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비행일기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라고 했던가. 새로운 회사에 들어가서 처음에는 허덕이면서 모든 것이 낯선 환경 속에 적응하느라 고군분투하던 올챙이 적 '나'. 그렇게 올챙이는 시간이 흘러 경험이 쌓이면서 개구리가 되었다. 그것도 짬이 차면서 우물 안의 세상 속에서 점점 고인물 개구리가 되어간다. 그리고 사람은 망각의 동물이라고 했던가. 그렇게 고인물 개구리는 올챙이 적을 생각지도 못하고 새롭게 태어나고 들어오는 올챙이들을 보면서 한심하고 느리다고 타박을 준다. 이것도 모르냐면서 본인도 모르게 올챙이들의 마음 속에 상처를 준다. 그렇게 상처받은 올챙이들은 둘로 나뉜다. 하나는 고인물 개구리에게 받은 상처는 내가 족하다면서 내 밑에 올챙이들에게는 이 수모는 안 주고 착하게 대해주겠다는 쪽. 그리고 나머지는 내가 받은 상처를 어떻게 버텨왔는데... 나도 새로운 올챙이들에게 똑같이 되갚아주겠다면서 복수 아닌 복수를 다짐하는 쪽으로 말이다.
어제 방에 들어가 잠에 들기 이전에, 거실 식탁에 룸메이트 언니와 앉아 잠깐 얘기를 나눴다. 언니가 이전에 함께 비행한 크루 얘기를 들려주었다. 생긴 건 정말 못된 선배처럼 생겼는데, 알고보니 세상 천사였던 선배 크루였다. 천사같은 성격의 크루에게 언니가 "너는 왜케 착해?" 라고 물어보니, 그 크루가 하는 말이 "내가 한창 너처럼 후배였을 때, 위에 선배들이 되게 못되게 나를 대했어. 그래서 나는 내가 선배가 되면 절대로 그 선배들처럼 못되게 구는 게 아니라 내 후배는 아끼고 잘 대해줘야겠다고 다짐했어. 나는 그 다짐을 지키는 거야." 라고 말이다. 참 그 얘기를 듣고보니 개구리는 항상 올챙이 적을 생각해야만 한다는 오늘의 주제를 여러분들과 풀어보고싶었다.
간혹 비행을 하다보면, 상사들의 불만을 쉽게 들을 수 있다. 그 불만은 당연히 새롭게 일하는 주니어에 대한 불만이다. 너무 느리고, 말을 잘 못 알아 듣는다는 불평 불만. 참 그런 사람들을 보면 나는 속으로 생각한다. 본인들도 그랬던 시절이 있었는데 역시 인간이란...어쩔 수가 없구나라고 말이다. 4달 차 비행 주니어와 30여년 비행 고인물의 서비스과 승객 응대는 정말 하늘과 땅 차이일 수 밖에 없다. 하늘과 땅 차이를 보기도 전에, 불과 4달 차 비행 경험과 7~8개월의 비행 경험 역시 다르다. 하루하루 비행 경험이 쌓이면서 나도 모르게 스피드도 붙고 사람을 대하는 여유가 생기게 된다. 그러면서 점점 사번도 높아지게 되고, 어느 비행을 가도 막내인 티는 벗어나게 된다. 어쩌다보니 어떤 비행에서는 내가 제일 시니어인 경우도 생긴다. 그러면서 개구리가 되어가는 것이다. 문제는 쌓이는 경험만큼 올챙이 적 기억도 사라져서 저 안드로메다로 가버린다는 것이다.
나도 위의 천사 같다던 크루가 느낀 생각과 비슷한 경험을 겪은 적 있다. 당시는 내가 실습 비행을 가던 날. 트레이닝 센터를 벗어나 실제로 승객을 만나고 서비스를 해보는 날이었다. 당시에 한국인 선배와 한 팀이 되어서 카트를 밀었는데, 어리바리한 나를 보면서 그리고 느린 나를 보면서 짜증이 슬슬 올라오셨는 지 말투마다 날카롭고 짜증이 묻어났었다. 대놓고 한숨까지 쉬시는 그녀를 보면서 서비스가 끝나고 참 내 스스로가 바보처럼 느낀 적이 있었다. 괜히 주눅들고 내가 잘하는 건가 싶었던 그런 시절말이다. 시간이 흘러 얼추 선배가 되어 나도 실습 비행 후배들과 함께 카트를 끌고보니 선배의 마음이 조금은 이해가 갔다. 그럼에도 나는 절대 그 선배처럼 후배들 앞에서 짜증을 내거나 한숨을 쉬거나 하지 않는다. 그 사건 이후에 나도 스스로 다짐한 것이 있었기 때문이다. 언젠가 내가 후배들과 함께 카트를 민다면 절대 푸쉬하거나 짜증내지 말 것. 그리고 나도 그런 시절이 있었음을 항상 기억하고 보듬어줄 것. 이것이 내 스스로 한 다짐이었기 때문이다.
시간이 흘러 여러분 역시 어느 곳에서 적응하게 된다면, 스스로를 한번은 되돌아보았으면 좋겠다. 항상 개구리는 올챙이 적을 생각해야한다. 이전에 프랑프푸르트 뉴욕 비행에서 함께 나간 크루 남자 선배가 한 이야기가 기억난다. 본인이 한창 일했을 때, 부사무장이 어린 주니어 크루들에게 너무 잔소리하고 뭐라고하길래 다들 주눅이 들어서 힘들어한 것을 봤다고 한다. 그래서 서비스가 끝나고 그는 화가 나서 부사무장 그녀에게 한 마디 했다고한다. 당신이 그렇게 애들을 다그치니 다들 기운이 없어서 서비스가 느리고 힘든 거라고. 이게 바로 리더의 자격이냐면서 말이다. 당신도 이랬던 시절이 있었을 텐데 왜 생각을 못하냐고. 당신이 앞으로 일할 날보다 여기 우리가 앞으로 일할 날이 더 많다. 더군다나 당신은 나이가 많아 이 회사 아니면 안되겠지만, 우리는 여기 아니여도 나이가 어려 어디든 갈 수 있다. 젊은 우리들이 당신때문에 나가면 당신이 손해이다. 나이 많은 당신이 여기서 더 이 회사를 위해서 일해야하니까. 잘 생각하라고 말이다. 그런 그의 속사포 같은, 그리고 팩폭으로 가득한 따발총급 말들에 부사무장은 말도 못하고 얼어붙었다고 했다. 아무도 그녀에게 그렇게 말한 사람들은 없었을 것이다. 용감한 선배 덕에 이후로 후배들은 편하게 일했다고한다.
인간인지라 어쩔 수 없이 올챙이 적을 생각하기 어렵겠지만, 그럼에도 나는 한 가지는 본인과 약속할 수 있을거라 생각한다. 그건 바로 좋은 개구리가 될 것인지, 아니면 앙갚음의 개구리가 될 것인지 말이다. 시간이 흘러 점점 시니어가 되어가는 요즘, 내 스스로에게도 오늘을 기점으로 반성하게 된다. 과연 지금까지 나는 좋은 개구리로 성장하고 있는지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