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 직업일기
"승무원들 바람 많이 피지 않아요? 해외에 갈 때마다 각 나라별로 남자친구 있다고 들었는데..."
저런 말을 승무원 준비하면서 들었고, 승무원이 되어서도 타인으로부터 종종 들었다. 오래전에 5살 이상 차이가 나는 연상분이랑 소개팅에서 대화를 나눈 적이 있었는데, 그분이 저렇게 질문했었다. 실제로 그분의 전 여자친구가 국내 항공사 승무원이었고, 6년 연애 후 헤어진 이유는 여자분의 바람 때문이었다. 믿는 도끼에 발등이 찍혔는데 하필이면 승무원인 그 여자의 직업 때문에 선입견이 생긴 그였다. 그러고 소개팅으로 만난 여자가 하필이면 직업이 또 승무원이라니... 그에게는 참 생각이 많아졌겠다. 이에 대해 나는 그 오빠에게 아래와 같이 말했다.
"그건 개인의 인성과 가치관에 따라 다르죠. 바람피울 놈들은 승무원이 굳이 아니더라도 핍니다. 더럽게 노는 애들은 더럽게 놀죠. 그 정도의 인성일 뿐이니까요. 모든 승무원들이 바람을 피우지는 않죠. 그 여자분이 못된 거라 생각해요. 저는 바람피우고 싶어도 못 피겠던데요. 해외 나가면 구경하고 돌아다니기 바쁘고 시차 적응하느라 잠자기 바빠서요."
세상에는 많은 일반화의 오류가 존재한다. 나는 승무원에 대한 일반화의 오류로 '바람을 많이 피고 또 쉽게 피는 직업'이 있다는 것을 잘 안다. 실제로 크루들이랑 함께 해외 레이오버에서 밥도 먹고, 여기저기를 구경하면서 이 직업에 대해 많은 것들을 함께 얘기하게 된다. 승무원의 장점과 단점, 언제까지 이 생활을 할 것인지, 사람들의 편견은 어떤지에 대해서 말이다. 그러던 중에 몇몇의 크루가 오늘의 주제와 비슷한 내용을 얘기했던 것이 기억이 난다. 공통적으로 크루들이 말하는 것은 다음과 같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승무원이라는 직업이 굉장히 자유로우니까 이 직업을 택한 그 사람도 굉장히 자유롭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 내 주변에서는 그렇더라고. 근데 나는 그 누구보다도 굉장히 내향적이고 보수적이거든. 사람 바이 사람이지. 바람피운다는 것도 워낙 우리의 일하는 환경이 남녀가 만나기가 쉽고 또 승무원이라는 직업은 기본적으로 외적으로 호감 가는 사람들만이 모인 곳이잖아. 더군다나 우리 일하는 갤리는 또 어때? 워낙 좁아서 지나갈 때마다 어쩔 수 없이 터치가 되는 경우고 많고 말이야. 근데 우린 일하러 온 사람들이고 비행하고 해외에 나가면 너무 힘들어서 먹고 자고 그 나라를 구경하느라 바쁜데 바람피울 시간이 어디 있겠어? 바람피울 놈은 승무원이 아니더라도 피게 되어 있어."
정말 그렇다. 해외에 나가면, 특히 그 나라가 첫 방문이라면 크루들이랑 함께 시간 맞춰서 밥 먹고 돌아다니기에도 시간은 짧다. 일이 끝나고 푹 쉬면서 나만의 시간을 갖는 것도 아까워 죽겠는데, 다른 남자들을 만나고 자러 다닌다니. 나에게는 정말 꿈같은 이야기다. 이 모든 것은 사람 바이 사람인지라, 바람피울 크루들은 잘 피고 다닌다. 그만큼 에너지가 넘치나 보다. 부럽다. 한 편으로는 그럴 에너지를 차라리 일하는 동안 승무원들과 승객들에게 더 쏟아부었다면 좋을 텐데라는 아주 고지식한 생각을 갖고 있는 나이다.
실제로 많은 크루들은 본인의 여자친구가 혹은 남자친구가 크루라는 것을 극도로 싫어해서 일부러 기피하는 경우도 많다. 이런 환경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더 행동거지를 조심히 하고, 본인의 애인에게 해외에 나갈수록 더 잘하는 경우도 많다. 유명한 빵집이나 음식점, 인형가게를 가면 본인들 애인을 위해, 아이들을 위해 선물을 사 가는 경우도 많다. 일부러 페이스톡을 켜서 실시간 영상통화를 하면서 이동하는 내내 얼굴을 비추는 사랑꾼도 많고, 지금 누구랑 함께 있다면서 안심시키려고 다른 크루들이랑 함께 있는 모습을 사진으로 찍어서 보여주기도 한다. 현재 어디에 있고, 무얼 하는 중이라면서 실시간 생중계를 하는 모습을 정말 많이 본다.
가끔 슬프다. 그 사람의 직업이 마치 그 사람의 모든 것을 대변하는 냥 보이고 비친다는 것이 가끔은 나를 슬프게 한다. 승무원이라는 직업은 직업일 뿐, 진정 나라는 사람은 절대 그렇지 않은데 말이다. 어딜 가나 사람 바이 사람이고 케이스 바이 케이스이다. 직업이 자유롭다고 해서 그 직업을 가진 나라는 사람마저 생각과 행동이 자유롭지는 않다. 미꾸라지 한 마리가 깨끗한 물을 다 흙탕물로 버려놓듯이, 몇 명 사람들의 잘못되고 인성이 덜 된 행동들이 전체로 보이는 것에 참 안타깝기도 하다. 그렇기에 언제나 행동거지며 생각이며 바르게 앞만 보고 달려가기를 나 스스로에게 다짐을 하며 살아가는 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