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프랑스 소설가 안 베르작가님의 수필이다. 작가님이 루게릭병 진단을 받고서 존엄사 하기까지의 과정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책을 보면 비교적 담담한 어투이지만, 곳곳에 감정적으로 격해지거나 혼란스러운 부분도 꽤 있다. 그만큼 죽음이라는 것이 준비하고 각오한다고 해서 그 무게감이 가볍진 않구나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의 성격상 작품을 해석하고 그런다기보다 내가 이 책을 읽고 어떤 점을 생각하고 느꼈는지에 초점을 맞춰서 리뷰를 진행해보고자 한다.
1. 나는 왜 죽음에 대해서 깊이 고찰한 적이 없었을까?
평소 죽음에 대해서 생각해 본 적이 많이 없었다. 이 책을 읽고 안 베르작가님의 얘기를 읽고서, "왜 나는 평소에 죽음에 대해서 생각하지 않았을까?"하고 생각해 보았다. 일단 내가 작가님처럼 생명을 위협할 정도의 건강이 안 좋았던 적도 없다. 또 한국의 특성상 죽음을 생각하기 힘든 요인이 있다고 생각한다. 내가 느끼기에 한국은 죽음과 특히나 더 거리를 두려고 하는 환경이다. 예를 들어서 요즘은 예전보다 덜 그런 것 같기는 한데 아파트 4층이 F로 표시되어 있다거나, 공동묘지와 같은 곳들은 최대한 주거지와 떨어져 있다. 외국을 보면 일상적으로 활용하는 공원에도 공동묘지가 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말이다. 그리고 막상 죽음에 대해서 생각해 보니 솔직히 두려웠다. 특히 나 스스로 더 이상 자아를 인지할 수 없다는 부분이.. 두려웠다. 논리적으로 보면 살아가는 게 곧 죽어가는 것과 똑같은데... 아무튼 미래에 있을 일에 대해서 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마주할 기회가 됐던 것 같아 나쁘지 않은 경험이었다.
2. 만약 나라면 어떻게 했을까?
두 번째 주제의 제목과 같이 생각했을 때, 위에 언급한 것처럼 죽음에 대해서 두렵기도 했고 다른 케이스가 더 있을 거 같아 찾아보고 판단해보고자 했다. 물론 잠정적이지만 말이다.(유시민 작가님의 어떻게 살 것인가에 있었던 케이스를 소개해보자 한다.)
대한민국에서 법원이 인정한 첫 존엄사 사례는 故김옥경 할머님이다. 2008년 당시 연세대학교 세브란스 병원에서 김옥경 할머니는 치료를 받다가 의식을 잃었다. 이후 병원에서는 의학적 사망을 막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했다. 심장이 뛰지 않으면 심폐소생로 다시 뛰게 했고, 인공호흡기를 대고 혈관으로 영양을 공급하는 등 이후 할머니의 가족들은 연명치료 중단을 요구했고, 병원 측은 거부했으나 법적 공방 끝에 법원은 유족의 손을 들어주었다. 인공호흡기를 제거하고 시간이 흐른 뒤 2010년 1월경 김옥경 할머님은 돌아가셨다.
스페인에 라몬 삼페드로 나는 남자가 있었다. 위 케이스와 달리 라몬 삼페드로는 여자친구가 구해준 다량의 수면제를 먹고 돌아가셨다. 그는 25살 때 여자친구에게 약혼할지 말지 여부를 고민하다가, 배에서 떨어졌고 목숨은 건졌지만 크게 다치고 전신이 마비된 상태로 30년 동안 똑같은 생활만 해야 했다.
몇 가지 사례를 찾아보고 내 나름의 존엄사에 대한 나의 잠정적 결론은 그럴 수 있다. 내가 만약 루게릭병이나 다른 현대 의학으로 해결할 수 없는 상황이 온다면 나도 그런 선택을 할 거 같다고 생각했다. 삶은 존엄하다 굳이 종교적으로 해석하지 않아도 직관적으로 충분히 느껴진다. 하지만 죽음 역시 존엄해야 한다. 우리는 삶아가는 것과 죽어가는 것과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 그렇기에 삶이 중요한 만큼 죽음도 중요하다. 내가 더 이상 내가 원하는 삶을 살아갈 수 없는 환경에 처했을 때,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내 삶을 끝낼 자유도 존중받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그 방식이 타인에게 트라우마를 안겨줄 방식이라면 생각을 달리하지만 말이다.
평소에 쉽게 생각할 수 없었던 만큼 스스로를 돌아볼 계기가 됐던 것 같다. 본인의 삶과 죽음에 대해서 느겼던 바를 생생하게 서술해준 작가님께 감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