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직업일기
"승무원들은 공짜로 일하면서 예쁜 하늘 본다던데!
너도 사진첩에 하늘 사진 많아?"
"응...? 아..아니. 나는 일하면서 지금까지 단 한번도 하늘 사진을 찍은 적이 없어...진심이야. 하늘을 본 적도 손에 꼽아."
흔히들 하늘 위에서 일하는 나를 보고 일하면서 찍은 하늘 사진이 많다고 생각하거나 혹은 예쁜 하늘을 바라본 적이 많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일하는 순간 일에만 집중하는 나의 특성과 더불어서, 일하면서 도저히 다른 생각을 할 수가 없을 만큼 서비스가 많은 FSC (Full Service Carrier, 풀서비스 대형항공사) 특성 상 개인 핸드폰을 사용할 시간은 많지가 않다. 때문에 내 사진첩에 찍은 하늘 사진들은 거의 다 내가 한국으로 휴가를 갈 때 찍은 사진들이 대부분이다. 그래서 예쁜 하늘의 풍경을 담은 다른 승무원분들의 브이로그를 통해서 구경하기도 한다.
서비스가 많은 만큼, 하늘을 바라보는 것보다는 승객들을 더 바라보는 시간이 많다. 이전에 런던 비행을 스케줄을 바꿔서 룸메이트 동기 언니와 함께 다녀왔다. 함께 일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기 때문에, 마침 장비행에 주어지는 잠자는 시간도 같았기에 언니가 내가 일하는 존의 갤리로 놀러올 겸 교대 근무를 왔었다. 그렇게 쉬는 시간에, 언니가 사진을 찍자면서 핸드폰을 들고 갤리 커튼을 닫고난 뒤 함께 갤리에서 사진을 찍는데 뒤에서 갑자기 드르륵 열리는 커튼. 그러고는 영국인 아저씨는 호탕하게 맥주를 달라면서 요청하셨다. 민망한 웃음과 표정을 보여드리면서 당연히 드려야죠하면서 준비하는 사이에 사진을 찍는 순간의 우리를 보면서 한참을 귀엽다는 듯이 말씀하시면서 웃으셨다. 맥주 아저씨를 뒤로한 채, 계속 되는 승객들의 커튼 오픈쇼로 인해서 그 이후에는 사진을 찍고 싶어도 더는 못 찍었다는 슬픈 얘기...
또한 나는 승객들 앞에서 핸드폰 사용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참 내 스스로가 그렇다는 생각이 든다. 아무래도 회사를 대표하는 사람으로서 유니폼을 입고 사용한다는 것도 그렇고, 내가 핸드폰을 사용하는 모습을 굉장히 유심하게 바라보다가 사진을 찍고 회사에 보고하는 경우가 생길까봐도 있다. 승객에게 친절하게 하지만, 그렇다고 승객들을 100프로 다 믿지는 않는다. 심지어 이전에 한 선임승무원이 말해주었는데, 한 승객이 회사에다가 승무원이 함께 짐을 찾는 곳에서 하품을 했다면서 신고했다고 한다. 그 말을 들은 모든 크루들은 다 어이가 없다면서 우리도 사람인데 하품하나 제대로 못하냐면서 다들 볼멘소리를 냈었다. 그렇다. 세상에는 별의별 사람들이 존재한다.
그럼에도 내 사진첩에는 몰래몰래 쉬는 시간을 틈 타 크루들과 함께 찍은 소중한 사진들이 더 많다. 하늘을 찍은 사진보다는, 같은 승무원들과 찍은 사진들이 훨씬 많고 하늘보다는 나는 이런 소중한 인연들과 찍은 사진들이 더 맘에 든다. 하늘보다는 사람과 찍은 사진을 보았을 때, 그 당시의 추억들이 희미하게 떠오르기 때문이다.
승무원들은 모두 똑같은 습관이 하나 있다고한다. 바로 하늘을 자주 바라보는 것. 비행기 소리가 들리거나, 비행기가 하늘을 날으면 곧바로 고개는 하늘을 향해지고, 오늘 저 비행기는 어디로 향하는 것이며 승무원들의 안비즐비 (안전한 비행,즐거운 비행. 승무원들끼리 서로 하는 인삿말)를 기원하면서 하늘 위의 일터를 지그시 바라본다. 사진으로 찍은 하늘을 바라보는 것보다, 이렇게 두 눈에 담는 하늘들이 왠지 나는 더 기분이 좋다.
땅보다 하늘 위에서 지내는 시간이 더 많은 특별한 직업, 승무원. 비록 내 사진첩에는 예쁜 하늘을 담은 사진은 많지 않지만, 소중하고 특별한 인연들과 비행에서의 경험들이 차곡히 쌓여있어서 나는 괜찮다. 하지만 언젠가 내 마지막 비행에서는 하늘을 꼭 찍고 싶기는 하다. 내 마지막 비행에서의 하늘은 이랬는데...하면서 아련한 추억이 될 테니깐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