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비행일기_미국 샌프란시스코
"세상에, **야. 너무 오랜만이네? 다시 만나니 아주 기쁘구만!"
"하하. 기억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다시 비행하게 되어서 반가워요."
"그러게. 당시에 너 프로베이션 (수습기간)이었는데, 벌써 시니어가 되어서 나랑 함께 일하게됐네. 시간 참 빠르네."
"그러게요. 함께 한 비행이 제 첫 긴비행이었고, 당시에 저는 제일 밑에서 두번째였는데. 이젠 여자 크루들 중에선 위에서 두번째네요."
글을 쓰는 지금 이 순간, 나는 미국 샌프란시스코에 있다. 1년 2개월 전에 처음으로 왔던 샌프란시스코. 이번 비행은 내 두 번째 샌프란이고, 내 비행 인생에 있어서 가장 힘들었던 비행 넘버원인 샌프란시스코. 두 번째라 그래서 그런건진 모르겠다만, 이번엔 그리 힘들지가 않았다.
샌프란시스코 비행을 떠나기 전에 함께 비행할 크루들의 명단을 유심히 보니 참 이름이 낯이 익는 사람들이 꽤나 보였었다. 그리고 그 중에 한 명이 바로 위의 대화를 웃으면서 반갑게 나눈 사무장님이었다. 사무장님과 함께 한 비행은 이번이 세 번째였다. 그리고 이렇게 다시 만나게 된 게 거의 일 년만이었다. 브리핑룸에 들어오자마자 그녀는 다른 사람들도 아닌, 바로 내 얼굴을 먼저 바라봐주셨다. 마찬가지로 활짝 웃으면서 인사를 건넨 나를 보자마자 다른 승무원들보다 내겐 더 활짝 웃으면서 위의 대화처럼 큰 목소리로 반갑게 맞이해주셨다. 거의 일 년만에 다시 만난 나를 그녀는 내 이름도 기억하고, 얼굴도 기억하고 있었다. 나 역시 그랬고. 아마 그녀가 나를 기억하는 이유는 특별했던... 당시의 비행 때문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이전에 내가 올렸던 '돈 크라이 마담. 유얼 더 베스트 크루' 라는 제목의 밀라노 비행 일기를 여러분들이 읽었을까나? (만약 안 읽어봤다면 쪼로록 가서 읽어봐주시면 감사하겠다.) 당시에 함께 비행했던 사무장님이 바로 이 사무장님이었다. 내 비행 인생 첫 롱홀비행 (장비행). 그리고 비행 인생 첫 승객들 앞에서 울음을 터트려버린 잊지 못할 내 비행. 하하.. 일도 많고 사건도 많았던 이 비행을 함께 했던 그녀이다. 당시에 너무 힘들고 지쳐서 비행이 끝나고 그만두고 싶다고 말했었는데, 사무장님이 내게 다가오셔서는
"절대 이런 일로 약하게 그만두면 안된다. 나도 사람인지라 실수한 적이 얼마나 많은데. 하얀 셔츠 입은 승객에게 레드 와인 쏟은 적도 있었고. 실수는 일어났고, 우린 이 실수를 통해 배우면 되는거야. 그리고 다음에 안 그러도록 좀 더 조심하면 되고. 난 너가 강하다는 걸 잘 안단다. 걱정하지마렴. 너 내가 두고볼거야. 우리 꼭 다음 비행에서 만나자. 분명 넌 크게 성장했을테니까."
라고 말씀주셨었다. 두고보자던 그녀의 착한 경고(?) 덕분에 다행히 그만두지 않고, 지금까지 열심히 비행하다가 1년이 넘어 다시 그녀를 이렇게 만났다. 회사에서도 예쁜 외모와 성품으로 정말 크루들의 우상, 롤모델이라고 할 만큼 유명한 사무장님이었는데 함께 일하는 내내 많이 도와주시고 이끌어주셔서 참 감사했다.
예전에도 종종 글을 통해서 함께 비행했던 크루들과 다시 함께 비행하는 경우에 대해 여러분들에게도 공유했었다. 정말 국적이 더욱 다양한 에미렛 같은 경우보다도 나의 경우에는 이렇게 함께 만나는 크루들이 참 많다. 함께 비행했던 크루들을 짧은 시간이 아닌, 이렇게 일 여년이 지나고 다시 만나게되면 참 감회가 새롭다. 서로를 보면, 저 멀리 나도 모르는 사이에 뛰어갔던, 그리고 뛰어가는 중인 시간이 잘 보인다랄까.
이번에 함께 비행한 사무장님 뿐만 아니라, 샌프란 직전에 다녀 온 홍콩 턴어라운드 비행에서 함께 한 사무장님은 심지어 내가 트레이닝에서 열심히 교육받을 당시에 한 수업에서 나를 가르쳐주셨던 인스트럭터이셨다. 그런 그와 홍콩 비행에서 일 여년만에 두 번째로 다시 만났고, 당시에 역시 막내였는데 이젠 벌써 비즈니스에서 일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 역시 내게 "**. 너를 보니깐 시간이 너무 빠르게 흘러가는 게 확 와 닿는다." 라고 말씀해주셨었다.
이게 바로 외국항공사승무원만이 느낄 수 있는 재밌는 묘미라고 생각한다. 아니, 재미있는 묘미라기보단...어쩌면 씁쓸한 묘미일지도 모르겠다. 세월이 흘러 다시 만난 사람을 보며 느껴지는 반가움과 더불어 나도 모르는 사이에 열심히 앞만 보고 달려가버린 시간의 흐름 속 느껴지는 씁쓸함이란! 이것이 바로 재밌는 묘미이겠지. 마치 일 년전에 추석이나 설에 만난 어린 사촌 동생들이 일 여년이 지나 다시 만나니 금세 커버려서 놀라는 그 느낌이 딱이라 생각한다.
두 번째 샌프란인지라 갔던 곳은 다 갔고, 이젠 오히려 처음인 후배들에게 어디를 가야한다면서 먼저 이끌고 안내해주는 시니어가 되었다니. 그리고 당시에도 있던 식당과 공간이 여전히 남아있거나 굉장히 많이 바뀐 것들을 보면서도 참... 이런 경험을 통해서도 시간이 많이 흘렀음을 느꼈다.
이렇게 외국항공사승무원의 묘미를 적어본다. 일을 하면서 나도 모르게 달려나가는 시간의 흐름을 그 어떤 직업보다도 잘 느낄 수 있다는 걸.