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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꼬마승무원 Nov 22. 2024

날 너무 어려워하지 마! 너 안 잡아먹어

비행일기_미국 뉴욕

최근에 다녀온 미국 뉴욕 비행. 해당 비행을 떠나기 전 긴 비행 시간부터해서 잘 견뎌낼 수 있을지 걱정이 많았지만, 시간이 지나 되돌아보니 훌쩍 지나가버린 비행이었다. 약 3일의 시간 동안 좋은 크루들과 함께 구경도 잘했다. 이렇게 긴 장거리의 비행 동안 승무원들도 돌아가면서 쉬고 잠을 잔다. 자면서 돈을 버는 거니 참 어찌 보면 좋은 직업이라고도 볼 수 있겠다. 감사하게도 모든 크루들과 상사들이 매우 좋은 사람들이라서 편하게 일할 수 있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어딜 가나 함께 일하는 사람들이 매우 중요한 것 같다. 그리고 이 진가는 승무원이라는 직업에서는 더더욱 중요하고 말이다. 

 두 번의 서비스와 돌아가면서 쉬는 시간을 제외한 긴 남는 시간을 함께 남은 크루들과 보내야 한다. 이러한 긴 시간의 mingling time (mingle 하다 : 어울리다)을 통해서 크루들은 서로를 직장 동료를 넘어 그 사람 자체에 대해서 알게 된다. 한국의 어디 출신인지, 어떤 걸 전공했는지, 가족 구성원은 어떻게 되는지, 남자친구가 있는지, 결혼은 어떤 지, 화장품은 뭐 쓰는지, 지금까지 만난 크루들 중에 미친놈은 누구였는지 등등을 서로 공유한다. 

 이러한 대화를 같은 랭크과 비슷한 사 번의 크루들과 나누는 건 전혀 어렵지 않다. 비슷한 년도로 비행 경험을 갖고 있는 지라 서로가 공유하고 느끼는 것들이 비슷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비슷한 사번만큼 나이도 비슷한 경우가 많다.  문제는 바로 상사들과 함께 남아있는 경우이다. 상사들한테는 도대체 무슨 말을 어떻게 시작해야 하는지 참 조심스러운 경우가 많다. 일 얘기를 해야 할까? 일 얘기하는 것도 좋지만 너무 지루하다. 이미 같이 일을 하는데 또 일 얘기라니... 지루하잖아. 그렇다면... 한국 하면 역시 화장품이니까 화장품 얘기를 해야 할까? 나만의 올리브영 추천템을 연신 얘기해야 할까나? 아니면 보톡스 클리닉에 대해서 말해줘야 하나. 매 비행마다 겪는 한국인 승무원의 진부한 대화 레퍼토리 주제이지만, 부사무장이 여자인지라 결국 피부부터 화장품 추천으로 대화를 시작했던 나였다. 그리고 다행히 한국을 너무 사랑했던 그녀인지라 대화는 즐겁게 이어져나갔다. 

 그렇게 3일의 뉴욕 레이오버가 끝이 나고, 다시 본국으로 되돌아오는 여정. 드디어 캡틴이 착륙 준비를 하라며 조용하던 기내를 떠들썩하게 만드는 방송을 하셨다. 모든 착륙 준비를 끝내고 승무원들이 각자 자리에 앉아서 벨트를 매고 있는 사이에 함께 앉게 된 부사무장이 내게 말을 걸었다.

"혹시 *** 어때? 너희 3일 내내 함께 뉴욕 구경하면서 말은 많이 했니?"

"네! 정말 많이 했는데요? 제가 ***이랑 제일 많이 대화했어요. 엄청 웃었기도 했고. 무슨 일 있었어요?"

"아니, 오늘 함께 처음으로 일하면서 보니까 말도 잘 안 하더라고. 혹시 내가 많이 어렵니?" 무서워서 그런가?"

"음... 뭐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저도 상사들한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생각이 많은 경우가 많긴 하죠. 아무래도 상사인 지라 어렵긴 해요. 아마 그 친구도 그래서 말이 없었던 것 아닐까요?"

"뭐가 무서워! 우리도 사람인데. 그저 경험과 나이가 많고의 차이인 걸. 넓게 보면 우리도 같은 직장 동료인데 뭘. 난 젊은 친구들이랑 친해지고 싶다고. 요즘 핫한 남자 크루가 있는지, 여자 크루가 있는지, 이상한 사람들은 없는지, 좋은 사람들은 누가 있는지 말이야! 물론 간혹 가다가 이상한 상사들이 있어서 다가가기 어려운 것 잘 알고 있지. 근데 그런 사람들은 소수이고 나머지들은 다 나같이 젊은 세대랑 친해지고 싶은 사람들이라고. 물론 내가 처음 브리핑룸에서는 무서워 보였겠지만, 봐봐! 너희 안 잡아먹어. 하하하. 그 친구가 워낙 말이 없어서 궁금했어."

 함께 나가서 놀 땐 그 누구보다도 말도 많고 서로 깔깔거리면서 잘 웃던 친구였다. 아마 돌아올 때 함께 논 크루들과 일을 하지 않아서 그런 지 모르겠다만, 상사들 앞에서는 말도 없고 조용했나 보다. 그런 그녀를 보면서 상사들은 꽤나 실망했던 것 같다. 꽤나 많은 쉬는 시간 동안 부사무장은 그녀에 대해서 알고 싶어 하고 대화를 나누고 싶어 했지만, 워낙 그 친구가 찌뿌듯한 표정에다가 살갑지도 않으니 참 무안했던 것 같았다. 

 시간이 흘러 그녀가 해준 말들을 되돌아보며 일기를 쓰니, 이전에 한창 면접 준비하던 때 선생님들께서 해주셨던 말들이 문득 떠올랐다. 면접관으로 참여한 저 사람들도 나와 함께 일해야 할 미래의 동료라고. 그렇기에 면접관이 뽑은 사람들은 결국 면접관이 함께 일하고 싶고, 추후에 비행에서 만났을 때 즐겁고 재밌게 일할 수 있겠다 싶은 사람 냄새나는 호감 가는 사람일 확률이 높다고 말이다. 그때 당시에는 그냥 그렇구나 했지만, 현직인 지금은 매우 고개를 끄덕이면서 맞다고 맞장구를 치게 되는 말이다. 

 가까이에서 세심하게 따지고 본다면, 상사와 나로 직급을 나눌 수 있겠다. 하지만 멀리서 바라본다면 결국 우리는 그저 이 회사에서 월급 받고 함께 비행하고 일하는 회사의 도비들일뿐이다. 서비스가 끝나면 남는 시간을 서로의 얼굴들을 좋든 싫든 마주치면서 보내야 하는 시간이 많은 승무원인데, 별로인 사람들이랑 함께 일하고 싶을 리가 있을까? 전혀 아니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그 시간 속에서 먼저 다가가고 웃으면서 편하게 서로를 대하는 그런 동료, 그런 사람! 이런 면이 어쩌면 승무원의 중요한 자질 중에 하나일지 모르겠다.

 항상 비행 전에 브리핑 룸에서 나오는 단어가 바로 "커뮤니케이션"이다. 겉으로는 단순히 상사에게 보고하는 일들과 동료들끼리 서로 승객 및 일에 관한 정보를 공유하는 것이겠다. 하지만 깊고 넓게 본다면, 그 의미를 넘어선 사람 냄새가 나는 친근한 커뮤니케이션이 승무원에게 있어서 제일 중요한 부분이라 생각한다. 

 나 역시 상사에게 말을 거는 건 어렵긴 하다. 어떤 말로 대화를 해야 할지 복잡하기 때문이다. 시간이 지나면 좀 더 나아질까? 글쎄... 직급체계가 명확한 사회에서 살다가 온 한국사람인지라 잘 모르겠다. 하지만 노력해야겠지. 암, 그렇고 말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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