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 비행일기_프랑스 파리
"꼬마 승무원! 나는 이제 더 이상 일하고 싶어도 못 해"
"어? 왜요?"
"올해가 바로 내 은퇴 연도이거든.
이번 달은 바로 내 인생 마지막 비행 인생들로 채워질 거고,
내 비행 인생은 이렇게 막을 내릴 거란다."
이번 프랑스 파리 비행에서, 파리에서 본국으로 돌아오는 섹터에서 함께 일하게 된 선임 승무원은 서비스가 끝난 디, 넌지시 그의 은퇴 소식을 말해주었다. 딱 보아도 나이가 많은 그분은 큰아빠 뻘이었다. 사실 그는 나를 기억하지 못했지만, 나는 그를 이미 알고 있었다. 브리핑룸에서 그를 만나기 전, 이번 프랑스 파리 비행을 함께 할 크루들의 이름과 사진을 확인한 순간 낯이 익던 그의 모습. 그러고 빠르게 기억을 되짚어보니 그는 내가 예전 한창 비행 아기 시절에 함께 비행한 적 있던 크루였다. 시간이 너무 많이 흘러 당시에 그가 어땠나 기억을 되짚어 보기엔 무리였지만, 크루들은 안다. 시간이 흘러 내 기억 속에 딱히 크게 남는 크루가 아니라면 일했을 당시에 무리 없이 괜찮았던 크루라는 것을 말이다. 오랜만에 그를 만날 생각을 하니 그 역시 나를 기억할까? 잠시나마 설레는 맘을 가졌었다.
그가 나를 기억하지 못해 조금은 슬펐다. 하지만 그건 당연하다. 거의 1여 년 만에 그를 만나는 것이며 그 사이에 수많은 크루들을 만났을 그와 나이다. 더군다나 나이가 많은 큰아빠 뻘이기에 아무래도 젊은 나에 비해서 기억력이 조금... 크흐흠.
아무튼, 그와 일을 하면서 당시에 그의 일 스타일과 모습들이 간혹 비눗방울처럼 퐁퐁 떠올랐다. 당시에도 정말 좋은 사람이었는데 여전히 그는 좋은 사람이었다. 정말 나이도 큰아빠처럼 많았는데 그의 관대함과 크루들을 편안하게 해주는 대인배의 면모이자 승객의 요청을 해결해야 하는 경우에는, 짬에서 나오는 바이브로 나에게 가르침과 더불어 해결법을 바로 말해주셨다. 정말 닮고 싶고 배울 점이 많다고 생각했다. 내가 이 회사에서 계속 일하게 될지, 다른 회사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나이를 먹어서도 회사의 일원으로 일하게 된다면 그의 태도와 마인드로 후배들을 대하고, 일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어주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의 재치 역시 나의 긴장을 없애주는 데에 한 몫해주었다.
"안녕! 네 이름 어떻게 발음하지? 와우! 정말 아름다운 이름이구만?!"
이렇게 웃음을 자아내는 칭찬을 해주셨다. 그러더니 계속 얼굴을 마주 볼 때마다 장난치시느라 다시 내게 "안녕! 네 이름 어떻게 발음하더라? 맞다. 얼굴만큼 아주 이름도 이쁘군요, 미스 코리아!"라고 말하셨다. 타인의 기분을 상하게 만들지 않는 기분 좋으면서도 재밌는 장난이었다.
그런 그가 이 글의 시작을 알리는 대화글처럼 내게 은퇴를 말했다. 더 이상 일하고 싶어도 일하지 못하는 것이 아쉽기는 하지만, 그럼에도 후회는 없다고 말했다. 그동안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함께 비행하고 그 사이에 울고 웃고 했을 그가 이제는 끝을 맞이한다니 옆에서 보는 나도 대단하고 참 감회가 새롭겠다 싶은데 본인은 오죽하랴 싶었다. 그러면서 그는 내게 말했다.
"미스 코리아! 네가 이곳에 언제까지 있을지 나는 잘 몰라. 너는 외국인이니까 자국민인 우리랑은 다르겠지. 하지만, 네가 결정해서 이곳에 온 이상 많이 배우고 많이 울고 웃고 했으면 좋겠다. 다만, 나처럼 이렇게 오래 일하지 않을 생각이라면 절대 승무원의 비행인생에 안주하고 살지 말으렴. 내 말이 무슨 말인지 알지? 달콤한 승무원의 특별한 삶에 너무 녹아들어서 너의 발전을 잊지 말라는 뜻이란다. 넌 똑똑하고 좋은 사람이니까 내가 굳이 이렇게 조언하지 않아도 잘할 거라고 생각해. 아주 행복하고 스무스한 비행 중에 하나로 오늘은 기억될 거란다. 오늘 이 비행 너무너무 고맙구나."
그의 말을 듣자마자 그가 나에게 무슨 말을 하고 싶은 지 바로 나는 알았다. 흔히 승무원들 사이에서는 "비행에 중독되지 않도록"이라는 말이 존재한다. 비행은 참 신기하다. 분명 가기 전에는 죽을 것처럼 가기 싫고 귀찮지만, 막상 비행을 떠나 다른 나라에 도착한 순간 참 재미나고 이 비행과 이 삶이 나쁘지만은 않다는 생각을 한다. 몸러은 죽을 것처럼 피곤하고 시차와 싸워야 하는 나 자신을 보면 안쓰럽지만, 이 힘듦을 이겨내고 해외에서 즐기는 일상과 음식들은 그 고생들을 다 잊게 만들 만큼 중독적이고 도파민을 싹 돌게 만든다. 해외에 머무는 동안 나오는 meal allowance (식사 금액) 월급이며 놀면서 버는 돈들도 무시 못한다. 이런 중독적인 비행의 삶에 맞춰 비행을 내 삶의 회로의 절반 이상으로 포커스를 두고 살아간다면, 벌써 1년은 금방 지나가있다. 나도 벌써 되돌아보니 벌써 2024년의 마지막 달이는구나 싶은 생각으로 최근에 섬뜩했다. 확실히 비행을 시작한 뒤로 한국에서 다른 일을 했을 때보다는 하루하루 시간이 정말 무섭도록 지나간다. 이런 삶을 살다 보니 승무원들 사이에서는 위와 같은 말이 나온 것이고, 나도 쉬는 날이면 저 말을 나 스스로에게 되새긴다.
비행에 중독되지 않도록. 이 말은 곧 지금의 삶에 너무 녹아들어서 될 대로 되라는 식으로 현실에 안주하지 말라는 뜻이다. 승무원이 아니더라도, 우리는 현재의 삶이 만족스럽다면 이런 삶도 나쁘지 않다며 다른 것들에 눈을 돌리는 것이 쉽지가 않다. 물론 현재의 삶이 본인 만족도의 100%를 넘어선다면 그걸 무어라 탓할 사람이 있을까? 오히려 이상하다고 본다. 하지만, 본인 스스로가 더 발전하고 싶고, 더 넓은 시야로 미래를 생각한다면 나는 현실에 안주하기보다는 좀 더 발전하고 다른 길로도 생각의 회로를 넓이는 것도 좋다고 생각한다.
아마 큰아빠 뻘인 크루가 내게 해준 조언은 곧 본인이 현실에 안주해서 이 삶을 만끽하고 지내다 보니, 개인적으로 좀 더 발전하고 다른 삶을 살 수 있는 좀 더 넓은 견문과 시야를 틀 수 있는 기회를 놓친 아쉬움에서 나온 것일지도 모르겠다. 현실에 만족하는 삶과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미래를 바라보고 계속 달려 나가는 삶. 어떤 삶이 더 매력적일까? 글쎄... 사람마다 생각이 다르니 내가 그걸 뭐라고 정할 수가 있을까 싶다. 하지만 이것 하나만은 내겐 분명하다.
나는 비행에 중독되지 않도록 또 다른 나의 성장을 위해 더 멀리 날아갈 사람이라는 걸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