다.
나는 매일이 계산이다.
그리고 대부분은 ‘하지 않음’ 쪽으로 선택이 기운다.
하지 말자.
말하지 말자.
가만히 있자.
괜히 건드리지 말자.
그러다 보니 관계는 얇아지고,
기회도 흘러가고,
나는 그 뒤에 서서
‘그래도 다행이다’
스스로에게 그렇게 말한다.
조심성 많은 하루는 피곤하다.
무언가를 한 게 없는데
하루가 끝나면 기가 쭉 빠져 있다.
말도 많이 안 했고,
움직인 것도 별로 없는데
머릿속은 이미 몇 바퀴를 돌고,
가슴은 눌린 채로 하루 종일 있었다.
그래도 나는 이걸 멈출 수 없다.
이게 내가 살아남는 방식이었기 때문에.
누구보다 상처를 많이 받아왔고,
누구보다 말 한 마디에 오래 남는 사람이기에
나는 말하기 전에 생각해야 했고,
움직이기 전에 머릿속으로 열 번은 돌아봐야 했다.
그래서 남들은 모른다.
‘가만히 있는 거’
그게 얼마나 많은 생각 끝에 나온 행동인지.
저녁이 되면 또 반복이다.
오늘은 말 안 해서 다행이었다.
그 말 했으면 분명 이상해졌을 거다.
괜히 생각 많은 사람처럼 보였을 거고,
괜히 나 혼자 마음 졸였을 거다.
근데
또 한편으로는 생각이 든다.
‘말할 걸 그랬나’
‘지금쯤 무슨 오해가 생겼을까’
‘그냥 웃으면서 넘겼으면 될걸’
그래, 후회는 둘 중 뭘 해도 따라오는 거다.
하지만 나는 안다.
내가 말하지 않은 걸 후회하는 게,
말하고 나서 더 복잡해지는 것보단
그나마 덜 고통스럽다는 걸.
그래서 난 오늘도 조심스럽다.
누가 보기엔 소심하고,
지나치게 예민하고,
쓸데없이 신경 쓰는 것처럼 보여도
그게 나다.
나한텐
그 조심스러움이 무기고, 방패고,
어쩌면 유일한 생존법이었다.
내가 이렇게까지 생각하지 않으면
나는 진작 부서졌을지 모른다.
그러니까 오늘도 이만큼 조심하면서
하루를 버텨낸 거다.
아무 일 없었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그냥 지나간 하루였지만
그래도 나는 잘 살아냈다고 믿는다.
조심성 많은 사람의 하루는,
그 자체로 충분히 치열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