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비행일기
오늘은 원래 인도 뭄바이로 떠나는 비행 일정이 있던 날이다. 허나 어제 몸 상태가 이상한 것을 발견하고 병원에 갔다가 왔고, 결국 병가를 내고 집에서 쉬는 중이다. 그렇게 심하게 아픈 건 아니었지만 나는 알았다. 지금까지 내 비행 경험들을 되돌아봤을 때, 나는 항상 인도 비행만 갔다오면 심한 감기에 걸리거나 몸살을 앓아서 심하게 아팠었다. 결국 이 몸 상태로 갔다가 더 아파지고 다른 곳에 병이 나겠다는 판단이 들어 병가를 냈다. 현재 아픈 증상은... 오른쪽 턱 밑이 부었다. 가만히 있어도 가끔 욱씬거리고 시큰거리는 느낌이 났는데, 오른쪽 귀 안에도 욱씬거리면서 통증이 있는 상태이다. 더군다나 오른쪽 코 안도 다 헐어서 진물이 계속 나는 상태. 한번도 이런 증상을 살면서 겪어 본 적이 없어서 병원에 다녀왔는데, 턱 때문에 지금 오른쪽으로만 아픈 증상이 난 거라면서 약을 지어주셨다. 자세히보니, 침샘이 부은 것 같았다. 어쩌다가 갑자기 이리 병이 들었는가 생각해보니... 아프기 전에 다녀온 비행으로 인해 나의 뇌는 '괜찮다'고 정신승리를 했지만 내 몸은 아니었다보다. 그렇게 병가를 내고 이미 인도 비행 가겠다면서 싸둔 짐들을 다시 꺼내 하나하나 줍줍하면서 정리했다.
'승무원으로서 가장 극혐하고 싫어하는 비행 있으세요?' 라고 묻는다면, 개인마다 딥하게 들어가면 다르겠다만 아묻따 대부분은 "인도 비행이요.."라고 할 것이다. 중동항공사나 노선이 다양한 회사라면 "인.스.방.파요. (인도, 스리랑카, 방글라데시, 파키스탄)" 이라고 할 것이다. 이외에도 개인마다 싫어하는 비행은 각자 다르다. 나? 나도 위의 비행들은 별로.. 선호하지 않는다. 그리고 4섹터 턴어라운드를 싫어하고, 하루를 다 버려야하는 긴 비행의 턴어라운드를 극혐한다. 차라리 다른 나라에서 지내다오는 레이오버를 더 선호한다. 아마 주변에 대부분의 승무원들한테 물어보면 왠만하면 다 나처럼 얘기할 것이다. 긴 비행의 턴어라운드 극혐..4섹터 턴어라운드 극혐...
그리고 내가 직전에 다녀 온 비행이 하루 레이오버였지만, 4섹터였다. 새롭게 최근에 생긴 이 패턴을 위해, 해당 국가에 하루 지내러가기 위해 떠나는 비행 여정이 너무나도 극혐에다가 힘들었다. 이 비행은 단연코 우리 회사의 모든 승무원들이 다들 싫어하는 비행이다. 하루에 비행기를 타고 내리고도 힘든데, 그걸 하루에 4번을 해야하니 얼마나 힘들까. 그것도 중간에 비행기 기종을 바꿔서 게이트도 이동했단다. ^^ 하하.
이 비행을 떠나기 전에 해당 패턴의 비행은 또 처음인지라 다른 선배들이나 크루들에게 넌지시 보여주면서 물어봤다. 혹시 이 비행을 다녀왔는지, 아는 게 있냐면서 말이다. 그러자 몇 명의 크루들은 이 비행을 했었는데 너무너무 힘들었었다면서 제발 병가를 내라면서 내게 조언해주었다. 다른 승무원들과 비행 스케줄을 바꾸고 싶어도 갖고 싶다는 크루는 정말 손에 꼽을 정도. '내가 싫으면 남들도 싫다.' 라는 세상의 진리와 '분명 이 비행에 병가를 내면, 나중에 반드시 다시 해당 비행을 내게 던져 줄 회사의 카르마'가 머릿 속을 계속 스쳐지나가서 그대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리고 그 나라에 레이오버는 처음인지라 마음을 긍정적으로 먹고 갔건만, 젠장. 정신승리한 뇌와는 다르게 몸은 차라리 죽..여..줘..라고 속으로 소리쳤나보더라.
세상 웃겼던 사무장님도 이 비행은 처음이라고 하셨고, 대부분의 크루들이 이 비행은 처음이었다. 그리고 프로베이션 기간의 막내들이 많았는데, 나는 단번에 왜 그런 지 파악이 되었다. 분명 사번이 높은 사람들에게 주었다가는 비행을 가기 싫어서 병가를 계속 내고 크루리스트들이 바뀌어서 극악의 상황에서는 비행이 아예 운영이 제대로 안되었을 것이었다. 그러니 사번이 낮은 막내들에게 이 비행을 준 것이지.
피곤한 몸을 이끌고 레이오버에서는 정말 재미나게 잘 돌아다니기는 했다. 값싼 물가 덕분에 크루들과 다 같이 아침을 먹고, 네일도 하고, 전신 스크럽 및 스팀 마사지와 더불어서 우유 거품 목욕까지 알차게 하고 왔다. 온 몸을 녹이는 향기롭고 편안한 마사지 덕분에 중간에 나도 모르게 자서 마사지사가 "익스큐즈미...마담? "이라면서 나를 깨워주는 민망한 상황이 있었지만...크흠.
이렇게 재미나게 잘 보냈어도 나중에 해당 비행을 다시 받는다? 그러면 나는... 고민도 안하고 병가를 내거나 바로 보자마자 로스터가 노양심이네라며 심한 욕을 날릴 거 같다. 이미 한 번 갔다왔으니 만족한다면서 시큰거리는 턱과 진물로 눈물진 콧 병을 앓고 글을 쓰는 ... 나약한 승무원의 병가 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