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비행일기
시간이 흘러 얼추 경험이 쌓이면, 회사에서는 승무원들에게 비즈니스 클래스에서 일하라는 자격을 준다. 그러면 트레이닝과 시험을 거쳐 승무원들은 비즈니스 클래스에서 일할 수 있다. 뭐 회사마다 비즈니스 트레이닝을 받는 기간이며 절차는 다르지만, 대부분은 그렇다. 어떤 항공사는 비즈니스 트레이닝은 받는다는 것 자체가 승진의 개념이 포함되어 있기도하고, 다른 항공사는 아닌 곳도 있다. 하지만 공통점은 하나. 바로 비즈니스에서 일한다는 건, 회사에서 어느정도 짬바가 쌓였다는 것과 더불어 더이상 비행 애기 시절은 지났다는 것이다. 그리고 다시 처음부터, 비행을 처음 시작했던 그 당시의 마음가짐과 모습처럼 어리바리한 상태로 또 힘든 여정을 나아가야한다는 것이다.
나 역시 비즈니스에서 첫 솔로 비행을 시작하고, 한창 배우는 동안 매우매우 힘들었었다. 심적으로도 체력적으로도 말이다. 지금도 간혹 힘든 순간들이 있지만, 처음에 비하면야 많이 성장하고 나아졌다. 성장하고 앞으로 나아가는 동안 나도 모르는 사이 경험은 쌓여갔고, 그 사이에 느낀점과 더불어서 실수도 많이했었다.
비즈니스 클래스와 이코노미에서의 다른 점? 아마 모든 승무원들이 공감할 것인데 바로 "이코노미는 뇌 빼놓고 일할 수 있어서 Physically demanding (체력적으로 개빡센)하고, 비즈니스 클래스는 이코노미보다는 Mentally demanding (정신적으로 개빡센) 하다는 것" 이다. 아마 이 문장을 모든 현직들에게 얘기하면 다들 웃으면서 맞다고 할 것이다. 비즈니스 클래스에 올라가면, 내가 제공하는 서비스 음식의 퀄리티며 와인도 다양하고, 서비스의 순서 역시 더 세분화가 된다. 심지어 승객들의 요청사항도 뭔가 더 디테일하고 달라지면서 동시에 승객들과 더 대화하는 순간이 많아진다. 즉 한마디로 깐깐해진다는 것이다.
나는 살면서 식당과 카페에서 아르바이트를 해 본 경험이 없다. 그렇기에 승무원이 되어서 식사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 자체가 참 어려웠다. 제공되는 식기의 종류를 외우고, 어떤 글라스가 와인용인지 물 인지, 정말 따라잡는 것에 어려웠다. 더군다나 나는 커피를 안 좋아하고 커피말고 달달한 음료만 고집하는 아기 입맛의 소유자다. 그런지라 카페 라떼는 또 무엇이며, 카푸치노는 어떻게 만들어야하고 등등... 세상에. 모든 것들이 다 내겐 새로웠다. 나이가 들어서 접하는 이 음료와 음식의 세계란. 심지어 와인 종류는 왜 이렇게 많고 어려운가? 발음은 또 너무 어렵다. 샤블리와 소비뇽 블랑의 차이는 무엇이며... 머리가 터질 것 같았다. 트레이닝 기간에는 정말 빡세지만 사실 뭐 비행기에 올라타 실전 서비스를 하면 또 다르긴하다. 하지만 정말이지 나는 다른 사람들보다 따라잡고 이해하는 것에 더 어려움을 겪었다.
비즈니스 클래스에서 일하게 된 지 이제 막 2번째 혹은 3번째였을 것이다. 카트를 조심히 끌고 내 머릿 속은 두근거리는 심장을 부여잡은 채로 어떻게 서비스가 나가야한다면서 포커스가 되었다. 느린 속도로 하나하나 승객에게 배운대로 에피타이저가 나가면서 물을 제공했다. 그러고 승객에게 화이트 와인과 레드 와인 중에 어떤 걸 제공할 지 여쭤봤고, 중년의 중후한 표정없던 호주 아저씨는 화이트 와인 중 샤블리를 요청하셨다. 그런 그에게 방긋 웃으면서 그럼요! 라고 말하면서 아주 멋지게 와인잔을 두고 와인을 꼴꼴꼴 따르는 순간...
어라? 와인이 안 나온다? 당황해서 나도모르게 "에?" 소리를 내면서 와인을 보니 아뿔싸..와인 뚜껑도 안 열고 긴장해서 그냥 냅다 와인을 따른다고 그런 것이다. 그런 나도 모르게 아저씨를 보면서 멋쩍게 웃으면서 "하하..서프라이즈!!" 라고 했더니 무표정의 아저씨가 빵 터지면서 큰 목소리로 캐빈 전체가 울릴 정도로 웃으셨다. 그러시면서 눈물을 훔치시면서 나보고 아저씨는 "그럴 수 있지! 하하 엄청난 서프라이즈네!" 라고 말하셨고 내게 "너 여기서 일한 지 얼마 안됐구나?" 라고 말해주셨다. 그런 그에게 나는 "하하...네. 이게 제 3번째 비즈니스 솔로 비행이에요. 제가 긴장해서.." 라고 했더니 아저씨는 "그럴 수 있지 괜찮아. 잘하고 있어." 라면서 낄낄대시면서 나를 응원해주셨다.
어이없게 손님을 빵 터지게 만든 실수는 하필이면 다음 서비스에서도 또 일어났다. 똑같이 그 와인을 시킨 같은 아저씨 앞에서 또 와인 뚜껑을 안 열고 냅다 와인을 주는 실수를 해버린 것이다. 하하...나도 어이가 없어서 "세컨드 서프라이즈!" 라고 했더니만 아저씨는 또 웃음이 터지셔서 "아이고...내가 너무 무섭나? 또 그러네?" 라고 하셨다. 멋쩍은 웃음만을 남기며 나는 죄송하다는 사과와 함께 나머지 서비스를 옹골차게 힘내면서 했었다. 이렇게 실수가 계속되면 습관이 되는데..하면서 내 자신에게 정신차리라면서 일을 했다. 그런 열심히 하는 내 모습을 보면서 아저씨는 내게 항상 말해주셨다.
"너 되게 잘하고 있어. 항상 처음은 긴장되고 어렵지. 하지만, 분명 시간이 지나면 넌 프로페셔널해질거란다."
그렇게 어리바리한 실수투성이 승무원에게 아저씨는 기운을 북돋아주시고는 고마웠다면서 떠났었다. 그렇게 시간은 흐르고 흘러, 벌써 비즈니스에서도 일한 지 어연 9개월정도가 흘렀다. 이젠 앞 전에서 계속했던 실수는 다행히 하지 않는다.
가끔 화이트 와인 샤블리는 보면 나도 모르게 이 에피소드와 더불어 빵 터진 아저씨가 생각난다. 그에게는 참 어리숙하고 귀여웠던 한국인 승무원이 남긴 평생 기억 될 서프라이즈 급 웃긴 추억이 될 것이고, 나에겐 되돌아보니 참 그땐 그랬지...하는 평생의 서프라이즈급 웃픈 추억임에는 분명하다. 하하..서프라이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